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Brain

정정주 영상.설치展   2003_0612 ▶ 2003_0622

정정주_Inner Brain_폐쇄회로 영상장치_120×80×8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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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12_목요일_06:00pm~09:00pm

시공간 프로젝트 브레인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어두운 밤, 먼 곳에 언덕이 있었고, 건초더미나 탑, 불길, 갖가지 색 등이 드문드문 나타날 뿐인 들판에 캄캄한 포장도로만이 뻗어있었고 어떤 표지나 등도 없었다. …거기에는 예술에서는 어떤 식으로도 표현된 적이 없는 리얼리티가 있는 듯 하였다." ■ 토니 스미드 Tony Smith

정정주_Inner Brain_폐쇄회로 영상장치_120×80×80cm_2003

공간, 시선, 지각에 대하여 ● 누구나 특정한 공간에 대해 이유없이 끌리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잠수교를 지날 때마다 나는 그 공간이 형성하고 있는 특별한 정서에 매료되곤 한다. 텅 빈 여백, 콘크리트의 삭막한 느낌과 흑백 그라데이션, 황량한 스케일, 바람, 적당한 햇빛. 내 신체가 감각할 수 있는 이 물질적 요소들이 아주 빠르게 다가오고 또 멀어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나는 살아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갖는다. 공간의 존재 양상을 매우 촉각적으로, 아주 긴박하게 느끼면서 통과해나가는 일종의 실존적 경험이랄까. 공간 자체에 대한 이러한 끌림이라는 것은 어떠한 문화적 코드의 맥락 속에 있는 취향의 문제, 예컨대 크림이 올려진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는 식의 선호도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것은 여타의 장식적인 요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간의 실체, 즉 공간 속에 있는 자의 실존이 체험할 수 있는 어떤 아우라에 대한 이끌림이다.

정정주_Inner Brain_폐쇄회로 영상장치_120×80×80cm_2003

올해 초 정정주의 작품을 사간갤러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 경험과 연관된 몇 가지 공간들의 분위기를 상기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곧바로 작가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가 만들어낸 공간은 단지 네 개의 벽, 창문, 빛, 소리, 그리고 시선이라는 최소한의 물리적 조건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매우 밀도있는 에너지와 보는 이를 압박하는 듯한 심리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조형적이고 건축적인 장면이 아니라, 잠재적인 사건들이 긴장감 있게 응축되어 곧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살아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무덤덤하게 관조하는 정지 화면이나 보는 이를 소외시키는 객체적 공간이 아닌, 보는 이의 지각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일종의 '상황적' 공간이라고 할까. 이러한 특성은 아마도 그의 작품이 대부분 실제 살았던 집의 거실, 화장실, 체육관, 기숙사 등 작가 자신의 경험과 관련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정주는 그 공간들이 발산하는 고유한 분위기, 그것이 가진 특정한 아우라를 재현한다. 방의 크기, 구조, 창문의 위치, 빛의 조도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건축적 조건들을 정교하게 기획함으로써 그는 공간의 아우라를 3차원의 구조 안에 담아낸다. 정정주의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 안에 움직이는 카메라의 시선이 개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위치와 지각의 유기적인 상호관계에 대한 탐색의 방식이다. 공간적 아우라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 바라보는 자의 지각을 통해서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떠한 시각적 조건을 통해서 경험되는가의 문제는 그의 작업에서 매우 핵심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다.

정정주_Inner Brain_폐쇄회로 영상장치_120×80×80cm_2003

지난 작업들에서 정정주는 실제 공간의 모형들을 만들고 그 실내 공간 안에 카메라를 장착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만 모형의 내부 공간에 대한 정보를 얻게 하였다. 관람자는 공간의 완전한 인식에 대한 욕구를 갖지만, 그 안에 실제로 들어갈 수 없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힘으로써 카메라의 시선과의 적극적인 일치를 통해서 공간을 경험하도록 유도된다. 때로 정정주의 모형 작업에서 마치 갇힌 방 속의 폭발적 에너지가 보는 이를 압박해오는 듯한 폐쇄공포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처럼 카메라의 시선과 관람자의 시선이 어떠한 지점에서 일치됨으로써, 마치 관람자 자신이 공간의 내부에 있는 듯한 감정이입의 효과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카메라는 빅 브라더(Big Brother)와 같이 관람자를 감시하는 권력적 매체가 아니라 주체적 시선의 연장물이며 확장된 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재미있는 요소는 관람자가 카메라 시선과의 일치와 분리라는 두 가지 조건을 통해서 이중적인 차원을 동시에 지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안과 밖, 그리고 두 가지 차원의 혼재 상태는 내가 공간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의 순간적 혼돈을 가져온다. 더욱이 모형과 실제 공간 사이에 설정된 크기의 차이, 실제 공간과 시뮬레이션의 이중적 차원의 공존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묘한 공간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정정주의 작업에서 이러한 중첩적인 시선의 배치는 공간적 좌표의 해체를 통한 주체의 분열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시선들의 종합을 통하여 끊임없이 실제적이고 입체적인 공간 그 자체의 현존과 실체를 대면하는 '나'의 지각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정정주_Inner Brain_폐쇄회로 영상장치_120×80×80cm_2003

공간의 현존성과 지각에 대한 작가의 지속된 관심을 반영하듯 이번 전시에서 정정주는 모형이 아닌 '브레인팩토리(Brain Factory)'라는 현실의 공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관람자는 이제 작품의 공간 속에 직접 들어가서 카메라와 동등한 차원에서 그것을 지각한다. 여기서 카메라의 시선은 보다 좀더 정교하게 계획되어, 시선의 상하좌우 운동과 회전을 통해 마치 인간의 눈과 같은 자연적인 움직임을 갖게 되었다. 매우 부드럽게, 아주 천천히 계속하여 움직이는 카메라의 눈은 브레인팩토리의 공간 전체를 마치 만지듯이 촉각적으로 접촉한다. 관람자는 카메라와 공간의 이 내밀한 관계가 지어내는 상(象)을 통해서 자신이 서있는 공간의 현존을 보다 예민하게 지각할 수 있게 된다.

정정주_Inner Brain_폐쇄회로 영상장치_120×80×80cm_2003

정정주의 작업은 이처럼 카메라의 시선과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서, 우리의 관습적인 눈이 바라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공간의 내적 진실에 대한 촉수를 다시금 되살려준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일상을 담고 있음에도 일상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매체의 극화된 효과에 있다기보다도, 어쩌면 존재하는 것 그대로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닫혀진 우리의 눈이 또 다른 눈을 통해서 다시금 열려질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정주의 작품은 다차원적인 시점, 또 다른 눈의 수용을 통하여 공간에 대한 보다 진지한 인식을 제안하고 있다. 공간이라는 것이 멈추어있는 장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퀀스이며 삶의 일부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름아닌 나의 존재와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유기적 환경이기 때문인 것이다. ■ 이은주

Vol.20030615b | 정정주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