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난 따스함의 매력

이정자 회화展   2003_0610 ▶ 2003_0621

이정자_위양리 매화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02

초대일시_2003_0610_화요일_06:00pm

갤러리 수남 부산시 해운대구 중2동 1480-2번지 Tel. 051_747_1765

그림 속에서 우리는 보이는 것을 본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때로 어떤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의식되고 느껴진다. 이정자의 그림이 그렇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다. 인위적인 것이 없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이다. 활짝 핀 매화나 벛꽃, 사과나무, 폭포, 버드나무 같은, 특별한 것도 없는 모습들이 보는 이를 반긴다. 주로 주변풍경이 생략된 채 나무나 꽃만 클로즈업되어 있어서 어디라고 알아볼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 작가는 꽃이라는 종의 보편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장소에 피어나는 꽃을 그리고 있다. 지리산 자락의 어느 마을이나 작가가 작업하고 있는 부산근교의 어느 산 속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정자_진달래_캔버스에 유채_4F 변형_2003

그런데 그 속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물건의 흔적도 없다. 사람이 없는 그림이 그의 작품만이 아닐텐데 왜 유독 이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왠지 이 사실이 인상적이다.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그가 그린 자연의 모습이 만약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초월적인 것이었다면 거기 없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린 자연은 무척이나 소박하고 따뜻하고, 우리의 산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기에 그림 속에 사람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특별한 느낌을 자아낸다. 실제로 그는 중국유학시절에 열었던 첫 번째 개인전에서 매우 능숙하고 생생한 솜씨로 인물화를 그렸다. 99년에 열었던 두 번째 개인전에서부터 인물은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때도 초월적이거나 거대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운주사의 석불, 산에 피어있는 진달래나 강가의 버드나무 같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

이정자_청매_캔버스에 유채_27.3×45.5cm_2003

어쩌면 작가는 중국유학에서 돌아온 이후,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사람들의 삶에서 거리를 두고 싶게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시대의 변화와 맞물리는 어떤 모색의 흔적일까. 나는 거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또 그런 개인적인 심리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몫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람의 흔적이 없지만 또 역설적으로 사람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의 작품에 어떤 특별한 긴장감과 매력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그의 그림들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을 보는 우리의 시각 자체에 관한 것이 되고있기 때문이다. 그림들은 완결된 상태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으로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그냥 '거기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보는 이가 직접 자기 손으로 감싸안아야 할 것 느낌이 든다. 분명 인간적인 세계에 속해있는, 그러나 인간이 없는 이 자연들을 통해서 어쩌면 그는 자연 자체보다는 그것을 보고 그것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연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그 사람들의 눈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정자_얼음골 불협폭포_캔버스에 유채_162.2×75cm_2003

오히려 한 발 물러선 상태에서 사물의 모습은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그의 그림에는 세상사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아주 벗어나지 않으려는 적절한 거리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중간색의 색채도 이런 한 걸음 물러선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색채감각은 그의 장점 중 하나이다. 분홍색, 회색, 연갈색 위주의 화면은 단순히 감상적인 파스텔톤의 느낌을 벗어나 화면에 차분함과 여유를 준다. 또 분명 서양화지만 여백을 존중하고 선묘의 맛을 살린 표현기법은 동양화적인 것에 가까이 가고 있다. 매화나 달, 폭포 등 소재면에서도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점이 있다. 동양화에서 자연은 단순히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감정이입의 공간이고 인간의 은유물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연물들은 그 자체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정자_대관령을 지나며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02

그의 그림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가 그리는 계절은 가을이나 겨울이 아니라 꽃이 만개한 봄이나 열매맺는 가을이라는 점이다. 폭포도 수량이 많아서 여름을 느끼게 만들고, 꽃핀 매화나무의 휘어진 가지에서는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이 넉넉함, 조금 물러나 있기에 오히려 더 잘 느껴지는 이 넉넉함의 감정은 인간을 보는 작가의 시각에 믿음을 가게 만든다. ■ 조선령

Vol.20030613b | 이정자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