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과 짐

박소영 조각展   2003_0827 ▶ 2003_0907

박소영_무제_가변크기_2000/2002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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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827_수요일_05: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초록과 짐 ● 공간을 날아오를 듯한 투명의 초록껍질들과 육중한 석고 덩어리가 기이하게 조우하고 있는 박소영의 이번 전시는 조각을 향한 작가의 모순된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난 공간이란 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희망이나 안전, 또는 생명의 상징색으로 간주되는 "초록"과 무겁고 부담스런 "짐"을 조합한 예사롭지 않은 제목처럼 전시는 한 사람의 조각가가 마주하고 있는 "과업"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상반된 언어와 물질이 서로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어쩌면 작가의 전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가 짧지 않은 기간동안 사회 윤리적인 문제에 고집스럽게 매달려왔던 사실을 일깨울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의 희망과 그것의 발목을 잡는 사회적 부조리의 짐스러운 구도를 드러내는 것이 박소영의 주된 관심사였고, "초록과 짐"은 그에 대한 은유적인 소회로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최근 들어 부쩍 "모호한 형태에 대한 연습"에 진력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최소한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조각의 현상적인 측면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는 작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3차원의 공간을 점유하는 자기 지시적이고 견고한 볼륨을 부정하기 위해 조각을 "껍질"의 수준으로까지 밀어붙여 해체하는가 하면, 어느새 뒤돌아 서서 조각 속내의 그 미련한 덩어리를 다시 껴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적인 행위를 통해 작가는 조각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의지와 조각의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본능 사이에서 분열하고 있는 자아를 노출하게 되지만, 그중 어느 하나를 억압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대면시키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사물의 표면적인 대립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찾아나가는 듯 하다.

박소영_바람_혼합재료_35×35cm_2001
박소영_그의 물건_혼합재료_40×78cm_2003

조각의 껍질을 드러내려는 박소영의 시도는 지난 2000년의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소개됐다. 1997년 네 번째 개인전 이후 줄곧 작업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 온 그는 삶의 체험을 명확한 이분법적 논리로 표현해온 그간의 개념적인 작품들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현실의 모순을 도덕적인 흑백논리로 재단하는 일이나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일처럼 논리적인 사고에 근거하는 작업이 오히려 치명적인 굴레가 되어 자신을 옭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몇 달 간 작업을 못하고 누워있을 만큼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는데 이러한 실존적 경험도 그가 예술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갖는데 하나의 변수로 작용했다. 그는 이 무렵부터 "자유롭고 유연한 작업"을 갈망하면서 자명한 가치나 의미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익숙하고 상투적인 진실로부터 비켜서는 일, 논리가 포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영역을 경작하는 일에 한 발자국 다가서기 시작한다. ● 다 쓰고 남은 폴리코트 깡통의 안쪽 면에 연분홍색 꽃잎을 촘촘히 이어 붙인 「조각의 껍질」(2000)은 그런 의미에서 박소영의 작품이력에 방점을 더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그것은 이전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면서도 방향전환을 가능케 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발견된 오브제Objet trouve를 활용하고 있고, 그것의 본래 기능을 참조하고 있으며(조각의 일반적인 재료인 폴리코트 내용물과 용기) 오브제의 표면을 변화시킴으로써 위상의 변화를 촉발, 상대적인 가치체계 (화려함과 초라함, 안과 밖, 예술과 비예술, 조각과 사물, 유용성과 무용성...)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미덕은 관람자의 시선을 그러한 개념적인 인식의 틀 너머로 이끌어 가는데 있었다. 화려한 조화가 가져다주는 시각적 쾌감과 표피의 촉각, 그것의 무한증식에 대한 일종의 초현실적인 상상력과 중력을 벗어날 듯한 새로운 조각에 대한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엄청난 매력 말이다. 논리를 벗어난 감각과 상상력의 영역은 모호하고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이제껏 박소영의 작품세계가 한 번도 개간한 적이 없는 미지의 영토지만 궁극적으로는 작가와 관람자, 심지어는 작품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여유의 공간으로서 의미화되기 시작했다. ● 일상기물의 표면을 덧씌우는 방법에 있어서 금박이나 석고칠, 붕대감기를 했던 이전의 작업들과 본드로 조화를 붙인 「조각의 껍질」 이후의 작업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후자의 경우, 사용한 재료의 강렬한 현존감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포장재료이기 이전에 그 자체가 발견된 오브제이기도 한 조화의 표피는 포장한 기물을 장식적인 오브제로 약화시키는 양상을 보이면서 "껍질"로서 독자 생존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현했다. 그것은 회화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꼴라쥬 기법의 조각적 번안으로서, 재료의 생동하는 자율성을 이끌어내는 전략이기도 했다. 또한 회화를 삼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것과는 정반대 되는 방향에서, 조각을 이차원의 껍질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박소영_무제_혼합재료_50×42cm_2003
박소영_껍질_혼합재료_132×82×14cm_2003

박소영의 조각작업은 껍질 입히기를 멈추고 껍질 자체로 존재하는 순간부터 조각의 한계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조각은 부피를 저버리고 중량감에서 탈피하여 가벼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아메바처럼 유기적인 형태로 바닥과 벽을 기어오름으로써 전통조각의 정태성을 파기하기도 했다. 조각을 "길들여지지 않은 형태"로 방임하려는 작가의 희망대로 그것은 마치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꽃을 사용하고 난 뒤 무용지물로 버려진, 꽃의 껍질이라 할 수 있는 초록의 잎사귀를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게 된 것은 또 한 번의 진화에 해당한다. 그것은 껍질의 의미를 더욱 강조해 줄뿐만 아니라 색깔의 상징적인 의미마저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초록은 자연 또는 생명의 의지처럼 치열하게 다프네Daphne를 월계수로 변신시킨 것처럼 공간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 실물에 버금가는, 그래서 미약하나마 일정한 질감과 두께를 갖고 있는 인조 잎사귀들은 급기야 투명 플라스틱 필름 위의 이미지로 치환되면서 개념적으로 물질성을 완벽히 제거하게 된다. 생화의 시뮬라크르인 조화를 또 다시 시뮬라시옹한 이 필름들은 조각을 비물질의 이미지로 분해하는 과정의 최종단계에 해당하며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차원의 조각은 무정형인 채로 공간 속을 부유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때 조각은 스스로 투명해질 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재료인 빛을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이게 되는데 거기에는 그림자라는 매혹적인 존재도 함께 동반된다. ● 반복된 테이핑 작업에 의해 완성되는 이 조각은 각각의 이미지를 결속시키는 테이프의 점성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황 속에 놓여진다고 할 수 있다. 온 습도나 직사광선에 반응하게 될 이들은 대기의 변화에 몸을 맡긴 유기체의 허물과 유사한 운명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소영_무제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1_부분
박소영_사춘기_폴리코트_145×46×40cm_1983 박소영_18년_혼합재료_150×145×80cm_2000~1

조각에 대한 박소영의 모순된 태도는 잠자리 날개처럼 중력을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오르려는 껍질을 조각의 위치로 송환하는데서 비롯된다. 그는 「껍질」들을 좌대나 심지어는 유리 쇼케이스 안에 안치하는 전통적인 전시방법으로 재배치함으로써, 그 존재가 분명 "조각"임을 확인시키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 행위는 사라질지도 모를 희귀한 생물체를 채집해 두려는 어떤 욕망을 상기시키면서, 좌대나 쇼케이스에 놓여진 것들이 한 때는 진짜로 생명을 부여받은 적이 있었으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런 초현실적인 상상에 앞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의지와 팽팽히 힘을 겨루는 조각가의 본능이다. 집중적인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몰두해 온 조각가의 본능은 자신이 만든 그것이 공간 속에서 설치의 양상으로 흩어지기 직전에 자기만의 고유한 공간을 점유하는 조각의 위상을 갖게 되기를, 수공적인 노동에 대해 보상받으며 기념비와 심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더구나 이번 전시에서 박소영은 「껍질」과 함께 최근에 완성한 석고작업을 선보인다. 조각 작업의 기본재료라 할 수 있는 석고로 전통적인 조형요소인 형태와 볼륨과 질감을 탐구한 것이다. 그 어떤 오브제도 본뜨지 않아 순수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이 물건은 지루한 육체적 노동의 결과물인데 그는 원하는 형태를 얻기까지 석고를 바르고 갈아내기를 무수히 반복해야만 했다. 60호로부터 180호, 400호, 1000호에 이르는 사포로 문지르고 또 문지른 결과, 피부처럼 고운 덩어리를 얻게 되었다. ● 그런데 학창시절이후 단 한번도 활용해 본 적이 없는 직조기법을 다시 동원하면서까지 덩어리의 무게, 부피감 그리고 표면의 질감에 몰두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미지로 변신한 조각의 껍질이 충족시킬 수 없는 물질적 실체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물질과 비물질, 텅빔과 가득참, 허구과 실재를 동시에 동경할 수밖에 없는 조각가의 복잡한 심리구조를 반영하는 일이기도 하다. ● 껍질과 덩어리는 조각의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서로 상반된 위치에 놓여있지만, 분리되기 이전의 피부의 안과 밖처럼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유지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작가의 믿음을 실현한 두 얼굴을 가진 동일한 존재처럼 상호보완의 위치에 놓여 있다. 박소영은 최근 "노동이 형태를 만들고 형태가 미술을 만든다"는 말을 되새기고 있는데, 껍질과 덩어리는 작가가 스스로를 잊을 만큼 붙이고 갈아내는 단순노동의 대가로 얻어낸 조형의 묘미일 것이다.

박소영_화분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0/2001_부분
박소영_덩어리_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1/2003_부분

또한 껍질과 덩어리는 무의식적인 드로잉을 모태로 탄생한 쌍생아로서 스스로 진화하는 자율적인 형체들이기도 하다. 작가가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이 무정형의 존재들은 관객과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서 의미망을 구축해간다. 게다가 껍질이 견고하지 않은 것처럼 피부같이 고운 덩어리 또한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위풍당당한 그 위용과 걸맞지 않게 석고 덩어리는 작은 충격이나 물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변화와 소멸의 과정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한편, 석고 덩어리에 달린 손잡이와 그것을 이리저리 옮겨 달기 위해 시험삼아 뚫어 놓은 여분의 구멍들은 이 작업의 여운을 길게 늘이는 의미심장한 장치 구실을 한다. 마치 사물들도 숨을 쉬어야 하는 것처럼 손잡이를 위해 뚫은 구멍이 닫힌 덩어리에 숨구멍 역할을 한다. 덩어리는 그 구멍으로 말미암아 숨통을 열고 그 사이로 생기를 호흡하는 것이다. 또한 여분의 구멍들과 손잡이와의 임의적인 관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손잡이의 위치를 변경시켜서 덩어리의 형상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조형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 그러나 석고 덩어리에 꽂힌 손잡이가 시각적 충만감이나 조형행위의 경이로움에 심취해 있는 작가나 관객 모두를 은근히 긴장시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이 어느 순간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도구처럼 보이는 까닭은? 손잡이 달린 덩어리에는 "짐"의 무게가 실려 있다. ■ 안소연

Vol.20030829b | 박소영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