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로부터의 생성

장재준 사진展   2003_0624 ▶ 2003_0706 / 월요일 휴관

장재준_영덕군 옥계리 옥려암 02.02.24.일 11:16_흑백인화_43×54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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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24_화요일_05:00pm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02_737_7650

무엇보다도 디지털 프린트가 판을 치는 요즘, 이처럼 아름다운 흑백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거기에 섬세한 화질이 주는 묵직한 느낌도 말할 수 없이 좋다. 흑백사진이 갖춰야할 모든 덕목을 갖춘 장재준의 사진을 보통의 풍경사진으로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대부분 서울을 조금 벗어난 곳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장소에서 찍혀졌고, 균형이 잘 잡혀있는 서정적인 풍경사진이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강물이나 나무숲이나 계류 같은 자연경관을 보여주기 위해서 대형 카메라를 짊어지고 가서 일부러 사진을 찍었으리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어쩐지 느낌이 석연하지 않다.

장재준_홍천군 동면 공자골 02.11.28.목 12:32_흑백인화_43×54cm_2003

아마 대형 카메라여서 가능한 로우키 조의 미세한 입자 때문일까, 그의 사진은 너무 고요하다. 나뭇 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둑을 콸콸 흘러 넘치는 물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앞에 둔 사람은 그 불가사의한 침묵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고 만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정신에 파고드는 '절대 풍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 풍경 속에는 쉽게 현실의 한 순간을 잘라낸 것이 아니라, 긴 시간들을 중첩시켜 놓은 듯한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그의 풍경의 깊은 안쪽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낮고 무거운 울림 같은 것을 들을 수 있다. 문명의 비극적인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불길한 정적 가운데에는 산허리를 깎고 바위를 깨는 중기들의 파괴적인 굉음이 압축되어 있다.

장재준_화천군 화천읍 방골 02.10.17.목 10:59_흑백인화_43×54cm_2003

그의 풍경은 우연하게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선택되고 계산된 광경이다. 그것은 대규모 공사현장의 참혹하게 파헤쳐진 그런 상투적인 광경이 아니다. 오히려 정일에 싸여 있는 그의 사진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그 풍경의 저쪽에는 다리며 제방, 포장된 도로, 댐과 같은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마치 암세포처럼 은밀하게 대지에 파고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콘크리트의 소재는 자연 가운데에서 얻어지지만, 인공적인 가공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비자연적인 물질이다. 그의 사진에 나오는 흙이나 바위에 찍혀진 긴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에 생산된 비자연적인 물질인 것이다. 그것은 어느 장소로나 쉽게 이동이 가능하며 원래의 자연을 덮어씌운다. 그리고 쌓여진 물량만큼의 자연을 대신해서 그 자리를 지배한다.

장재준_인제군 고사리 내린천 02.01.23.일 11:21_흑백인화_43×54cm_2003

그의 사진에서 자연이 힘겹게 인공적인 물질의 침범을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달한 자연의 자생적인 치유능력만으로는 풍경의 '진화'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니 그보다도 지금 원시의 순결한 자연과 인공적으로 변형된 자연을 구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그의 사진에 퍼즐처럼 짜여 들어가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그들을 변별하는 유효한 기준으로 기능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살아있는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세계와 그 뒤쪽에 모습을 가리고 있었던 가상의 세계와의 경계를 가를 수 없는 것처럼, 자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점점 더 확실하게 우리의 주변을 침식하고 있는 이들 낮선 자연이야말로 우리가 새로운 자연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장재준_홍천군 남면 장항리 홍천강 02.10.12.토 11:45_흑백인화_43×54cm_2003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안셀 아담스가 그려낸 것과 같은 완벽하게 이상화된 자연도, 로버트 아담스나 루이스 볼츠의 차갑게 깨어있는 인공적인 공간도 아니다. 그들의 사진에서처럼 이상화되어 있지도, 그렇다고 공허하거나 절망적이지도 않다. 장재준은 잘 계산되고 꾸며진 무대장치로서의 서정적인 자연풍경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그곳에는 항공촬영이나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세계와는 다른 안정된 원근법적 세계가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시각이다.

장재준_영월군 팔괴리 남한강 02.08.30.금 15:05_흑백인화_43×54cm_2003

누구나 아름다운 그의 흑백사진을 보며 어느 구석인가 불길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느낌은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나 낮은 관개용 둑을 넘어 흐르는 강물 뒤쪽에 반드시 찍혀 있는 콘크리트 댐이나 포장된 도로나 다리나 축대 같은 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그의 은염사진이 갖고 있는 물질적인 질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바로 사진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현실에 구원으로서의 물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사진에는 문명의 상징으로서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함께, 반드시 물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재준_영덕군 주왕산 02.02.24.일 11:44_흑백인화_43×54cm_2003

물은 콘크리트 구조물과는 달리 튼튼하지도 않고, 유동적이며 고정적인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견고한 물질 이상으로 강하다. 그리고 물의 흐름은 영원히 이어지는 시간과 생성의 근원적인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단순한 풍경 이상으로 문명을 읽기 위한 하나의 지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승곤

Vol.20030624b | 장재준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