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cation

이승진展 / computer graphics   2003_0820 ▶ 2003_0826

이승진_pixel_컴퓨터그래픽_가변크기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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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3_0820_수요일_05: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82.(0)2.735.2655

수없이 널려 있는 오브제 그리고 그 위에 투영된 도시인의 일방적인 욕망. 그러나 그것은 오브제를 질식시킬 뿐이다. 이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울기도 하고 심지어 싸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평등과 화해이기에 우리는 아직까지 인류문화를 살찌우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힘찬 심장 박동에 희망을 건다. 이 심장 박동 소리에 발 맞추어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만나 서로의 소중한 속내를 들어내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생명체, 특히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승진은 과감하게 'no'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말풍선을 도입한 작업을 통해 인간과 자연, 자연과 도시환경, 도시문명과 인간과의 대화의 여지를 만들어 낸다. 문자화된 코드의 규정화, 획일화의 함정에서 벗어나면 이들 무생물들 역시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이승진의 작업세계를 통해서 확인해 보자.

이승진_rainfalls_컴퓨터그래픽_가변크기_2003
이승진_apartment212_컴퓨터그래픽_가변크기_2003

커뮤니케이션은 말이 없다! 만화책 속에서 볼 수 있는, 대화 내용을 담아내고 생각을 담아 내는 말풍선. 바로 이승진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최대한 부풀려 주는 조형 장치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승진이 사용하는 말풍선은 하나 같이 비어있어 당황케 한다. 문자교육의 명료한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이승진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눈에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의 커뮤니케이션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눈으로만 읽어내는 소극적인 방법으론 어림도 없다. 과거, 현재, 미래의 기억과 상상력을 총 동원해서 말풍선의 빈 공간을 채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그 안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 정지된 화면 속에 네러티브를 부여하고 무생물을 인격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아파트, 반복된 디지털 이미지, 빛이 사라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줄기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가는 왜 생명체 대신 차가운 건축물로 대표되는 도시환경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까? 역시 이 질문에 대한 첫 출발점은 그의 대화상대, 즉 도시환경의 정체를 밝히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 커뮤니케이션은 친구다! 적어도 이승진에게 있어 '자연은 벗이고 도시문명의 소산물은 환경을 어지럽히는 毒'이라는 식의 흑백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될 것 같다. 그에게 있어 도시환경은 자신의 체취가 묻어 있고 소중한 추억이 서려 있는, 말 그대로 오랜 친구이다. 대상에 인격을 부여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벗'이 될 수도 '毒'이 될 수도 있음을 이승진의 작업은 암시한다. 작가의 이와 같은 접근법은 메를리 퐁티의 대상과 주체 사이의 그것과는 차별되는 개인적인 '사연'이 깃들여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비록 삭막한 콘크리트 벽이 만들어 낸 도시환경을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서정적인 따뜻한 색깔을 띠게 되는 것이다. 기하학적 공간성 옆에 시간적인 요소가 담아내고 있는 개인적인 내밀한 이야기를 위치시키며, 도시환경의 다중 인격적 모습 속에서 따뜻한 벗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승진_dailogue-routecopy_컴퓨터그리픽_가변크기_2003
이승진_low resolution_컴퓨터그리픽_가변크기_2003

커뮤니케이션은 소통 가능성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작가가 그의 소중한 벗, 도시환경과 대화를 시도하는지 그의 조형언어를 통해 살펴본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이승진에게 있어 무엇보다 '배열'이 중요한 표현 방법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문자를 통한 이진법적 커뮤니케이션 괘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이미지와 배경을 다층으로 중복시키며 일 방향의 시점을 거부한다. 하나의 이미지 위에 다른 재료 다른 색상의 이미지가 꼴라쥬 되고 이는 다시 검은 색 배경 위에 시점이 무시된 구도로 새롭게 배치된다. 하나의 공간 안에 여러 개의 시점을 적용시키고 있는 작가의 전략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다양한 시점은 시간성을 요하는 네러티브 구성을 용이하게 만들고 이는 이승진의 화면 위에 보다 극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만들어 낸다. 또한 한 화면 안에서 이질적인 재료가 줄 수 있는 단절감은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검은색을 통해 완화되며 중간중간 위치하고 있는 회색 톤의 영역은 이웃하고 있는 이미지 사이의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이승진_together_컴퓨터그리픽_가변크기_2003
이승진_you&me_컴퓨터그리픽_가변크기_2003

커뮤니케이션은 가치다! 이승진의 이번 작품전이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조각난 이미지, 소위 '깨진 이미지'를 이용해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얼기설기 깨진 픽셀을 가지고 있는 말풍선은 물론이고 건물들 역시 과대하게 확대한 디지털 이미지처럼 외곽 선이 깨어져 있다. 이와 같은 불완전한 이미지의 파편을 통해 작가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을 꿈꿔온 모더니즘적 사고와 그러한 획일적인 시점이 만들어낸 현실의 일그러진 모습을 그려낸다. 디지털 기술로 반복적으로 복사된 수많은 픽셀 이미지들. 그러나 조각난 픽셀 이미지들은 끝까지 흩어지지 않고 뭉쳐 형태를 만들어 내며 작가의 작업 속에 하나의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 "점이 모여서 이미지를 만들고 이미지가 모여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는 작가의 설명이 단순히 물리적인 구조에 대한 해석이 아닌 가치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 창 밖 시선을 가로막고 선 그 미웠던 커다란 회색 건물이 오늘따라 유독 애처롭게 보인다. 비 때문일까? 아니 역시 '도시환경'에 가치를 부여하고 대화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어느새 내 안에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 같다. ■ 이대형

Vol.20030820b | 이승진展 / computer graph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