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리

임경섭 회화展   2003_0816 ▶ 2003_0907

임경섭_oh my teacher_캔버스에 유채_65×49.5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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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816_토요일_04:00pm

SEOUL FRINGE FESTIVAL 2003

관람시간 / 06:00pm~02:00am / 주말_04:00pm~02:00am

까페시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7-2번지 Tel. 02_336_8406

1. IMF가 한국 사회를 강타하기 불과 몇 년 전 홍대 정문에는 아주 생경한 플랙카드가 하나 나붙었다. "홍대앞 오렌지 비상." 언뜻 보기엔 모과일회사의 홍보용 문구 같아 보였던 이 문구의 진원은 홍익대 총학생회였다. 내막은 이랬다. 당시 언론을 통해 홍대앞 유흥문화에 대한 진단들이 요란하게 소개되었는데, 이 플랙카드의 문구는 '강남의 오렌지족들이 홍대앞에 상륙했다'는 식의 여러 가지 억측들의 한 단상이다. 홍대 총학생회에서는 '홍대앞 오렌지 비상'이라는 말을 통해 나름대로 홍대생과 홍대앞 유흥문화를 분리하여 건전한 홍대생들의 생활상을 보호, 홍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해프닝에 가까웠던 홍대앞 문화를 둘러싼 당시의 진단들은 문화이론가의 과장된 언설이 보태지면서 눈덩이처럼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 또한 강남의 오렌지족들이 홍대앞을 들락거리면서 최첨단의 트렌디한 문화들이 홍대앞을 점유하게 되었다는 언론의 내용들은 홍대앞 유흥문화를 둘러싼 온갖 유언비어를 확대 생산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오렌지족과 대비되어 홍대 앞을 둘러싸고 유행했던 단어가 있다면 언더그라운드일 것이다. IMF가 시작되면서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한 작은 클럽들이 언론의 집중을 받게 된 것은 오히려 1990년대 말이었다. 드럭 출신의 크라잉넛이 언더를 넘어 오버에서 화려하게 데뷔하면서 홍대앞은 오렌지족의 놀이터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문화의 리더로 비상하였다. 1990년대 문화의 중심에서 늘 빠지지 않고 소개되었던 홍대앞도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변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이제는 새삼스럽게 홍대앞을 언더문화의 발원지로 추켜세우지도 않으며 언론들도 홍대앞 소식들에 그다지 소란을 떨지도 않는 듯하다. 오히려 공무원들의 자기만족형 행사들이 조심스레 펼쳐지면서 아름다웠던 먹자골목의 풍경은 포크레인에 의해 싸그리 사라지고 그 공간엔 「걷고 싶은 거리」라는 칸셉(?)하에 유치한 시멘트-돌조각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소 쿨하면서도 열정적인 홍대 앞의 문화풍경들을 생각해본다면 이건 조금은 비극적인 결말인 듯하다. 자본이 철수한 홍대앞에 마포구 자치행사가 득세를 하고 그 많던 조그마한 클럽들은 사라지고 몇 개의 거대한 클럽들만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철마다 펼쳐지는 행사들은 이젠 진부할 따름이다. 더 이상 어떤 문화이론가도 홍대 앞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을 강타한 온갖 상투적인 홍대앞 문화에 대한 언설이 사라질 즈음, 우리는 그 문화가 낳은 아이들을 목도하게 된다.

임경섭_천국의 문_캔버스에 유채_65×49.5cm_2003
임경섭_self_캔버스에 유채_45.5×37.5cm_2003
임경섭_self_캔버스에 유채_45.5×37.5cm_2003

2. 임경섭은 1990년대 홍대앞 문화를 자양분으로 해서 자라난 "홍대앞 아이들"이다. 젊다고 하기에는 그의 생물학적 나이는 어느새 기성의 초입에 들어섰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아이들이라는 호칭이 적당해 보인다. 이번 전시는 2002년 대안공간 풀에서의 그룹전 이후 그의 두 번째 전시이자 첫 번째 개인전이기도 한데 나이에 비해 꽤나 느린 행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해야 하나. 평상시에 그는 용돈(?)을 벌기 위해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일주일마다 장이 서는 홍대앞 놀이터에서 자신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판다. 용돈벌이도 안 되는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구매자(?)/들의 반응을 탐색하기 위한 거라나…. "홍대앞의 아이들"이 그렇듯, 그는 어눌하고 느린 말투를 가졌으며 언더, 자유, 하루끼, 배수아의 소설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정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자본(!)-상업적이라는 말 대신 말이다-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맴돌고 내뱉어질 때쯤엔 약간 뜨악(!)해지기까지 한다. 디자인회사를 다니던 그는 자본에 휘둘리는 디자인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그림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인 캔버스화(畵)들은 그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일러스트전공자인 그가 정통적인 회화의 형식을 빌릴 때는 자신과 마주할 때인 듯싶다. 종이에 그린 그림들에는 과거보다 강렬한 색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건 그의 욕심 때문이다. 그 그림들에서는 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고자 했다. 가장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한 그림들은 일러스트의 형식을 갖춘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임경섭답다. 이외에도 까페 유리창에 그린 그림들과 몇 개의 설치작품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시도하는 것들이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진정 당신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다소 도발적이고 진부한 나의 질문에 약간은 수줍은 듯 그가 말했다. "언더…요…." 라고.

임경섭_큰사람_종이에 오일파스텔_30×42cm_2002

3. 처음부터 나의 설정은 잘못되었던 듯하다. 홍대앞 아이들은 다만 존재했을 뿐이고 그리고 변죽을 올리다 사라진 건 자본과 언론, 그리고 거기에 빌붙어 먹고사는 그렇고 그런 문화 권력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게임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느새 자라난 1990년대의 홍대앞 아이들이 자라나 홍대앞을 휘젓고 다니는 바로 지금부터 홍대앞은 진정 자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홍대앞 아이들에게 타인은 그대로 상처가 되어 오지만 그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 튼튼한 자아를 올곧게 지켜내길 바란다. 남이 사는 데 관심 많고 남처럼 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우리의 풍토를 보기 좋게 한방 날려버린 이 언더의 자식들이 그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이 자신의 자식을 낳을 때쯤 우리도 타인의 삶에 좀더 너그러울 수 있을까. 그가 무엇을 하며 살던 말이다. ■ 구정화

Vol.20030816a | 임경섭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