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흐름

권두현 사진展   2003_0828 ▶ 2003_0909

권두현_여_디지털 프린트_40×26.5"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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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828_목요일_06:00pm~09:00pm

시공간 프로젝트 브레인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뫼비우스의 띠 ● 중학교 때던가 교과서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보고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시작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묘한 선, 안팎의 구별이 없는 모호한 도형, 그 앞에서 난 삶의 처음과 마지막에 대해 생각했다. ● 십대 까까머리 시절이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서른 살을 넘어서도 하루는 24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가온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뉴스를 확인하고 무언지 모르게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끼니를 때우고 사람들과 만나고 지친 날개를 접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 10년 만에 만난 친구나 어제 만나 헤어진 사람과의 대화도 변함이 없다. " 어떻게 지내" 반복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미 준비돼 있다. " 그냥 별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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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찍다 ● 대화를 하건 일을 하건 그 안에선 무수한 생각들이 오간다. 뚜렷이 각인돼있는 흔적도 있고, 때로는 어디서 묻었는지 모르지만 지워지지 않는 정체불명의 자국들도 남아있다. 나도 모르게 연기처럼 사라진 것도 있고 빙하처럼 떠도는 기억의 조각도 있다. ● 뉴욕에 발을 디딘지 몇 개월 지났을까. 나는 맨하탄을 지나다가 우연히 10년 전의 추억과 대면했다. 스쳐간 한 여인이 남긴 향수의 여운이 날 그곳으로 이끌었다. 순간 잠겨있던 빙하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희미해있던 영상에 차츰 또렷하게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손에는 이미 카메라가 들려있었고 그 여인과 함께 내 추억은 렌즈 속으로 들어왔다. ●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가 지난 시절 앨범을 보며 기억을 되찾아간다면 나는 카메라를 들고 기억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미 찍혀있는 사진을 보며 과거를 더듬는 것이 아니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와 만나는 것이다. ● 이처럼 하나씩 기억의 점을 찍어간다. 점을 하나씩 이어 선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기억의 재생산 작업은 곧 내게 또 다른 의미의 방향 찾기였다. 카메라는 내게 미래를 위한 나침반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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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를 대하여 ● 하루의 기록으로 우리는 일기를 쓴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맨 처음 적은 일기는 그림이었다. 3분의 2는 그림으로 그 나머지는 글로 쓰던 초등학교 시절, 아니 그 훨씬 이전에 우리는 안방 벽에 운동장 바닥에 짤막한 선 몇 개로 그림을 그렸다. 조금 더 세련된 그리기를 손에 익혔을 즈음엔 그림일기장에 하루를 그렸다. 그림을 문자로 대신해오다가 이제 난 다시 내 그림 일기장을 펼친다. 어릴 적 그리던 그림일기가 내 얘기였다면 어른이 된 지금의 내 그림일기는 우리의 이야기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 가능하고 유턴도 할 수 있는 넓은 도로다. ●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3월, 매일 전시회 문을 드나들던 노부인이 있었다. 소박한 인상의 그분은 내내 말도 없이 한참동안 그림을 들여다보곤 돌아갔다 했다. 하루는 내게 말을 건넸다. "당신이 작가냐고?" 수줍은 듯 소녀처럼 노부인은 어렵게 입을 뗐다." 이 작품들을 보면 본인의 인생이 생각나서요" 그곳엔 내 작품 '표류'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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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다 ● 어떤 친구는 술 취하고 비틀거리는 자신의 모습 같다고 했다. 한 교수는 뉴욕 거리를 헤매는 인텔리의 자화상 같다고 했다. 한 후배는 돌진하는 사람 같다고 했다. 그 '표류'라는 작품에서 어떤 부인은 기억이 점점 잃어가는 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난 남편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 똑같은 남녀의 모습을 보는 눈도 가지각색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두 사람을 이별하는 연인이라 볼 수도 있지만 첫 만남에 설레이는 사람들로 볼 수도 있다. 같은 창문을 보고도 어떤 이는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열정을 느끼고 다른 이는 창문이 닫혀 답답하다고 한다. ● 미술 시간 인물화를 그려보면 똑같은 모델도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인물이 그림을 그린 사람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한 작품을 보고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자신의 고민, 자신이 서 있는 환경과 지나온 경험에 비추어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 그런 의미에서 같은 그림은 없다.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또 다른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내 작품들이 표류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의 마음에서 한바탕 난장을 벌였으면 좋겠다. 표류는 내 작업의 존재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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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하다 ● 누구에게나 익숙한 시선이 있다. 낯선 각도로 세상을 보면 불편하다. 10여년을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때는 강단에 서왔다. 익숙한 방향의 삶을 털고 과감히 뉴욕행을 결정했을 때 스스로 나를 의심했다. 모든 것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곳에서 3년, 난 낯선 각도에서 보는 것을 즐기게 됐다. ● 뫼비우스의 띠에 서서 오른쪽에 점을 하나 찍는다. 한바퀴 돌아와 점을 찍은 자리에 서면 어느새 점은 내 왼쪽에 위치한다. 세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똑같은 것 같지만 거기엔 방향이 있다. ● 난 지금 카메라를 지팡이 삼아 세상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 고단한 사람들을 만나면 함께 지팡이를 짚고 걸어갈 것이며 길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지팡이로 긴 풀을 헤치며 길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사못처럼 추락해가는 이들을 위해 찰리채플린이 지팡이를 들고 세상에 나타난 것처럼 한바탕 웃음과 한줄기 눈물을 뫼비우스의 띠에 그려가고 싶다. 빛과 그림자를 따라 마음껏 표류하고 싶다. ■ 권두현

Vol.20030828a | 권두현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