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나푸돗던고

갤러리 편도나무 개관기념 유휴열 회화展   2003_0520 ▶ 2003_0620

유휴열_추어나푸돗던고_캔버스에 유채_91×73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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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편도나무 서울 종로구 사간동 126-1번지 Tel. 02_3210_0016

전주광대와 함께 춤을 ● 나는 바둑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잘 둔 바둑판이 흑과 백만의 조형언어로 그려진 추상회화로 보일 때가 있다. 유휴열의 「추어나 푸돗던고」 계열의 작품들은 내게 그렇게 추상화된 기보(碁譜)를 연상시킨다. 그 계열의 작품들은 춤을 다루고 있는데, 춤사위를 분해하고 해체하여 재구성한 정도가 심화된 작품일수록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기보를 대하는 경우처럼 순수추상회화로 다가오게 된다. 춤사위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추상화된 작품도 있는 탓이다. ● 그러나 미술전문가들 사이에 그의 작품이 추상표현주의로 인식되고 있다는 데는 당혹감을 감출 길 없다. 그의 작품을 추상표현주의로 규정한다는 것은 기보를 보고 추상회화라고 강변하는 것만큼이나 억지인 까닭이다. 그런 서양미술사적 가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도 않지만, 그의 작품에 그 쪽 잣대를 굳이 대 본다면 세잔느가 개척한 후기 인상파와 피카소와 브라크의 초기 입체파 사이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휴열_추어나푸돗던고_캔버스에 유채_91×116cm_2003

「추어나 푸돗던고」 만이 아니라, 그 이전 이후에 제작한 유휴열의 어떤 작품도 추상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재현하려 하고 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구상작가인 것이다. 화재(畵材)의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려는 회화 유형을 추상표현주의로 간주한다는 것은 기보를 보고 회화라고 주장하는 정도로 오류를 범한다. ●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느의 작품은 보기에 아주 편안하면서도 제대로 이해되기에는 아주 어려운 편이다. 생 빅토와르라는 산을 일정 단위의 깊이와 색감을 지닌 색면으로 분해하여 그 색면 세포들을 재구성하여 바둑두듯 모자이크한 그 풍경화가 왜 그토록 위대한 걸작으로 추앙되는 것일까? 그 위대함은 세잔느의 선(禪)에서 나온다. 세잔느 회화의 진실은 이심전심의 경지에 있다. 마하가섭의 미소가 그 화면에서 번진다. 그 세잔느가 목욕하는 여인과 사과와 남불의 풍경을 선적(禪的)경지의 회화로 승화시켰다면, 유휴열은 판소리와 춤사위에 담긴 한국인의 정한과 신명을 이심전심의 회화언어로 재현하려는 화두를 붙잡고 강산이 변하는 세월동안 정진하여 춤과 회화와 인간을 선의 경지에서 통합시키고 있다. 유휴열의 작품이 추상회화로 오해되는 것은 세잔느의 회화가 오랫동안 타인에게 이해되지 못하거나 범작으로 오해된 이유에 버금 한다.

유휴열_추어나푸돗던고_캔버스에 유채_60.5×72.5cm_2003

어떤 의미에서는 유휴열이 세잔느보다도 더 세잔느적이다. 세잔느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을 그렸다. 그는 산이면 산, 사과면 사과, 나무면 나무라는 보통명사를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유휴열은 그러나 그런 보통명사를 겨누고 붓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의 붓질은 춤이라는 보통명사를 상대한 것이 아니었다. 춤을 그리되 그 춤꾼의 어깨짓이나 사위라는 현상의 행위를 모사한 것이 아니라 그 춤사위가 담고 있는 한국인의 신명이나 얼 또는 정한 등을 그리려 했다. 춤이라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그 춤에 내포된 정한이나 그리움 또는 신명이나 분노라는 이름의 추상명사를 주제 삼은 것이다. 그런 추상명사를 인간의 육안에 드러나도록 그려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의 문제는 뒤로하고, 그 주제의 추상성 때문에 그는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오해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오해는 기법에 대한 오해가 아니라 주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춤을 그리되 춤 자체를 그리려했던 것이 아니라 춤에 담긴 정신을 그리려 했기에 그 정신의 추상성에 어울리는 추상화된 기법이 필요충분조건으로 뒤따라 왔던 것이다.

유휴열_추어나푸돗던고_캔버스에 유채_60.5×72.5cm_2003

유휴열의 화폭에 옮겨진 춤은 이미 춤이 아니다. 그는 화가인 동시에 소리꾼이자 춤꾼이다. 그래서 그 소리와 춤을 조형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연스레 품게 되었을 것이다. 전주 토박이로 그 곳에 붙박혀 사는 동안, 그 지방 특유의 풍토와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판소리와 전통 춤을 화두 삼아 정진한 끝에 「불러나 푸돗던고」와 「추어나 푸돗던고」 계열의 작품을 낳게 되었다. 이 선적 화두는 평소 애송하던 신흠(申欽)의 시조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 닐러라 못닐러 불러나 풋돈던가 / 진실로 풀리거시면은 나도 불러 보리라 / (노래 만든이 근심걱정 얼마나 많았길래 말로는 풀 수 없어 노래 불러 풀었던가 정말 노래 불러 풀 수 있다면 나도 불러보리라) ● 유휴열이 언제부터 이 시조를 애송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다. 하지만 이 시조를 그가 가슴에 깊이 품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쉬 짐작이 간다. 그는 이 시조에서 모든 예술행위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었음이 확실하다.

유휴열_추어나푸돗던고_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03

예술은 별게 아니다. 세상 살아가느라 가슴에 쌓인 근심과 걱정을 춤추거나 노래부르거나 아니면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짓거나 하여 그 걱정근심을 풀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이 된다. 전주 전매특허라고나 할 '삶의 정한'을 풀어내는 작업이 예술인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전주지방의 유장한 판소리 가락과 춤사위는 근심걱정거리의 다양하고 끈적끈적한 집합체인 민초들, 삶의 애환과 한을 풀어내는 최상의 민중예술이었다. 유휴열이 소리꾼으로서 또 춤꾼으로서 판소리와 춤사위에서 이 땅의 살붙이 피붙이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태우던 그 한이 스스르 풀려나가는 미적 카타르시스를 전주지역에서 보낸 성장기에 이미 체득했을 것이다. 화가로 입신하여 그 소리와 춤으로 카타르시스 되는 '한의 승화'를 조형적으로 풀어내려는 화두를 품게 되었음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신흠의 시조는 유휴열의 심중에 이렇게 패러디 되어 불려졌을 것이다. ● 그림 그린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 닐러라 못닐러 그려나 푸돗던가 / 진실로 풀리거시면은 나도 그려보리라 ●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그려나 푸돗던고'가 될 유휴열 작업의 화두는 화가 자신의 개인적 미학원리를 넘어 그림을 대하는 사람의 한까지 카타르시스 시키고 있다는 데서 다른 어떤 대가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미적가치를 획득한다.

유휴열_추어나푸돗던고_캔버스에 유채_220×350cm_2002

기보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희거나 검은 돌들은 바둑의 어떤 '수'를 따라 제 자리에 놓여지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춤을 선(禪)으로 재해석하고 분해하여 결정된 색면으로 바둑의 '수'와 통하는 한국인의 정한과 숨결과 신명을 따라 캔버스에 재배치하고 재구성한 것이 바로 유휴열의 「추어나 푸돗던고」이다. ● 유휴열이 「추어나 푸돗던고」에서 춤사위를 보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렇게 추상화된 화폭에서 이심전심의 경지로 전해지는 한국인의 신명과 숨결에 동참하기를 요구한다. ● 기보가 회화가 아니라, 바둑 수를 감춘 숨은 그림이 듯, 그의 회화는 춤동작을 찾아보게 하는 춤그림이 아니라 신들린 춤꾼이 무아지경에 빠진 그 미적 카타르시스의 상호교감을 가능케 하는 매개로서의 언어다.

유휴열_추어나푸돗던고_캔버스에 유채_60×130cm_2002

유휴열의 작품을 보고있자면 절로 그의 춤판에 뛰어들게 된다. 그리고 나의 영혼과 이 땅의 정기와 이 땅에서 야생초 같은 삶을 영위했던 우리 선조들의 절박한 얼이 함께 어깨 겯고 더 덩실 어깨춤을 추는 신명에 사로잡히는 환상에 빠져든다. 그의 그림 속에서, 놀라와라, 나의 한이 풀려나가는 것이다. ● 「추어나 푸돗던고」는 그만의 추어나 푸돗던고이거나 그려나 푸돗던고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추어나 푸돗던고'이며 우리 '함께 불러나 푸돗던고'이다. ■ 박인식

Vol.20030601b | 유휴열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