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생명

신미혜 회화展   2003_0604 ▶ 2003_0614

신미혜_Work_캔버스에 혼합재료_25×25cm_2003

초대일시_2003_0604_수요일_05:00pm

예맥화랑 서울 종로구 소격동 87-1번지 Tel. 02_720_9912

신미혜는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선보인다. 자연과 생명이란 모든 예술의 궁극의 지향이자, 곧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본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자연과 생명의 이치를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 다름아닌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미술 역시 나와는 다른 타자를 이해하고 나 이외의 사물과 세계, 생명체를 파악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일텐데, 이 같은 미술의 문제의식은 자연과 생명현상의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 그녀는 작은 사각형의 캔버스, 박스형으로 높이를 지닌 정사각형의 화면, 표면에 자신이 파악하고 느낀 자연, 생명의 이미지를 압축해서 올려놓았다. 그 이미지들은 그러니까 자연에서 추출한 형태들, 식물문양과 나무와 새싹, 꽃 등이다. 화면의 피부, 표면은 단색의 물감이 칠해져있고 그 위에 시간의 경과, 우연적이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효과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선호하는 녹색, 쑥색, 청록색 등이 캔버스 천 자체를 피부나 막처럼 균질하게 도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위에 꽃 문양, 당초 문양, 유선형의 식물 이미지 등이 단출하게 올라와 있다. 칠하거나 그렸다기보다는 약간의 높이를 지니고 물질화 되어 있음에 따라 그것은 회화와 저부조 사이를 넘나든다.

신미혜_Work_캔버스에 혼합재료_25×25cm_2003

회화로 보여지다가도 바니쉬가 만든 층, 금박, 표면의 균열과 박락 효과, 코팅처리로 인한 반짝거림, 높이를 지닌 정사각형의 박스형 화면 등은 그것을 다양한 물질체험을 머금은 일종의 사물, 부조로 다가오게 한다. 사실 사각형의 작은 캔버스는 물감을 머금고 있는 일종의 용기이다. 그것은 깊이를 지니지 않은 평면의 용기이기에 표면에 들러붙거나 막을 형성하면서 저부조를 이룰 뿐이다. 모든 회화는 표면 위에 특정한 자취를 남긴다. 또 다른 피부로 환생시키거나 새로운 존재, 물질로 탈바꿈되는 기이한 변형이 그것이다. 그런 변형을 통해 자연스레 생명현상과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 이 작가의 작업이다.

신미혜_Work_캔버스에 혼합재료_각 25×25cm_2003

모델링 페이스트와 물감을 섞어 그린, 부착한 이미지는 촉각적으로 존재한다. 평면 위에 돌올한 그 선의 자태는 그려진 동시에 조각된 듯한 느낌을 준다. 평면 위에서 유선형으로 미끄러지듯, 감싸안듯 우아한 자태를 새겨 놓는다. 그 위에 바니쉬를 부어 일정한 시간 동안 응고시켜 놓았다. 바니쉬의 농도와 시간의 양에 따라 우연적으로 형성된 표면효과는 무척이나 다채롭고 흥미롭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 투명한 막이 자연스레 형성되고 그 안에 문양과 색조가 은은하게 비치는데 흡사 수면을 통해 들여다보는 듯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화면은 이중의 깊이를 보여주며 또 다른 화면, 또 다른 이미지를 창백하게 드러낸 것이다. 물에 잠긴 꽃, 화석으로 새겨진 식물이 그런 모양일 것이다.

신미혜_Nature_캔버스에 혼합재료_각 25×25cm_2003

나로서는 그 풍경이 얼핏 고려청자의 표면처럼 다가왔다. 유약을 바른 청자의 표면은 반짝이고 투명하며 조금씩 균열이 간 피부를 머금고 있다. 그 피부에는 여러 꽃, 식물 문양과 구름과 새들이 적조하게 떠돈다. 선계(仙界)를 갈망했던 이들이 보고 싶었던 풍경이리라.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현실계에서 청자 잔에 녹차를 마시며, 그 찻잔의 피부에 스며들어 있는 풍경을 조용히 관조하면서 이를 매개로 하여, 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 것이다. 명상과 소요의 황홀한 체험, 상상적인 소요라는 기이한 체험이 이루어진다.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 이미지와 색채를 징검다리 삼아 유체이탈의 체험을 맛보고 정신적 활력 속에서 이상적인 공간, 유토피아를 소요하고자 한 이들의 눈에 호소한 것이 청자라면, 녹차 역시 우주의 순환하는 이치를 자신의 육체로 들이키며 깨닫고자 한 매개에 다름 아니다.

신미혜_Nature_캔버스에 혼합재료_25×25cm_2003

신미혜는 그러한 청자의 표면을 새삼스럽게 주목한 것 같다. 그렇다고 청자의 표면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이를 물질로 보여주고자 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청자색과 다채롭고 화려하면서도 더없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식물문양을 모티브로 해서 회화의 여러 정황을 만들어나가는 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얼핏 청자색을 연상시키는 캔버스의 평면을 채운 단색조는 그 자체로 추상회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모노크롬적인 회화인 양 엿보인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연스레 그러한 색상을 청자나 도자기의 표면을 덮고 있는 색채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 연상은 특정 문화권의 영향 내지 학습된 전통과 역사에 기인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색이란 다분히 문화적이고 심리적이다. 납작한 평면성 자체를 확인시키는 모더니즘 페인팅에 유사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전통 문화권의 역사적 문맥에서 기호로서 자리한 색채 역시 자극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화면, 피부에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자취, 바니쉬와 물감 등이 만나 화학적 작용에 의해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효과, 자연스런 균열과 상처 등을 흥미롭게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신미혜_Work_캔버스에 혼합재료_35×35cm_2003

그 같은 색채의 바다 위에 식물 문양, 화초 이미지 등이 단출하게 얹혀지면 그런 상상은 더욱 가능해지는 편이다. 아마도 우리 현대 미술, 추상 미술의 대부분이 그렇게 외형적으로 모노크롬적인 뉘앙스를 머금으면서 이를 자연의 이미지와 느낌으로 정서화시키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서구 현대 미술과는 다소 상이한 접근이고 해석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가의 그림, 물질들 역시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자연'의 인상이 적절하게 연상된다는 생각이다. 작가 역시 창 밖으로 보이는 학교 화단에 가득한 꽃들과 화초, 나무 등을 모티브로 해서 그렸다고 한다. 그러한 자연의 경이적인 체험과 관찰, 그리고 우리네 전통 문화 유물에서 엿보이는 자연적인 상징과 문양, 맑고 정신주의적인 색채를 다양한 물질체험을 동반해서 화면에 환생시키고자 하는 의욕의 일단이 감지되는 작업들이다. 이 같은 '생명과 자연'이란 주제는 아마도 한국에서 그림 그리는 모든 이들의 영원한 화두일 것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의 일단을 신미혜의 작업에서 만날 수 있다. ■ 박영택

Vol.20030607a | 신미혜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