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묘로 풀어가는 소담한 대화

이영수 수묵채색展   2003_0205 ▶ 2003_0211

이영수_손나무_한지에 수묵채색_161×130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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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205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2층 Tel. 02_733_6469

이영수는 대부분의 화가들의 화두이자 숙명인 개성과 '달라져야 함'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펼쳐왔다. 다량의 사생과 에스키스, 작품 제작을 통한 끊임없는 연구는 그 고민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필자는 그와 5년여간의 학창생활을 같이 하며 그간의 작업과정을 보아온 동료로서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우선 그의 대학 재학시절 작품 속에서 우리의 산천을 소재로 하면서도 전통 산수화법과는 다른 무언가 자기만의 필법을 구사하려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붓 터치는 매우 근면한 인상을 심어준다. 수고스러우리 만치 겹겹이 중첩되는 점의 집산은 우리 산천의 소박하고도 토속적인 특성을 잘 나타낼 뿐 아니라, 큰 폭의 화면에 그러한 점묘가 가득참으로 인하여 화면의 밀도감까지 가져왔다. 그것이 비록 미술대학 속의 제한된 틀 안에서 탄생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산천이 그의 시각과 손길로 인해 다시금 '다른' 모습으로 화폭 위에 나타났다고 본다. 이 점찍기는 이번 전시에 발표된 작품과도 기법 면에서 연원으로 생각할 수 있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이영수_손우물_한지에 수묵채색_130×161cm_2002

잠시 시간의 순서대로 눈을 이끌어 그의 작업과정을 되짚어보자. 전통회화를 전공한 작가로서 항상 현대와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그는 소재 면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였다. 우리의 산천을 사생하면서 작품으로 연결시키기도 하였지만 눈을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돌려 주변의 도시풍경을 그림 속에 펼쳐 보였다. ● '달라져야 한다'는 작가의 화두는 항상 머리 속에서 따나지 않았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 시간에도 그 고민은 계속되었다. 작업실 주변 밤길을 산책하며 '다르다'는 것의 의미와 실천을 묻는 근원적인 질문 외에도 컴컴한 어둠 속에서의 빛의 표현과 동양화에서의 색채기법 등을 고민하였다. 그리하여 한동안은 야경의 표현에 골몰하게 되었다. 서양화의 빛의 표현과 동양화에서의 빛의 표현의 차이점을 연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전 산수 표현의 연구와는 사뭇 다른 방향의 것이었지만 야경 역시 점의 자유로운 운용을 통한 표현처럼 즉흥적 작업으로, 어두운 색조와 강한 색조가 계산되지 않은 분방한 필치로 조화를 이루며 밤 풍경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전 작업과 일말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겠다.

이영수_얼굴연못_한지에 수묵채색_130×161cm_2002

전통은 곧잘 현대와 멀어진, 단순히 옛것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오해되고는 한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빼어난 옛것이 살아남은 상태"로 과거에서뿐만 아니라 현재에서도 분명한 가치를 가지는 개념이다. 작가는 분명 전통 회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전통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간간이 만화제작 활동을 통한 실험을 라고 있었다는 것이 그 좋은 근거이다. 여기서의 그는 소재 역시 자전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진 "꼬마 영수의 하루"라는 제목의 현실적 소재로 작가의 어린 시절을 닮은 꼬마의 하루 일과를 추억하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여기서는 꾸밈없고 소박한 한국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작가의 성향이 배어 나온다. 비록 웹을 통하여 보여지는 그림이지만 한지를 바탕으로 한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분방한 필치가 쓰이고 있어 그의 다른 회화작품과 동떨어진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만화'라는 장르의 한정에서 느껴지는 듯이 상업성과 대중성으로의 지향성이 다분한 만화 제작활동이 자칫 자신의 회화작업을 가볍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정체성에 대한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이 작업이 오히려 그가 추구하는 동양화의 현실적 구현과 현재와의 소통으로 연결되기를 노력하고 있다. ● 이는 또한 작가가 생각해 왔던 '다르게 할 수 있는 용기'에 해당된다 하겠다. 만화와 동양화의 공통분모를 찾으면서 하나로 좁혀가려는 시도는 그의 작업을 '다르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물감을 흘리고 튀기는 등의 무작위적인 행위는 작가 자신이 찾아낸 한국적 특성이자 감성으로 그의 만화작품과 회화작품 모두에서 나타난다 기법뿐만 아니라 만화제작의 경험과 고민이 그대로 표출된 듯이 커다란 화폭에 만화적인 인물묘사와 붓 터치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호분과 과슈를 함께 사용하며 만화적인 필치의 인물들이 강렬한 규모로 떠오르는 그의 작품들은 작가로서의 고민과 실험정신,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영수_비둘기_한지에 수묵채색_161×130cm_2002

점찍기의 기법은 대학 재학시절 우리 산천을 표현하며 근면히 찍어대었던 점들에서 한걸음 나아가 호분이 섞여 밀도와 두께감을 이루고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관장하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호분이라는 재료를 화면의 거리감을 생성케 해주는 매개체로 삼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다시 말해 그가 바라본 그림 세계와 현실세계의 조합된 표출 시도였다 하겠다. ● 지금 여기에 펼쳐진 작품들은 그 수많은 시도와 고민의 결정체이다. 만화적 감성을 가지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회화성을 지닌, 그러나 계산된 꾸밈이 없는 작품으로의 다가감이 지금의 작품에서 느껴진다. 밀도감을 이루려고 인위적으로 가미했던 호분의 힘도 이제는 떨쳐버리고 오로지 먹과 색만으로 그림에 힘을 실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수많은 점이 모이고 흩어짐에 따른 미묘한 색(톤)의 변화가 매우 매력적이다. 호분의 도움 없이도 화면에 질감을 부여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 하다.

이영수_웃는 얼굴_한지에 먹, 호분, 과슈_117×75cm_2001

소재 면에서는 자연의 정서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작은 마음의 동요와 공감을 불러내려는 의지가 다분히 전해진다. 단편적이고 일러스트적인 표현에 머물고 말지도 모르는 위험 부담을 안고서도 작가는 관객과의 소담한 대화를 시도해보려는 듯한 형상을 그려내었다. 새와 나무, 해와 달 등이 인간의 모습과 교묘히 합성된 형태는 비록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연에의 막연하고도 아련한 동경과 향수를 품고있는 현대인들에게 포근한 메시지와 위로를 던지는 듯하다. ● 과거에 비해 한층 정리되고 강약의 변화를 가진 점들은 계산되면서도 계산되지 않은, 자연과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방종하지 않으려는 중용과 조화에로의 위태위태하면서도 재미있는 외줄타기를 보는 듯하다. 그리하여 고대의 정감을 가진 암석의 표면과 같은 무게감을 지니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점묘와 선묘가 화면 위에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화강암질 바위에 점점이 선각되어진 암각화의 인상이다. 작가로서의 기나긴 여정의 첫 발걸음이지만 뛰어난 것이 살아남아 전해내려 왔다는 전통의 개념처럼, 그의 지난 작업들 중 빼어난 부분이 이번 전시 작품 속에 배어들어 있음이 분명하고 앞으로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의지가 그림 속에 유쾌한 모습으로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 유윤빈

Vol.20030130a | 이영수 수묵채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