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超人), 물활론적 세계로 스며들다

김성남 회화展   2003_0613 ▶ 2003_0629

김성남_캔버스에 혼합재료_117×91cm_2002

초대일시_2003_0613_금요일_05:00pm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5

김성남은 초기작업인 「초인(超人)」 시리즈는 통해 "신의 섭리 속에 초라하기만 하고 불가항력적인 인간의 무지와 나약함"을 고발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를 보여준 바 있다. 이후 소나 돼지, 죽은 오리 등 다분히 희생제의를 연상시키는 동물 및 동물신체의 일부를 흑백의 화면에 부각시킴으로서 자연에 내재한 야생과 폭력, 욕망과 정화의 세계를 격렬하게 들어내었다. 이런 그의 작업은 털끝이 살아나는 듯한 치밀한 선들로 채워진 소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촉각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텍스츄어는 격렬한 이미지와 감정을 화면을 통해 전개시키면서 은밀한 욕망과 미적 쾌감을 상기시켰다. ● 「소다리」에서 「나무」연작으로 전이된 이번 작업은 다면적인 세계인식과 감각적 경험이 재편되어 나타난다. 다면적 세계인식은 이전 세계에서 보여준 경험적 축적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신과 인간, 자연의 경험과 공포를 생동하는 물활론의 세계로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생생한 애니미즘, 활성적 영혼이 내재한 자연은 이성의 초월의지와 함께 경험을 확장시키고 심화시킨다. 그러나 대상이 소와 희생제의적 동물에서 나무로 바뀌었을 뿐 주제, 구도, 표현의 전 영역에서 이전의 감각을 재생시키고 있다. ● 「소다리」 연작에서 감각적 욕망을 환기시키면서 대상에 대한 병치은유(아버지의 가냘픈 다리, 둔중한 육체에 붙은 가는 소다리)를 설정해 나갔다면 나무에서는 그러한 욕망을 확장해 나가면서 알 수 없는 흡입력으로 실존을 빨아들이는 불가해한 자연 속으로 스며든다

김성남_캔버스에 혼합재료_91×40cm_2003
김성남_캔버스에 혼합재료_117×180cm_2003

나무 속에서의 추락 ● 늘어선 나무가지, 소의 털처럼 엉킨 듯 거칠게 내려오는 줄기의 하강은 욕망과 불안의 유혹이자 기억의 환기이다 엉긴 듯 눌러 붙어 있는 아이, 스며드는 혹은 빨아들이는 듯한 나무는 기묘한 표정과 공포를 표면에 간직하고 있다. 이전 「소다리」에서는 결 자체의 감각적 섬세함으로 우리를 환기시켰다면 나무 표현에서는 내부에 숨어있는 이미지와 상징을 이용하여 즉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보았던 잘려진 나무밑둥은 용의 머리처럼 굳어있고 죽은 나무는 희생의 제의처럼 번제의 불로 소멸되고 있는 중이다. ● 나무는 사선으로 뻗어서 줄기를 내리고 있고 밑둥엔 흰의자가 놓여있는 작품(소다리의 또 다른 은유). 텍스트는 다르지만 나무를 소다리로 보고(역삼각형의 구도) 늘어진 나뭇가지를 예의 소꼬리에 비유해보자. 그럼 흰 의자는? 소다리에서 관능과 욕망을 은유적으로 보여준 흰 정강이 라고 말한다면 「나무」연작 역시 동물신체의 일부를 집중적으로 보여준 이전 작품의 연장선이다. 흰 의자 혹은 희생과 정화, 무한한 여백과 사유의 공간인 흰색의 이미지는 김성남의 작업에서 주목해야할 이미지이다. ● 소다리에 대한 병치은유인 나무연작은 불가해한 자연의 광대한 이미지-나무 속에서 추락한다. 흰색의 새는 이성적 세계관념인 청색의 대지에 추락한다. 야생의 나무가 이성적 대지 위에 뿌리박고선 풍경도 기묘하지만 청색과 흑백의 대비가 불러일으키는 사선의 긴장은 결국 희생의 대리물을 요구하게 된다 이 풍경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세계인식을 뒤집어 나무의 가지 끝이 무한한 우주의 뿌리가 되고 이 영적인 자양분을 먹은 줄기와 뿌리는 대지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결국 새의 추락은 우주정신의 추락이다.

김성남_캔버스에 혼합재료_150×80cm_2003

순환하는 세계의 대리인 ● 희생과 제의의 순환하는 대리인인 초인과 동물의 이미지. 초인과 한 몸이면서 초인의 희생제의인 흰색의 새의 이미지(오리)는 고요의 정적 속에서 소멸된다. 흘러가는 물과 피의 상처는 물과 불의 번제의 상징이자 영겁회귀의 징표들이다. 상처를 부각시키고 상처를 껴안으며 초인은 다가온다.

김성남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7cm_2003
김성남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7cm_2003

동백 부재를 증명하다 ● 주제와는 다소 무관한 듯한 페허속에 핀 동백그림, 이 처참한 낙화는 무엇이란 말인가 뚝뚝 흘러내리는 피의 이미지와 같은 한 그루 동백은 세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 기호, 이미지가 녹아있다. 이성적 세계질서인 집은 소멸되고 있다. 검은 대상에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낡은 집들, 페허위에 핀 공포와 절망, 그토록 대상을 압도했던 초인은 그 어디에도 없다. ● 주인은 부재는 사물의 죽음을 낳는다. 나의 손길이 닿던 그 어떤 사물도 나의 죽음과 함께 빛을 잃는다. 이 낡은 번성함, 이 소멸의 공포, 도대채 초인(超人)은 어디로 간 것인가? ● 적어도 이 풍경에서 초인은 순환하는 세계의 대리인이거나 희생제의를 껴안은 초월자가 아닌 세계의 이면으로 숨어버렷다. 허무와 소멸을 먹고 피는 꽃의 낙화는 생의 환희와 공포를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초인은 이 비극적 서사의 세계속에서는 부재중이다. ● 김성남의 비극적 서사의 세계에 대해 "생생한 야생성과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있지만 그것이 맹목적으로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투명성과 초월성에 이르고자 한다(이선영)"고 평가된 적이 있지만 투쟁하는 영웅인 초인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는 비극적 서사는 초월에 이르지 못한다. 초인의 부재가 항구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극적 서사로서의 신화는 활성적 영혼이 내재한 야생의 자연 속에 재편되고 있다. ● 세계의 이면으로 숨은 신(神)은 잠시 신화의 세계를 떠나서 생동하는 물활론적 세계로 스며드는 것이다. ■ 류철하

Vol.20030613a | 김성남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