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安을 다녀와서

西安紀行_제2회 여행과 미술展   2003_0827 ▶ 2003_0902

장문걸_용두(俑頭)_혼합재료_180×120×3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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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827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진한_권여현_김태곤_박영근_신장식 이강화_이동용_장문걸_조명식_조이수

국민아트갤러리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內 Tel. 02_910_4465

우리 일행이 西安에 도착한 날은, 설을 쇤 지 이레째였고 입춘을 맞아 계절을 바꾼 지 나흘째였는데, 이 대륙 중국은 그런 곳이었다. ● 6일을 西安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밤이면 매일같이 回族이 운영하는 꼬치집에 갔다. 하지만 양고기와 각종 고기를 꿴 쇠꼬챙이는 몇 날을 불과 기름에 시달린 듯 했다. 먼지와 바람이 한 덩어리가 된 듯한 주인총각과 처녀의 옷도, 그들의 손도 한가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어느 날은 노상에 쪼그리고 앉아서, 어느 날은 서너 평 남짓한 가게 안에 앉아서 고프지 않은 배를 채웠다. 이 허름한 가게는 어울리지 않게도 우리가 머무는 그럴듯한 하얀 호텔에 바로 붙어 있었다. 이런 동거는 이 곳의 정치와 경제가 그렇고, 잘 계획된 도로와 교통법규에 별 관심없는 사람들, 초현대식 백화점에서 흐르는 빠른 시간과 성루에 서린 천년의 시간이 그렇다. 부처님은 적멸궁을 만들고 중생은 아방궁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 곳에는 모두가 함께 있었다.

박영근_兵兵兵兵馬_캔버스에 유채_90.9×145.4cm_2003

西安은 산시성에 속하며 북쪽으로 渭河가 흐르고, 둘레가 13.7Km인 장안성벽에 의해 구시가와 교외로 구분된다. 인근에는 咸陽이 있다. 첫날 咸陽공항에서 西安 숙소로 오는 길에 아방궁에 들렀을 때, 마침 저무는 해가 장관을 이뤘다. 항우가 아방궁을 불태우자 석달 동안 불길이 올랐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붉은 기운이 이 석양 같지 않았을까 싶다. 남쪽 교외 慈恩寺에는 현장이 창건한 7층 大雁塔이 있고, 북서쪽에는 遷福寺의 小雁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華淸池, 無漏寺 등이 있다. 성내에는 역사박물관이 있고, 북쪽에는 碑林이 있는데 1만 1천 점의 소장비가 그야말로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곳은 關中盆地에 위치해서 주위에 눈에 들어오는 산이 별로 없다. 언덕처럼 오른 곳은 옛 황족의 무덤인 경우가 많았고, 산이겠거니 의심하게 하는 곳은 진시황릉이었다.

고진한_흐린-그림_캔버스에 유채_60×91cm_2003
신장식_병마용 인상_캔버스에 흙과 아크릴채색_45.5×91㎝_2003

이곳 西安을 찾은 목적은 아무래도 진시황릉병마용에 있었다. 『사기』「秦始皇本紀」에 의하면, 황릉은 전국에서 70여만 명이 동원되어 완성되었다고 한다. 지하궁전에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황제의 관은 구리를 녹여 둘렀다. 이 구리벽을 뚫는 사람은 화살 세례를 받게 설계되었다. 고래기름으로 만든 초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도록 되어있다. 눈앞에 펼쳐진 병마용도 놀라운데, 진시황릉은 아직도 발굴 중이고,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 거듭되고 있다. 게다가 이같이 사료로만 남아있는 것들도 발굴된다면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다.

이강화_바람-西安_캔버스에 혼합재료_90×162.1cm_2003
조명식_Field_혼합재료_50×150cm_2003

진시황에 얽힌 얘기도 흥미롭다. 진시황이 죽자 신하 李斯와 趙高는 소금에 절인 생선 몇 수레를 가져다가 시체 썩은 냄새를 가리려 했다고 한다. 영생을 얻고자 했던 황제의 마지막 모습으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생각해 보면 知天命이라는 나이 50에 생을 마감했으니 그제야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모든 것은 황제가 죽을 때를 몰라 변변한 준비를 해 놓지 못한 탓이다. 그들은 유서를 조작해 막내아들 胡亥를 황제로 옹립했다. 그런데 진시황 생전에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바로 胡(오랑캐)" 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떠돌았다 한다. 이 때문에 진시황은 북방의 匈奴를 정벌하고 만리장성을 쌓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결국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胡가 아니라, 진시황의 막내아들 胡亥였다고 일침을 가한다. 요즈음, 자식 가진 사람은 가슴에 새길 일이다.

권여현_병마용_사진에 혼합재료_150×80cm_2003

진시황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고, 평가는 다양하다. 재임 기간은 38년 정도다. 그런데 이 곳 西安은 國都였던 시기만 漢나라에서 唐나라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에 이르고, 손오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부터 張學良휘하의 북동군이 蔣介石을 체포하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가 있다. 감히 모두를 돌아볼 생각을 갖지 못할 만큼 전체가 유적이고 층층이 역사다. 이 곳은 바라던 병마용 이상의 것을 보여 주고 깨닫게 한다. 뜻 있는 사람은 공부할 만한 곳이다.

김태곤_출토-기억_혼합재료_150×80×5cm_1987

이른 아침에 장안성벽에 오르기도 했다. 성벽은 중국다운 거대한 규모로 강물과 함께 휘돌고, 옅은 아침안개가 끝을 알 수 없게 했다. 성벽아래 광장의 한 무리는 중국 전통무예를 서툰 솜씨로 가다듬고 있었고, 노인 서넛은 나무로 만든 기구를 줄에 태우고, 또 내리고 있었는데, 무술동작과 흡사했다. 그 것은 요즘 아이들이 갖고 노는 요요와 같은 것인데, 중국에서 창안된 이 것은 그들의 손에 있을 때 비로소 본래 지니고 있던 정신성과 경지를 알 수 있게 했다. 멀리 한 가족은 성벽에 올라 어린아이에게 옷을 갈아 입혀 앉히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거대한 성벽 위의 작은 이들 가족은 아침태양의 크기만했다.

이동용_병마용과 말_알루미늄_86×78×38cm_2003

일행 중 근래 가정을 이루거나 직장을 갖는 등 좋은 일을 맞은 분들이 있어서, 그분들이 날을 돌아가며 맥주를 돌렸다. 별로 크게 축하할 일이 아니어도 주위에서 우격다짐으로 좋은 일이라고 해서 한턱내기도 했다. 얘기가 서로 오갔지만, 우리가 본 많은 것을 함부로 설명하고 결론짓는 일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들 크고 작은 비밀의 열쇠 한가지쯤은 찾아냈을 것이다.

조이수_西安-바람에 흔들리는 불빛_DVD 영상_00:06:10_2003

西安을 떠나는 날 여명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기후가 건조한 편인 그 지방에서는 수년동안 볼 수 없었던 양이었다. 이제 눈과 함께 덮어두었던, 우리가 보았던 것과 알아낸 것을 작품으로 보이려 한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전시도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 장문걸

Vol.20030826b | 西安紀行_제2회 여행과 미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