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박순철 수묵담채展   2003_0620 ▶ 2003_0630

박순철_침묵_수묵담채_340×1410cm_2003_부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1번지 Tel. 02_724_6309

박순철의 근작: 지리산의 내면풍경 ● 박순철은 93년 덕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공평아트센타(95년), 사비나 갤러리(97년 99년), 그리고 금년 조선일보미술관 전시까지 약 10년 동안 줄곧 전통 매체인 수묵화를 통해 인물을 그려와 인물화가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대상의 골격을 정확히 파악하되, 섬세한 묘사에 의존하기보다 몰골(沒骨)로서 활달하고 대담한 붓질과 대담한 생략에 의한 그의 표현방식은 현대 수묵인물화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지금까지 그가 작품의 모티브로 다루어왔던 인물상들은 권위적이고 이상적인 인물상들이 아니라 대부분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어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어떤 일에 골몰해 있거나 그저 무심히 생각에 잠긴 노인들 등 그의 시선은 언제나 뉴스의 기사거리는 되는 거창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섬세하고 미시적인 심리상태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처럼 사회의 후미진 곳을 찾아 일상적 삶의 내면적 표정을 드러내려는 일관된 의도에서 그가 표현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그리든지 간에 그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미묘한 정서가 베어있다.

박순철_침묵_수묵담채_340×1410cm_2003_부분

이번 전시에서 전시의 주제인 지리산도 단순한 시각적 풍경으로서의 지리산이 아니라 한 많은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지리산의 내면풍경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지리산은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요즈음도 방학 때만 되면 도시 생활에 찌든 심신을 추스르고 신령한 정기를 받고 오는 곳으로서 그의 예술의 정신적 모태라고 할 만한 남다른 장소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그동안 지리산을 오가며 느낀 것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들어온 사건을 토대로 잘못된 이데올로기의 폭력 앞에 말없이 억울하게 희생되어간 민초들의 삶을 들추어내고 있다. ● 그 구체적 사건은 1951년 한국전쟁 발발시기에 지리산 일대의 산청과 함양 지방에서 일어났던 양민학살 사건으로 올라간다. 최근에서야 그 진상이 밝혀진 이 사건은 당시 국군이 빨치산 공비토벌 작전을 이유로 무고한 양민 386명을 죽이고, 정부는 생존 유족 732명을 통비분자(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수 십 년간 고통을 준 한 맺힌 사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국군은 지리산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적군의 거점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고 1951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집단 살해하고 나뭇가지를 덮어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동네 개들이 뜯어 먹어 시체도 찾지 못했다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박순철_침묵_수묵담채_340×1410cm_2003_부분
박순철_침묵_수묵담채_340×1410cm_2003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능가하는 이 전율할 만한 사건이 약 50년이 지난 지금 몇 명의 생존자와 한 맺힌 유족들에 의해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진상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들의 억울한 희생은 적군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을 보호해야할 국군들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극대화된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자신의 친척이자 몇몇의 생존자중 한사람인 이모로부터 생생하게 전해 듣고 이 무고한 양민들의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억울한 죽음을 통해 잔악무도한 인간의 치부를 고발하고자 한다. 당시 만삭이었던 그의 이모는 그 자리에서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잃었고, 자신은 총알 3발을 맞고도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 이러한 비극적 사건을 생생히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길이가 14m 가량 되는 기념비적인 거대한 작품 두 점을 제작했다. 지리산의 전체적인 풍경을 다각도에서 그린 「지리산」과 당시 양민들이 학살당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의 긴장을 그린 「침묵」이 그것이다. 작품 「침묵」은 화면 중앙에 섬세한 채색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유일한 생존자이자 증언자인 작가의 이모를 그려 넣었고, 좌우에는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학살 직전의 주민들의 모습을 수묵으로 흐릿하게 그림으로써 중앙의 인물과 대비시키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현된 당시 주민들의 다양한 모습은 자신들에게 닥쳐올 불행한 죽음을 알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불행한 일이 닥칠 것 같다는 본능적은 직감으로 말미암아 고요한 긴장과 침묵이 흐르고 있다. 작가는 처절한 살해 장면을 리얼하게 그리지 않고, 그 직전의 적막한 긴장을 그림으로써 오히려 불안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것은 주민들의 일상적인 평온한 삶과 불행한 죽음 사이를 가교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의 여지를 증폭시키고 있다.

박순철_지리산_수묵담채_320×1410cm_2003_부분
박순철_지리산_수묵담채_320×1410cm_2003

이번 전시에 나온 또 하나의 대작인 「지리산」은 작가의 현장 사생에 근거해서 재현된 것이지만, 단순한 시각적인 풍경이 아니라 그러한 지리산의 한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있는 장소로서 기능한다. 무겁고 거친 필력으로 그려진 지리산의 비장한 풍경은 인간들의 극악무도한 잔인성을 꾸짖는 듯하며,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지리산의 풍경은 의미론적으로 인간의 이기주의적이고 잔인한 측면과 편협한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왜곡된 인간상과 대립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 그 밖의 출품된 작품들에서도 인간들의 욕심과 편협한 기계론적 사고에 의해 자연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장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작품들이 많다. 작품 「不」은 지리산에 있는 절과 암자를 중심으로 난 길을 마치 살이 찢겨 피가 나는 것처럼 붉은 색으로 묘사하고, 갈기갈기 산을 찢은 길을 한자인 아니 불자를 연상하게 함으로써 종교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환경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또한 작품 「지리산 빌라」는 지리산의 장묘문화를 풍자한 작품으로 도시문화가 발달하면서 도시는 점차 아파트로 빼곡히 채워지고 있지만, 지리산의 젊은 청년들은 도시로 떠나고 과거 생활의 터전이었던 밭은 점차 묘로 바뀌어 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노인」이라는 작품에서는 주름 잡힌 노인의 얼굴과 배경에 있는 논밭의 주름을 대비시킴으로써 한 인간의 한 많은 삶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와의 상관관계를 환기시킨다.

박순철_노인_수묵담채_46.5×70cm_2002

이처럼 그의 관심은 언제나 원초적 자연의 섭리를 동경하며, 인간의 反자연적이고 反생태적인 것에 대해 저항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또한 도시민들의 거창하고 화려한 외면보다는 그늘지고 소외된 계층의 평범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주목한다. 이것은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로서 그가 지리산이라는 산골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형성된 정서로 보인다. 그것은 서울에서의 도시생활이 각박할수록 그것의 대립 항으로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듯하며, 그것이 이번 전시회의 배경을 지리산으로 설정한 연유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작가에게 있어 지리산은 그의 고향임과 동시에 대자연의 섭리를 드러내는 장소인 것이다. ● 이처럼 그의 의식은 궁극적으로 인간 이성이 만들어가는 사회나 역사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음을 비판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어 주객일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지향점이라는 동양 전통의 사유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사유는 서구문명의 영향 하에 인간과 자연의 괴리가 극심해지고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매우 시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이 시대적 표현방식의 개발은 오늘날 한국화가 안고 있는 공통된 과제이기도 하다. ● 화단에 데뷔이후 10년사를 정리하는 이번 전시회는 그가 그동안 추구해온 표현방식과 지필묵을 다루는 물오른 기량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절정은 언제나 함정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절정은 곧 새로운 시작을 잉태해야 하며, 새로운 시작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매너리즘의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도 염두 해 두어야 할 것이다. ■ 최광진

Vol.20030625a | 박순철 수묵담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