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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벌갈이 9번째 주제展   2003_0308 ▶ 2003_0815

임영선_천국의 아이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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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김미혜_김윤환_김재석_김재화 김천일_박영균_박은태_방정아 심규섭_이주희_이해직_임영선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내 전시장 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 1번지 Tel. 02_743_7732

십여년을 돌아보고 세벌갈이를 이끌어낼 데에 대하여 ● 아메리카. 우리사회는 그동안 이 네 음절의 단어에 대해 깊이 말할 수 없었다.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나선 사람들의 처절한 저항을 접할 때만해도 우리는 군부독재와 아메리카를 세트로 묶어놓는 것에 그쳤다. 저 흉악한 윤금이 사건을 비롯해서 수십년동안 매향리에 떨어지고 있는 폭탄세례 등 점령군(U.S Army)의 폭거들도 분단상황의 어쩔 수 없는 고충으로 이해하고 넘겨야했다. ● 아메리카에 대한 이러한 반쪽짜리 인식은 뜻밖에도 감성코드에 의해 온전한 것으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한 차레 소동이 생기면서 이제는 반미도 하나의 패션이 되었다. 대중(mass)에게 파고드는 미디어의 파급력은 실로 위대했다. 감성코드에 호소하는 형태의 대중집회인 촛불시위는 반미를 운동권의 전유물에서 시민의 것으로 전화시켰다. 정치적인 의식을 통해 보아왔던 아메리카의 모습을 스포츠나 촛불시위 같은 일종의 대중환각의 미디어를 통해서도 감성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됨으로써, 반미가 대중적 기호로 각인된 것이다.

방정아_그의 똘마니들-옛! 형님, 형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0×100cm_2003
김천일_비행_천에 아크릴채색_60×250cm_2003

두벌갈이가 '아메리카 제국주의'라는 주제를 내건 것은, 이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논의는 올 봄 이라크 전쟁을 통해 논의된 반전평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반미 없는 반전 없다'는 명제를 의제로 선택한 것이다. 아메리카의 문제를 '한반도의 상황만이 아닌 전세계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맥도널드나 코카콜라 같은 다국적 자본, 아메리칸 인디언, 보수기독교' 등에 얽힌 세부 상징체계를 드러낸다는 이들의 회의록을 보면, 이들의 이번 전시는 아메리카에 관한 21세기 초반의 시대적 기록이나 증언으로서의 가치를 전제하고 있다. ● 두벌갈이의 이번 전시의 주된 관심사는 주제의식의 선명함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식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작가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직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훨씬 어려운 주제를 잡은 것이다. 기실 민중미술 이래 아메리카의 시각적 상징체계가 반미의 기치아래 광범위하게 위해를 당해왔으며, 그 작품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80년대의 도상들이 아니던가. ● 작품들을 통해 두벌갈이의 십여년 연륜을 확인하는 일은 비워두고 넘어간다. 보여주는 이들과 보는 이들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이 전시가 열리고 나서의 나중 얘기이다. 대신에 두벌갈이의 짧은 역사를 지켜본 사람으로써, "십여년을 돌아보고 세벌갈이를 이끌어낼 데에 대하여" 그 머리말 정도를 꺼내놓고자 한다.

박영균_인사동_디지털 프린트_2003
김윤환_미래의 아이들_단채널 영상설치_2003

두벌갈이는 올해로 창립11주년을 맞이해 아홉번째 정기전을 여는 '젊은 80년대 세대 미술가 모임'이다. 90년대 초반에 사회로 나온 이들은 '80년대 민족민중미술의 지평 위에 새로운 결실을 맺기 위해 갈아 놓은 땅을 다시 한번 갈아엎어야 한다'는 계승의 관점을 견지했다. "민중미술, 계승이냐 전환이냐"라는 유명한 토론회가 열릴 즈음, 이들은 계승을 선택하며 계승의 주체를 자임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의 취지문을 압축해서 짧은 문장으로 풀면 이렇다. ● "첫째, 개인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식 속에서 개인 창의력의 발전을 추동하고, 둘째, 삶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지향하며, 셋째, 삶의 체험과 관찰을 통해 파악된 현실의 변화를 적극 반영하고, 넷째, 사회 모순과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여 다양한 조형어법을 모색하며, 다섯째, 민족민중미술인들과 연대하면서 미술의 소통방식과 다양한 실천을 모색한다." ● 이들은 1993년 정기전 서문에서, 80년대 리얼리즘미술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의 상황들은 자신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스스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민족민중미술의 다음 세대가 아닌가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이듬해의 전시서문에서도 심광현은 '빈곤과 폐쇄성에 갇히기 쉬운 미술의 지평을 '두번갈아' 풍부하고 개방된 실험의 지평으로 전화시키는 작업'을 강조하고 있다. 2000년의 정기전 『가리봉역에서 청량리역까지』에서는, 내용적인 면에서 개별작업의 모듬전이 아니라,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창작을 모으는 '주제기획전'으로 되돌리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작게는 재료의 다양화에서부터 대중들과 친근한 매체를 활용하자'는 논의를 피력하고 있다.

김미혜_겁간_캔버스에 아크릴 패갯_100호_2003
김재석_살아있다..._한지에 채색_80호_2003
이해직_역사의 빙하기는 누가 만드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8×89cm_2003

2003년 정기전을 여는 두벌갈이는, 재료와 매체에 얽힌 최근의 기류에 관해서 그들 스스로 확인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곁에서 보기에도 숙명적인 자기 갱생의 기로에 서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변화했지만 80년대 유산을 받아든 두벌갈이에게 있어 변화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은 두벌갈이의 위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형상회화를 하는 젊은 미술가들의 모임'이라는 점이다. ● 현재의 구성원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미혜, 김윤환, 김재석, 김재화, 김천일, 박영균, 박은태, 방정아, 심규섭, 이주희, 이해직, 임영선 등을 비롯하여, 김시영, 이병창, 김현숙, 노재영, 양철민, 이상권, 장호, 차성건, 홍준기 등 20여명의 작가들이 있다. 그동안 전시에 참여했던 김윤경, 김재환, 박건웅, 유기호, 이경복, 이경신, 최은하, 최호철, 한용권 허창훈 등의 작가들을 생각해보면 그 면모가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 물론 이들 작가들이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학생미술운동과 노미위 등의 현실참여적인 지향을 실천해왔으며, 지금껏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각성을 거듭해왔다는 점 잘 알고 있다. 또한 형상회화의 가치에 대해서 설치미술이나 사진영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의 높낮이를 가질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필칭 '형상회화'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10여년을 버텨낸 이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절반의 찬사와 절반의 아쉬움을 함께 보낸다.

이주희_아메리칸 원주민-그들의 꿈_캔버스에 혼합재료_50호_2003
김재화_화가들 수다떨기_디지털 프린트_2003

형상회화그룹이라는 규정이 두벌갈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은 애초에 민중미술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나섰던 시점의 취지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두벌갈이는 형상회화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속해나갈 모임이 아니다. 민중미술의 계승자로 자임하고 나섰다는 것은 80년대 미술이 이루어낸 매체와 영역의 확장이라는 열매를 이어받아 더욱 폭넓게 예술의 종다양성을 구가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초심을 명확히 짚어내는 것이 두벌갈이에 대한 일각의 편협한 규정을 일소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 광자협과 두렁과 현실과 발언, 서미공 등이 70년대식의 한 가지 미술에 반기를 들고 나서서, 여러 가지 미술의 가능성을 열어낸 것. 이것이 80년대 민중미술의 핵심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80년대의 유산은 하나가 아닌 여럿을 지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두벌갈이의 암중모색은 민중미술의 계승자를 자임하고 나섰던 90년대의 초반 상황이 오늘날에까지 지속되고 있는 데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난맥상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자체의 변화의 몸짓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두벌갈이를 넘어 세벌갈이, 네벌갈이, 여러벌갈이를 이끌어낼 때가 되었다.

박은태_코카콜라에 대한 명상_종이에 혼합재료_70×100cm_2003
심규섭_USA money_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03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 나타나는 매체의 확장과 도상의 폭넓음은 두벌갈이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세벌갈이의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다. 계승이냐 전환이냐를 논하던 것도 어느덧 10여년전의 얘기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테제가 있다. 바로 소모임의 중요성이다. 두벌갈이의 존재 자체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것, 소모임의 자생성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래들이 활발하게 토론하고, 교류하며, 스스로들 열린 마당을 만들어나가는 데서, 새로운 출발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다. ● 21세기 초반의 두벌갈이가 80년대 선배 미술가들과 어떠한 차별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젊은 80년대 세대 미술가들'이 이 시대의 감성과 의제를 따라잡는 길은 다시금 소모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이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고, 작가들의 작업실을 돌면서 오프라인 모임을 열고 있다. 이미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절반 이상 이루어놓고 있는 것이다. 10년 묵은 소모임 두벌갈이를 다시금 주목하는 이유. 그들 자신이 갈아놓은 땅을 다시 한번 갈아엎는 세벌갈이를 이끌어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김준기

Vol.20030808a | 슈퍼마켓 U-S-A_두벌갈이 9번째 주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