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 없는 일상의 얼굴들

Face of Nature 사진展   2003_0811 ▶ 2003_0824

방병상_Show in The City-둔치 수영장_컬러인화_30×40"_2003

세미나_2003_0816_토요일_02:00pm

초상 그리고 공간_최봉림 사진의 추상성_정영혁 컬러 네가티브를 이용한 이미지 재현_이찬우 Zone System으로 흑백사진 읽기_유철수

참여작가 김옥선_방병상_이혁_정영혁 이찬우_이태성_조용준

아트 프라자 갤러리 강원도 춘천시 옥천동 73-2번지 예술마당 Tel. 033_242_3666

'현실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어떤 인물, 특히 그의 얼굴을 그림, 조각 혹은 사진으로써 재현'한다고 정의되는 초상은 일반적으로 실재의 '어떤 인물, 특히 그의 얼굴'을 현실보다 품위 있고, 멋지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초상은 모델과 고객의 자아도취적 욕망, 신분상승의 욕구, 아름다움과 품위에 대한 갈망을 허구적으로 만족시켜 주는데 정성을 다했다. 그 결과 화폭 위에 그려진 모델의 얼굴, 청동에 부조된 인물, 사진 찍힌 고객의 얼굴은 거의 언제나 실제를 능가하는 품격과 행복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초상의 모델에 대한 이상화, 유미화 전략은 사진초상 스튜디오와 더불어 더욱 노골적으로, 세속적으로 구사되었다. 사실, 초상관의 사진들은 약과였다. 1930년대, 화보잡지의 융성과 함께 본격화된 광고사진, 패션사진은 초상의 허구성을 당연시 여기게 할 정도로 모델의 외모를 수정, 보완했다. 한마디로 말해, 사진의 대중화와 더불어 초상의 사실성, 진실성은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 그러나 이상적인 초상의 허구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한 것 역시 사진이었다. 사법경찰당국에 의한 범죄용의자의 정면, 측면사진의 활용과 이것의 확장된 형태인 개인신분증 증명사진이 제도화된 이후, 몇몇 사진가들은 유미적인 초상의 전략을 전복시키는 시도를 체계적으로 감행했다. 아우구스트 잔더 August Sander의 독일인의 초상, 워커 에반스 Walker Evans의 지하철승객의 초상, 다이안 아버스 Diane Arbus의 주변인들, 그리고 리차드 아베든 Richard Avedon의 유명인사와 서부인들, 토마스 루프 Thomas Ruff의 대형 증명 사진은 사진역사가 갖고 있는 그 성공적 예들이다. 이들은 치장하고 가꾸는 초상이 아니라, 가능한 한 현실 그대로의 초상, 모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초상의 생산에 진력했다.

이혁_Valentine Day_컬러인화_2003
김옥선_Happy Together-미련과 슈테판_컬러인화_180×225cm_2002

사진기획전, 『Face of Nature』를 위해 모인 작가들은 바로 위의 작가들이 개척한 초상사진의 노선 위에서 각자의 개성에 맞춰 작업을 진행시켰다. 모델의 외모와 품성을 고양시키려는 의도를 멀리하고, 우리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실체적 진실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다. 오늘의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을 가식 없이 파헤치려는 모색을 감행했다. 인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상투적으로 반복 재현하거나, 평범한 인물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술책을 그만 두고, 평범한 일상의 얼굴에 천착했다. 모델을 이상화하고 유미화하는 해묵은 초상의 전통, 인물재현의 관례와 단절을 선언하는 사진들을 제출하고자 했다. 작가들은 조명의 능수 능란한 조작과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의상, 배경, 소도구를 통해 재현인물에 대한 호의적 감정의 상승을 부추기려는 시도를 배격하고, 모델의 객관적 정체성, 그들의 평범한 일상의 재현에 주력했다. ● 정영혁은 「여자이고자 To Be Girl」 성전환수술을 한 인물의 초상을,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만든 배경에 합성시키면서, 유전자 조작과 성전환을 욕망하는 디지털 시대의 소수를 가시화한다. 남자로 살라는 신의 명령, 운명을 거역한 '여자'는 시대와 사회가 '여성성으로 규정한 모든 장식, 화장, 포즈를 동원한다. 곱게 빗은 긴 머리, 가냘픈 목거리, 매니큐어를 칠한 긴 손톱, 젖가슴을 강조하는 팔짱을 낀 자세는 '여성성'을 체득한 한 인물을 보여준다. 그러나 포토샵에 의한 점 dot 의 분열증식은 유전자 조작, 인위적 성 gender의 조작을 상기시키면서, 그녀의 외모가 인위적으로 만든 '여성성'임을 보여준다. '여자이고자 한' 남성이 한때 존재했었음을 드러낸다.

이태성_소지품검사_컬러인화_30×40"_2003
이찬우_Time collector_컬러인화_40×30"_2003

이찬우는 '손맛'을 즐기는 낚시꾼의 복장과 용모를 채집했다. 일종의 기념촬영 방식을 택하면서, 작가는 레저와 도시생활의 상관관계를 탐색했다. 어떤 모델은 낚시에 적합한 복장과 도구를 갖추어, 준비된 낚시여행임을 드러내지만, 어떤 모델의 복장과 장비는 즉흥적이며, 충동적인 낚시여행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배경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한국 도시공간의 전형인 아파트와 같은 건물이 언제나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레저는 결코 도시공간으로부터의 탈출, 혹은 자연으로의 일시적 귀환이 아니다. 그들의 낚시행위는 세속을 잊어버리고, 자아에 침잠(沈潛)하려는 전통적 취미가 아니라, 일종의 도시적 탐닉의 연장이다. 이찬우의 '강태공' 초상들은 배경으로 자리잡은 도시적 건물을 통해 소위 무사 무욕한 취미생활에도 도시의 현실, 일상의 욕망이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증언한다. ● 이태성의 「소지품 검사」는 평범한 개인의 일상성을 들춰내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한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물품을 부드러운 깔개에 가지런히 정렬시킴으로써, 그의 '소지품 검사'는 자발적인 것이지 결코 억압적이 아닌 것임을 보여주지만,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시각적으로 소유하려 한다는 점에서 권위적이다. 모델의 정면성과 무표정한 표정은 한편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는 모델들의 심리상태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범죄용의자의 증명사진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어쨌든 억압적인 학교생활과 수사행위의 관례를 자발적 폭로의 행위로 전환시키는 이태성의 작업은 평범한 개인의 일상성에 주목하는 새로운 사진 도큐먼트임에 틀림없다. ● 알려지지 않은 일반의 일상성을 파헤치려는 욕망은 이혁과 더불어 관음증적 시선과 결합한다. 그는 젊은 남녀의 격렬한 키스장면을 은밀한 사적 공간에서 포착한다. 모델들의 키스장면은 오늘날의 개방된 성문화, 성행위 sexuality에 있어서 여성의 능동성을 객관적으로 증언하지만, 디지털 시대와 더불어 도처에서 가동되고 있는 '몰카의 취재'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그의 친구, 친지들의 일상의 성을 참관하는 이혁의 작업은 분명 낸 골딘 Nan Goldin에 닮아 있다. 그러나 낸 골딘만큼은 적나라하지 못하고 평범하다는 점에서, 작가나 모델 양자 모두는 여전히 소심한 '정상인'이며 성의 노출을 꺼리는 한국인이다. ● 위의 작가들처럼 전통미학이 애호하는 개성의 표현, 감정이입과 주관성의 개입이라는 예술적 조건들을 결단코 거부하는 김옥선은 "외국인과 결혼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여성들의 초상"을 제작한다. 그들의 거주공간에서 그들의 일상을 연출하는 「Happy Together」는 실내장식, 모델들의 복장, 포즈를 통해 이질적인 문화와 윤리가 결합하고 충돌하는 제 양상을 가시화한다. 변화한 우리의 민족주의, 사랑의 관념을 증언하면서, 그들의 경제적 조건, 애정의 상태, 문화에 대한 상호이해의 정도를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연출한다.

정영혁_To be girl_디지털 프린트_2003
조용준_Usual II_컬러인화_20×16"_2003

조용준과 방병상의 사진은 결코 초상이라는 전통적 장르로 분류된 수 없는 작업이지만, 이상적 현실을 추구하거나 미화된 현실을 가공하지 않는 점에서 앞의 작가들과 닮아 있다. 한 구체적 인물의 정체성을 재현하지는 않지만, 앞의 작가들처럼 일상적 현실 속의 인물을 냉철하게 직시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니까 이 두 작가의 작업은 특정 개인의 초상은 아니지만,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집단의 정체성, 내면성의 탐구라는 점에서 다른 참여작가들과 공통점을 지닌다. 방병상의 스냅사진은 익명의 주인공을 화면 속에 설정한 다음, 그를 중심으로 도시적 인간관계의 핵심적 양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둔치 수영장」에서 한 청년이 완벽한 수영복 차림으로 자신을 과시하지만, 주변의 인물들 모두는 그에 대해 냉담하다. 「연신내역」 부근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구치지만, 행인들은 그것에 절대적으로 초연하고, 갓난아기는 자기를 보살피는 엄마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소외, 무관심, 자기집착이 도시적 인간관계의 절대적 양상임을 방병상의 카메라는 보여준다. 반면 조용준은 청년세대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계산된 연출을 통해 드러낸다. 고독과 고통에 시달리는 청년계층의 절망을 자극적으로 연출하고야 만다. 멀리서 보면 그들의 좌절은 결코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클로즈업을 통해 보면, 그들의 정신적 상처는 치유의 가망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 그 상처는 청년기의 순진한 방황에서 온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조용준의 연출사진은 그들을 가해하는 주체가 오히려 거대한 도시, 도시를 지배하는 권력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존재론적 고통이라기보다는 사회학적 불안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 기획전 『Face of Nature』를 위해 모인 작가들은 분명 한국사진의 새로운 경향들이다. 이상적 자연의 조형미를 상투적으로 보듬거나, 상투적 이데올로기에 의거하여 복잡한 현실을 인위적으로 재단(裁斷)하는 한국사진의 주류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작가의 심리적 내면성에 천착하는 전통미학에서 완전히 일탈하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있을 그 풍요한 결실을 기대해 본다. ■ 최봉림

Vol.20030809a | Face of Nature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