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_The House

가갤러리 개관기획展   2003_0614 ▶ 2003_0712 / 월요일 휴관

천성명_길을 묻다_비디오 영상.설치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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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강봉조_고현주_권종환_김경덕_김범_김월식_설승순_신하순 유근택_윤소연_윤현옥_전재은_정정엽_천성명_최은경

가갤러리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89번지 Tel. 02_792_8736

가갤러리-집에 대한 단상 ●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조그마한 전시공간이 생겼다. 일본식 목조건물 2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건물의 원래 형체는 지금 많이 지워졌지만 얼추 본래의 공간을 떠올려주기에는 부족함도 없다. 길가 골목에 자리한 이 집은 단촐하지만 아기자기한 방/전시공간을 지닌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그곳은 또한 삼각지에 위치해있어 많은 액자 집과 조그마한 가내공장, 화랑들이 주변에 늘어서 있다. 이전과는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그곳은 한국미술계의 좀 기이한 주변부로서의 위치를 고수하는 곳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용산 삼각지는 이발소 그림의 원산지였고 값싼 액자 집과 아마추어 화가들의 집결지였으며 대중들의 미의식과 감성에 정확히 겨냥되어 있던 많은 그림들이 생산되는 장소였다. 가난한 화가지망생들이 혹은 타고난 손재주를 지닌 이들이 밥벌이를 위해 꽃과 화병, 풍경, 초상화를 그리던 곳이다. 일반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림의 보편적인 경향들이 대량 생산되는 곳, 클리세 이미지들의 범람과 빠른 유통이 이루어지는 한편 관습화 된 한국미술의 제반 양식들의 전범들과 그 아류들이 혼재되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아울러 미군부대 주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인해 미군들의 취향에 호소하는 이국취미와 오리엔탈리즘에 호소하는 그림, 틀잡힌 한국적 이미지들을 재현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은 분명 미술이 이야기되고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공간이었으나 사실 주류미술계에서 은연중 멸시와 배척을 받아오던 곳이기도 하다. 그간 `삼각지 미술`은 제대로 조명되어 본 적도 없었고 그 역사와 나름의 영향 역시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현재 `삼각지 미술계`는 급속히 잊혀지거나 망실되어 가는 중이다. 삼각지에서 화방과 액자 집이 사라져가고 있다. 다소 향수 어린 삼각지 풍경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그 만큼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전재은_봉인된 일기_비닐, 거즈, 실_148×100×130cm_2002
정정엽_부엌_캔버스에 유채_130×160cm_2000

그곳에 가 갤러리가 들어와 삼각지라는 공간에 집을 지었다. 새롭게 개조된 이 집은 어쩌면 통속과 저급한 문화의 온상으로 낙인찍힌 곳, 미술이 과잉으로 넘쳐나지만 정작 `미술`이 없었거나 없다고 여겼던 곳, 전시공간과 미술 문화가 부재한 곳에 개입하고 간섭하고 미술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중이다. 가 갤러리는 일반 주택을 개조해 만든 전시공간이자 일련의 기획전, 개인전을 통해 한국 키치미술과 이발소 그림의 본거지에 또 다른 미술의 기류를 흐르게 할 예정이다. 나로서는 이 공간이 갖는 의의가 특별하다는 생각이다. 인사동이나 사간동보다도 어쩌면 용산 삼각지에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전시공간이 들어선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주지하다시피 용산은 서울중심부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일본군과 미군들이 우선적으로 집을 짓고 진주했던 곳이다. ● 우리 문화와 타문화가 접점을 이루었던 곳이자 일종의 경계로서의 의미를 지닌 공간적 성격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용산은 행정 구역상 우리 땅이지만 그 중심부에는 미국, 미군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기이한 영토다. 그런가하면 한국 현대사의 상흔, 상황성을 압축하고 있는 전쟁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한켠에는 국립박물관이 신축되고 있다. 이 같은 상당히 복합적이고 흥미로운 공간에 전시장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열릴 전시들이 기대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신하순_Tuebingen의 밤-오늘 하루_화선지에 수묵담채_60×84cm_2003
강봉조_자라는 것이 사는 공간Ⅱ-아파트_흑백인화_11×14"_2000

개관기획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제목은 `집`이다. 집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다룬 작가들의 작업을 모아보았으며 회화, 사진, 설치 각 영역에서 1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오늘날 지극히 사적이고 밀폐된 공간, 세상의 끝이자 세상 밖으로 열려있는 유일한 공간, 가족과 가정이 기묘한 한 쌍을 이루며 진행되는 곳이며 출산과 생육, 교육과 훈육, 금기와 억압, 전통적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들의 충돌, 자본과 노동,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끝없는 갈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다소 처연하고 복합적인 공간을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마침 가 갤러리가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기도 해서 `집`을 `집`(가갤러리)에서 물어보는 일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 주지하다시피 근대에 들어와 중요해진 공간은 다름아닌 공장, 병원, 감옥, 집, 거리 등이었다. 모든 공간은 그 공간에 들어와 사는 이들의 몸과 정신을 일정하게 훈육하고 길들이고 체계화한다. 내부와 외부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속에서 공간은 끊임없이 구성, 재구성된다. 집이란 공간도 동일한 운명에 속한다. 집, 방이란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사인성의 공간이다. 사회와 분리되고 경계지워진 곳이자 사회적 삶으로 나가기 위한 휴식과 충전, 도모가 진행되는 곳이다. 자신이 구체적인 삶, 누추하고 비근한, 그러나 매일 매일의 삶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매일의 사유와 경험이 진행되고 축적되는 곳, 그러한 집을 통해 일상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건져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자신에게 고립되고 유폐된 공간에서 공간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거나 밖의 세계와의 은밀한 소통을 욕망하기도 할 것이며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에서 탈출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 그런가하면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그 추억의 장소에서 한 가족, 가정의 일상사를 기억시키는 역사적 공간인 동시에 매우 은밀한 가족 구성원들의 호흡이 서린 곳이 다름 아닌 집이기도 하다. 집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일상이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이루어지는 장소다. 그래서 그 안에서 삶은 겉으로 표상 되는 `가족` 이면에 가족 구성원들의 일상사가 적나라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가족이 구성되고 진행되기 위해 불가피하지만 잔인하고 힘든 삶의 면모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바로 집, 가정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 가정은 교묘하게 은닉되어 있고 텔레비전 위에 걸린 맑고 밝은 웃음을 머금고 어깨를 맞대고 있는 가족 사진만이 그 모든 것을 대신한다.

유근택_A Scene-어쩔 수 없는 난제들_한지에 호분, 수묵담채_162×130cm_2002
김범_무제_종이에 색연필_19×28cm_1995

가정, 실내풍경, 침실과 목욕탕, 세면대, 작업실과 서재 등등 공공적 장소성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다루는 작업만을 모아본 이번 전시는 오늘날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지를 새삼스레 사유해보고자 마련되었다. 이들 참여작가들이 다루는 `집`은 단일하거나 특정한 공유성으로 모아지지는 않는다. 저마다 집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틀들이 다르고 그 다른 만큼 우리들은 집에 대한 스펙트럼을 다양하고 깊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신하순과 설승순, 유근택, 최은경, 정정엽, 윤소연이 그린 집이라는 공간은 자신이 거주하는 구체적인 집으로부터 출발해 그 집과 삶, 사회의 연관성으로 확장된다. 일상의 에피소드 같은 편린을 담백한 수묵 담채로 그려내면서 소소하고 비근한 일상을 사는 자신과 가족간의 하루를 그림일기처럼 그려낸 신하순, 수묵의 번짐 효과를 통해 살림살이와 아이의 장난감으로 부산한 거실 풍경을 평면화시켜 낸 유근택은 삶의 현장성이 느껴지는 구체적인 방, 공간을 조형화하고 있다. 자신의 주공 아파트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추억과 향수의 이미지를 이중화면구조로 보여주는 설승순, 비근한 일상이 반복되는 창백한 방이지만 그 방을 따스한 시선으로 되살려내는 최은경, 집과 부엌 곳곳을 흘러 다니는 시뻘건 팥 알갱이를 꼼꼼히 그려내는 정정엽의 그림은 집과 여성이란 존재와 생명을 은유한다. 윤소연의 집, 방의 풍경 역시 여성과 공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김경덕_컬러인화_11×11"_2002
고현주_동신아파트1_컬러인화_50×60cm_2002

재개발에 들어가 철거되기 직전의 아파트 방을 찍은 고현주는 오늘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집, 아파트가 갖는 여러 의미 망들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투자가치와 신분상승의 욕망에 의해 살만한 집들이 속수무책으로 폐기처분되는 과정의 방에는 살림 살이와 가족사진이 뒹굴어 다니는 풍경이 스산하게 펼쳐진다. 김경덕이 보여준 자신의 방은 이불과 옷가지, 방바닥에 놓인 사물들이 적조하게 놓여있다. 차분하게 찍혀진 이 사진 속 방에는 자신의 삶의 현장성이 손에 잡힐 듯 재현되어 있고 이를 통해 일상과 삶의 의미를 차분하게 물어본다. 강봉조는 저 멀리 보이는 집을 찍은 사진을 통해 오늘날 이 도시에서의 집, 방이란 공간을 심리적 거리를 통해 조망시키면서 그 거리만큼이나 낯설고 의아한 집이란 존재를 실존적인 측면에서 되새겨본다. 윤현옥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공간에 환생시켰다. 할머니, 할머니의 방과 연관된 여러 사물들이 민화 등과 함께 어우러져 펼쳐진 공간 풍경은 우리네 전통문화와 주거공간, 그 안에서의 여성의 삶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재은, 김월식, 권종환, 천성명은 `집`이란 공간을 실질적으로 재현하면서 설치와 영상을 통해 집을 물어본다. 외부와 소통이 불가능한 밀폐되고 고립된 공간을 서성이며 안/밖을 탐색하는 천성명의 영상작업, 부드러운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공간을 구현하고자 하는 은밀한 욕망과 절대고독의 표상으로 자리하는 전재은의 집, 이상적인 공간을 설계하면서 집에 대한 몽상을 꿈꾸는 듯한 김월식의 가상의 집, 권종환의 집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미지는 오늘날 집에 대한 작가들의 발랄한 상상력과 인문적 사유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윤현옥_할머니의 방_가변크기 실물설치_2001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곳, 피의 소중함이 명분으로 강제하는 곳, 가족과 연인 그리고 나만의 절대적인 고립된 공간, 익숙함과 친밀함,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곳,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이질적이며 두려운 공간이기도 하고 타자에게는 완강하게 밀폐된 공간이기도 한 집을 통해 집,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읽어보는 한편 동시대에 집에 대한 관심과 재현이 무엇 때문에 뒤따르고 있는지를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 박영택

Vol.20030620b | 집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