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mm

문화일보 갤러리 기획 이길렬 조각展   2003_0618 ▶ 2003_0708

이길렬_255mm_버려진 신발에 식물의 잎_가변크기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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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60

전시장에 들어서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백 켤레의 신발들을 만나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발들은 짝을 이루고 있고 각자의 공간을 차지하며 놓여 있고 나뭇잎이나 꽃잎으로 덮여 있다. ● 전체를 본 후에 개별적인 신발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공간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야 한다. 길은 의도한 구획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놓인 미로 같은 존재이다. 발아래 놓인 신발들을 들여다보다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같은 곳에 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신발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볼 가능성은 없다. 더더욱 그 모두를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진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며 방향감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신발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볼 수도 있다. 관람자가 신고 있는 신발도 본다면........

이길렬_255mm_버려진 신발에 식물의 잎_가변크기_2003
이길렬_255mm_버려진 신발에 식물의 잎_가변크기_2003
이길렬_255mm_버려진 신발에 식물의 잎_가변크기_2003
이길렬_255mm_버려진 신발에 식물의 잎_가변크기_2003
이길렬_255mm_버려진 신발에 식물의 잎_가변크기_2003

수집한 신발은 나름의 역사성을 간직하고 버려진 것들이다. 이것은 신발이라는 도구가 삶의 총체적인 의미망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농부의 신발, 공원의 신발, 학생의 신발, 아이의 신발...... 흙이 묻어 있고 실밥이 터져 있고 밑이 닳아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잎으로 덮여진 뒤에도 개별적 형태는 살아있다. 작가는 신발 주인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추측 할 자유를 얻는다. ● 다시, 신발은 잎으로 덮인다. 잎은 색소가 서서히 빠져나가 갈색으로 혹은 노랗게, 검게 변해간다. 미묘한 색의 차이나 잎들이 중첩되어 생기는 선의 모양은 시각적인 재미를 더하고 있다. 잎(leaf- leaves)은 그 나름의 어원으로 '떠나다(leave)'와 함께 하지만 굳이 의미전달의 편의를 위해서 신발의 성격과 연관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발아래 놓여진 잎으로 덮인 신발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발을 감싸고 있는 도구가 어떤 '사용사태전체성(Bewandtnisganzheit)' 즉 '신뢰성'에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나의 눈은 세계와 마주하고 있고 내 발은 255mm의 신발을 신고 있다. ■ 이길렬

Vol.20030623a | 이길렬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