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들의 노래

노주환展 / NOHJUHWAN / 盧主煥 / installation   2003_0820 ▶ 2003_0830

노주환_활자도시, 서울_납활자_70×160×1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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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820_수요일_06:00pm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시공간을 초월하는 기묘한 현재의 가능태 ●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이미지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문자 중심의 문명에서 영상중심의 문명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였고 이제 우리는 읽는 문화에서 보여주는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른바 마샬 맥루한이 지적한 쿨 미디어(Cool Media)의 세계 속에서 우리의 눈과 두뇌는 시간의 흐름을 좇아 이미지의 홍수라는 시각정보를 선택적으로 취사한다. 그렇게 스피드가 에너지가 되는 현실에서 노주환의 작업은 다시 언어와 문자의 영역을 중심 축으로 설정하고 있다. 일견 시간을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고집스러움으로 비춰질 수 있겠고 로우테크의 번잡함과 노동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지극히 구태의연한 아날로그적 사고의 소유자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세워낸 활자의 집적체들이 문자의 기표나 기의를 함의하거나 문자, 언어의 권력과 기록성의 범주를 재현하는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이 주는 힘은 그 마이크로 월드 같은 미시적 단위의 집적물들을 언어와 텍스트의 상징계를 초월하는 어떤 거시적 시지각의 지평에 닿게 하는데 있다. 그것은 리요따르가 추상표현의 형태를 규명하고자 인용했던 "숭고(sublime)의 영역", 즉 시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시각화시키는 개념과 맞닿아있다. 다시 말해서 노주환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으로 채우고 세운 활자의 입자들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이성과 문명의 단초들로 가시화 되나 종국에는 그 거대한 덩어리(매스)의 정치학에 의해 우주적 관점과도 같은 거시적이고 정신적인 지형도로 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의 설치공간을 관람객들이 가로지르면서 개체의 놀라운 세부를 호흡하고 익숙함으로 위장된 생경함에 대한 심리지리적 접근으로 밀착될 때 관람자는 고물이나 폐품의 즉물적 호소를 부담스럽게 순례하는 것이 아닌 어떤 성찰의 영토를 밟게 되는 것이다.

노주환_한강의 지혜,1377_납활자, 영상, 설치_60×1800×1000cm_2003_부분
노주환_한강의 지혜,1377_납활자, 영상, 설치_60×1800×1000cm_2003

그 지점이 바로 노주환이 꿈꾸는 진리의 상징계일 것이다. 마치 태초의 신비와 우주의 통사적 비밀을 머금은 은하계처럼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험한 아우라가 발산되는 공간 말이다. 가령 기울어진 원기둥의 형태 속에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세계의 속담과 각 민족의 문자들이 활자로 조립되어있는 「바벨탑1446」를 보면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의한 문명의 발자취를 상징화한 기념비적 토템으로 다가오나 우리의 시선은 "신의 본질이 나의 실존을 앞서간다는 세계관"을 부정했던 인본주의의 시초, 바벨탑 너머에서 문명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찬란한 외양의 이면에서 인간문명이 깊게 새겨나간 이성의 근거들이 텅 빈 모습으로 불투명해지는 지경 말이다. 그러니까 옛 선인들의 지혜와 숨결 속에서 이 시대의 삶을 재정비해 보자는 식의 일차원적이고 훈도적인 메시지를 추구하고 있다기보다는 금속활자의 견고한 영토적 한계지각에서 종결되지 않는 탈 경제적, 인식론적 시지각으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와 문자들을 활자로 재구성한 "책들"이라는 작품도 놓여지는 방식은 지시물과 기호의 존재조건이 예시되어 물리적 "기표"가 대두되는 물체로 보여지나, 오브제의 표면위로 투사되는 관람객의 시지각은 언어와 의식, 문학적 감성등의 복합적 교차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된 기묘한 현재의 가능태를 엿 볼 수 있게 된다.

노주환_바벨탑,1446_납활자, 영상_220×260×200cm_2003

또한 전시장 바닥 전체에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시의 지형을 활자로 구성한 「한강의 지혜 1377」마치 항공사진을 보는 듯한 전체의 조감도 사이로 관람객들이 거닐게 함으로써 서울의 역사적, 인문지리적 공간을 관조하면서 장소성에 대한 개별적 경험들을 생경한 방식으로 해체, 조립 혹은 추억하게 한다. 그렇게 활자를 상징화한 물리적 세계를 통해 관람객의 내면적 실재(의식, 감성, 역사)와의 경이로운 교감을 추구하는 노주환의 작업은 마샬 맥루한이 "구텐베르그 은하계"에서 지적했던 Hot Media(인쇄혁명)의 외적 폭발, 확산, 지식을 전시장 안에서 복원시키면서 Cool Media의 내적 폭발에 지배되어 가는 이미지 시대를 항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막연하게 인쇄혁명에서 기계혁명으로 문명으로 이어진 과거의 영화를 꿈꾸고 있지는 않는 이상, 집요한 노동과 수공성의 회복을 근간으로 하는 미술의 새로운 준거를 세우고 있는 노주환의 작업은 끊임없이 자기 증식되는 비 고정적, 비의적 시공간을 향해 서있다는 생각이다. ■ 이원일

노주환_시,이별 그 사소함_납활자_22×33×8cm_2003

1337년, 우리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탄생시켜 '직지'를 인쇄하였다. 그럼에도 문화적 도약을 이루어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가슴에 깊이 남는다. 뿐 만 아니라 만든 장인에 대한 역사 자료도 활자도 온전한 책도 가지고 있지 못함이 이땅의 한 사람으로써 결핍을 느끼게 한다. ● '1446년 세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성언어이며 조립식 언어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와 쓰임을 다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결 고운 언어들을 퇴행시키거나 변모시키기까지 한다. 언어의 힘, 활자로 일구어낼 수 있었던 수없는 지식과 지혜와 기록과 창조와 발전들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 활자와 한글, 그것은 인류의 지고한 창조성과 지혜의 상징이며 우리 민족을 세계사로 이끌어갈 시금석이며 견인차라는 것을 각인하면서 지금까지 우리의 정신과 삶을 다듬어주고 고물로 버려져 가는 활자에 생명을 찾아주고 싶다. 그 활자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지혜의 노래들을 바벨탑, 책, 한강의 모습으로 남겨 사람들과 함께 듣고 싶다. ■ 노주환

Vol.20030823b | 노주환展 / NOHJUHWAN / 盧主煥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