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e & Human 2003

김명수 개인展   2003_0627 ▶ 2003_0703

김명수_nature & human_인쇄된 종이에 드로잉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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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27_금요일_06: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전력문화회관 1층 Tel. 02_2055_1192

딱지와 구름이 빚어내는 포스트모던 아우라 ● 카메라의 발명에서부터 비롯된 영상 기술과 고급 인쇄술의 발달은 생생하게 재현된 시각 이미지를 온 세상에 넘치게 하였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분위기)의 상실'이라는 용어로 복제 기술이 발달한 현대의 예술 상황을 진단한 바 있다. ● 그러면 기술의 발달이 정말로 예술을 말살시키고 말았는가, 라고 물을 때, 비디오 아트니 키네틱 아트니, 앗쌍블라쥬니 하는 현대의 여러 사조들은 '아니'라는 대답의 증거가 될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캔버스라는 제한된 테두리를 말살시켰을 뿐이지, 예술 정신과 창작의 열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져서 오히려 예술의 영역을 더욱 확대시켜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재현의 수단으로 출발한 사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선구자 만 레이(Man Ray)의 작품 중에는 바이올린의 울림통 구멍 문양을 여인의 좌상 누드 사진의 양쪽 허리춤에다가 결합시킨 사진 작품이 있다.(1924). 그것은 이미 현대 예술의 고전이 되어 미술사 책자에 오르내리며, 백남준의 「비디오 첼로」 시리즈를 제작하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김명수_city & human_인쇄된 종이에 드로잉_2002

문제는 기술이나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정신과 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용적 목적의 새로운 기술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가는 부단한 노력의 과정을 현대 예술사는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만 레이의 작품은 인간의 육체성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한 명상을 촉발시킨다. 그는 아우라를 상실케 한다는 복제 기구를 사용하여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한 것이다. ● 인쇄물의 사진 한 부분에다가 드로잉을 하고 그것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서 새로운 시각 이미지로 표출하는 김명수의 작품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우라'라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독특한 개성을 연출한다. 그의 제작 기법은 이미 현대의 거장들이 물꼬를 터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진 이미지를 마음대로 변형하고 결합시키는 포토샵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그의 작업은 좀더 손쉬운 과정을 거칠 수 있으며, 컴퓨터 아트가 보편화됨에 따라 이러한 유형의 작품들이 앞으로 많이 등장하리라 예측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제작 기법이 아니라 작품 전체가 풍기는 예술적 기운(氣運)과 그 기운의 밑바탕이 되는 사유와 인식, 곧 작가의 창조적 정신이다. 흔히 에스프리라고 하는 예술혼은 작가의 체험, 사고와 정서, 창의성 따위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정신력의 총체를 말함일 것이다. 한 작가의 작업이 새로운 사조의 추종이나 흉내에 불과한 것인지, 또는 나름대로 오리지낼리티를 가지는 것인지는 그 정신력의 깊이나 강도에 의해 판가름난다고 할 수 있다.

김명수_nature & human_인쇄된 종이에 드로잉_2002

97년, 그의 프랑스 전시를 우연히 관람한 평론가 장 루이 쁘아뜨뱅은 부재와 실존의 관계로 그의 작업을 해석한 바 있다. 김명수는 시원한 눈맛을 주는 스펙터클한 풍경 사진 한가운데에다 마름모꼴로 세워진 딱지 형태의 이미지를 올려 놓는다. 풍경 사진의 한가운데에다가 네 개의 삼각형의 조합인 딱지 이미지를 삽입시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속 풍경으로의 몰입을 차단시키면서 새로운 풍경의 아우라를 창출해 낸다. 그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순간, 관객은 당혹감과 의아심, 긴장감 등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창출한 포스트모던한 이 새로운 풍경은 '자연과 인간', '감춤과 드러남',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접힘과 펼쳐짐', '놀이와 풍경', '기계적 공정과 수작업의 과정' 등에 대한 상념의 산책을 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딱지 접기 놀이에서 착안했으리라 짐작되는 이 작업으로 이제 노년의 초입에 들어가는 그가 딱지 놀이를 하자고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 온다. 책자나 인쇄의 권위는 생명력으로 충일한 어린애들을 결코 짓누르지 못한다. 어린애들은 오히려 그것을 뜯어 딱지로 만들어 놀면서 자유와 행복을 구가한다. 대량 복제 기술에 의해 넘쳐나는 시각 정보와 이미지, 그것은 우리가 주체적 삶의 태도를 잃어버리는 순간, 곧바로 우리를 압도하여 우리의 눈을 시각 이미지의 게걸스런 소비자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인쇄된 사진에다 딱지를 그려 넣는 작업으로써 창조의 자유로움을 회복한 그는 풍경의 참다운 의미에 대해서 물어 온다. 그냥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대지 위에서 딱지놀이를 하는 풍경, 풍경 속을 사는 풍경, 풍경을 배경으로 딱지를 날리는 그 광경이 바로 진정한 풍경임을 그의 작업은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김명수_The tower of orient_출력된 종이에 드로잉_1997

그 자신이 '구름바위'라 명명한, 구름인 듯한 바위인 듯한, 눈덩이인 듯한 이미지의 삽입 작업도 역시 딱지 작업과 같은 연장선 상에 있다. 도대체 '구름바위'라는 상상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동양 고전의 한시 문학이나 불교적 상상력의 세계에는 '운암(雲巖, 구름바위)'이니, '운제(雲梯, 구름사다리)'니, 하는 비유적인 결합의 어구(語句)가 등장한다.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한 동양적 상상력의 세계로부터 그는 구름바위를 차용해 온 것일까? ● 작가의 작업실에는 그 답을 풀어주는 열쇠가 있다. 젊은 시절, 그는 한때 미술에 회의를 느끼고 심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무렵 그는 수석 채집을 하는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친구가 버린 돌을 주웠는데, 뭉게 구름을 연상시키는 돌이었다. 구름처럼 생긴 그 돌은 그의 작업실에서 수십 년을 같이 지내면서 그만 구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과학자의 실험실에서는 거기에 놓여있는 물질들이 우연한 계기에 서로 반응을 하여 새로운 물질로 변화되는 일들이 더러 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도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서 그와 같은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무겁고 고정된 형태의 돌덩어리가 작가의 주변에 오래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벼운 공기 덩어리인 구름으로 공중 부양을 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구름바위는 시골 초가집 지붕에도 얹히고, 남산의 석탑 지붕돌 위에도 올라앉고, 계곡의 물 위에도 내려앉는다.

김명수_nature & human_인쇄된 종이에 드로잉_2002

상상력이란 원래부터 이렇게 난데없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유년 시절의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수년간 병을 앓은 적이 있다. 지루한 병원 생활 중의 어느 겨울날에 폭설이 내렸는데, 어린 눈에 너무나 경이로웠던 모양이다. 그가 자란 곳은 눈을 보기 힘드는 남쪽 항도 부산이었으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 때 그는 가득 쌓인 눈을 하늘의 구름이 땅에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흰 천으로 독일의사당 건물을 다 덮어 버린 설치미술가 크리스토의 작업도 자연이 대지에다 하는 강설(降雪)의 설치 작업에다 견주면 작은 흉내짓거리에 불과하다. 한 순간 이 세상을 뒤바꾸어 놓는 강설이 가져다준 경이로움이 그의 상상력을 가동시켰던 것이리라. 강설의 경이로움이 돌을 구름으로 변환시키고 다시 그것이 눈처럼 지상에 내려앉게 만든 것이다. 김명수의 구름바위 작업은 결국 어린 시절 겪었던 경이로움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사진을 이리 다듬고 저리 고치고 또 그것을 새로 찍고 하는 것이다. 예전에 무당이 쇠방울 몇 개와 색깔 있는 천 조각을 흔들면서 일상의 공간을 신성한 분위기로 트랜스(전환)시켜 아우라를 만들어 내었듯이 김명수, 그는 복제 기술의 산물인 인쇄물 사진 쪼가리를 주물럭거리면서 경이로움의 아우라를 포스트모던하게 되살려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목은 '에피파니[현현(顯現)]'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상상력은 수천년의 시간을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오가고, 우리의 시골 마을에서 먼 외국의 숲속까지 공간 영역을 펼쳐간다.

김명수_nature & human_인쇄된 종이_2002_부분

나는 두어 해 전에 운전을 하면서 하나의 환상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그것은 초록빛 아스팔트 위에 핑크빛 눈이 내리는 환상이었다. 그 환상은 어떤 비유나 상징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몇 백년 후, 혹은 몇 천년 후에는 이 지상의 어느 곳에서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감을 동반하는, 그런 강렬한 것이었다. 김명수가 만들어낸 인공 풍경도, 예를 들어 청색 바위가 구름처럼 내려앉은 강 풍경처럼 언젠가는 실제로 그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수 백년 전의 사람이 한 순간 현대의 대도시에 당도하게 되면 이 도시는 하나의 환상과 다름없으며, 반대로 현대의 인간이 고인돌 시대의 어느 마을에 들어가거나, 더 거슬러 쥬라기 시대로 틈입하게 된다면 그 펼쳐지는 광경은 환상으로밖에 다가올 수 없기 때문이다. ● 김명수의 작업은 체험에서 가동된 상상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긴장감과 이채로움과 경이로움이 떠도는 새로운 풍경을 창조해 낸다. ● 어느 환쟁이든 그가 진짜 환쟁이라면, 마른 하늘에 벼락이 울리고, 평지에서 파도가 이는 (靑天轟霹靂, 平地起波濤), 그런 상상력의 가동 없이는 자신의 오리지낼리티를 확보하기는 힘들 것이다. ■ 박원식

Vol.20030628a | 김명수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