논산 미술창작실에서

강성원   ISSUE_2003_0127

강성원_어둠에서 빛을 발하다_캔버스에 유채_185×185cm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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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7월 문예진흥원에서는 거창한 기획과 구호로 정부차원의 지원하에 ""미술창작실"이라는 이름으로 논산과 강화에 작가를 선정하여 입주시킨 보도를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이후로 지금까지 햇수로 8년간 논산 미술창작실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 여전히 논산과 부천을 오가며 본의 아니게 주말부부로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삶을 앞으로도 언제까지 해야만 하는지 그저 망막하기만 합니다. 그 이유가 단순히 저의 개인적인 잘못이 아닌 관의 문화예술 정책으로 완전히 농락되고 희생되었다는 사실에 도저히 묵과할 수만 없어 넋두리 같은 사연을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 아울러 지리적 여건이 다르기는 하나 서울 창동에 급조된 공동창작실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성원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3×555cm_2000
강성원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3×555cm_2000

1997년 논산 양촌면 산직리라는 촌마을(버스가 하루에 3번 다님)에 문예진흥원에서는 폐교를 이용한 미술창작실 활성화방안이라는 구실로 1억원 가까이 들여 보수공사를 한 후 전국적으로 입주작가를 선정하였습니다. 입주하고 보니 말이 입주지 전혀 입주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였으며 주어진 것은 개인당 교실한칸과 재래식 공동화장실 뿐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 주변형편이야 뒷전으로 치더라도 첫번째로 시도되는 국가적 차원의 행사와 지원인 만큼 계획과 취지는 온통 핑크빛으로 입주작가들을 설레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 첫째,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우수한 작가발굴과 육성 / 둘째, 창작실을 통한 문화예술수준 향상 도모 / 셋째, 국제적인 창작공간으로 발전시켜 국제교류전 개최 / 한마디로 창작실을 통하여 작가들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는 말입니다.

강성원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3×555cm_2000
강성원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3×555cm_2000

그동안 작업해오던 부천 작업실의 전세금을 빼고 들뜬 마음으로 논산으로 내려온 지 서너달도 못돼 문예진흥원 직원의 퇴직금 문제가 몇십억이니 몇억이니 매스컴에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잦은 인사와 담당자 교체로 이어져 급기야 논산창작실의 무관심은 날로 더하여 일년 반도 못되어 결국은 손을 떼고 서둘러 논산시에 5천만원을 주고 억지로 떠맡기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 그동안의 결실이란 단지 두번의 그룹전 참가가 전부였던 것입니다. 고작 이 꼴을 보려고 8년간 정들었던 부천 작업실을 정리한 것도 아니었고 더우기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것도 아닐텐데 문예진흥원측은 서로가 나몰라라 발뺌하며 전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지금은 까맣게 지워버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성원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20cm_1997

1999년 이후로 현재까지 이곳을 억지로 이관 받은 논산시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기에 5천만원의 이자로 창작실을 운영하고 있으니 열악한 이곳 상황을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짐작하시겠지요. 진작 지역주민을 위하여 농기구 창고로 제공되었어야 했음직한 이곳을 국민의 세금 1억을 들여 수리한 후 불과 1년반만에 막을 내린 정부의 생색내기 전시행정과 탁상행정으로 한 작가의 창작열정을 피워주지 못할망정 무참히 꺾어버리고 유린한 일련의 사태를 기억이나 하고있을지 의문이 가며 이것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문화정책인지 묻고 싶습니다. ● 아울러 마치 지금까지도 미술창작실에 관여하는 양 쉬쉬하는 가증스런 모습에 동정이 갑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인지 모르긴 해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 논산 미술창작실이 문예진흥원 소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또 다른 폐교가 되어버린 스산한 곳, 쓰레기들이 뒹굴고 잡풀들이 사람키 만큼 자라며 작가들이 떠나버리고 창고가 된 이곳에서 홀로 독수공방하는 서글픈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면 될 것 아니냐. 심지어는 공기 좋은 곳에서 신선놀음 하는 냥 좋아서 버티고 있는 줄 아는 동료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 실제로 처음 일년간은 정책이 좋았기에 기대와 꿈을 접지 않고 나름대로의 창작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경제적 보조가 전혀 없는 여건 속에서 부천작업실의 전세금을 곶감 빼먹듯 생활비와 재료비, 교통비로 쓰다보니 2년도 못되어 바닥이 나더군요. 이후로 오도가도 못하는 미아가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러 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못 떠나고 있는 웃지 못할 긴박한 상황이 되어버린 꼴입니다. ● 마음이야 미련 없이 한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작업하는 사람이 작업장 없는 곳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진흥원관계자 멱살잡고 내돈 돌려달라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 말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문예진흥원의 문화정책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선발되지 않았더라면 부천의 작업실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지 않았을 것인 즉 결과의 원인제공은 틀림없이 진흥원 측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강성원_평강하고 성스러운 정원-판도라 상자_자개장에 아크릴과 유채_360×980cm_2000

이미 8년이 흐르는 사이에 주말에 변함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타고 내리던 열차는 왕복400여회가 넘어 9만여km를 달렸고 유치원에 다니던 큰 딸내미는 중학교에 들어가건만 이런일로 인하여 자상한 남편과 아비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의 원인도 그쪽에 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 무엇보다도 한창 왕성한 창작의욕의 시기인 40대 초반에 본의 아니게 초야에 묻혀 곧 후반을 바라보는 작금에 많은 미술관계자와의 인간관계가 단절됨과 이외의 정신적, 육체적 시간적 피해를 어떻게 보상해줄런지 문예진흥원측은 단순하게 넘기지 말고 각성해야 합니다. ● 추워진 혹독한 날씨에 난방도 되지 않는 작업실에서 찬물에 손을 담글 때마다 문예진흥원의 어이없는 문화정책의 농간에 분노하며 울분을 토합니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기약 없는 이 생활을 유지해야 할는지... 할말은 참으로 많습니다만 일단 여기서 접도록 하겠습니다. ■ 강성원

Vol.20030127b | 논산 미술창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