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 바리데기

이선원 개인展   2003_0917 ▶︎ 2003_0927

이선원_기억속의 나무_닥펄프, 수세미외_103×78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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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917_수요일_05:00pm_금산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_10:00am~06:00pm

2003_0917 ▶︎ 2003_0927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2003_0917 ▶︎ 2003_0923

백송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9번지 Tel. 02_730_5824

이선원의 바리공주 ● 이선원의 최근작의 주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신화인 『바리공주』에서 따온 「바리공주」 혹은 「바리데기」다. 구태여 구분한다면 부조라 할 수 있는 세 개의 작품―두 개의 커다란 원형작품과 하나의 반달모양의 작품―은 각각 바리데기신화의 핵심인 '축원'과 '고풀이', 그리고 '생명수'로서 이들은 모여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부왕의 기대와는 달리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서 버려진 주인공 바리데기가 부왕의 단명에 임하여 그를 재생시키고자 저승을 향해 길을 나선다. 시련과 모험을 거친 끝에 생명수를 얻어 그곳에서 만난 남편과 더불어 귀환한다. 그러나 공주를 시기한 언니들의 간계로 생명수를 약취당하고 공을 빼앗길 뻔 했던 것을 극복하고 죽은 부왕을 소생시킴으로서 바리데기 및 그 일가족이 무신으로 섬겨진다. (서대석, '바리공주연구', 『한국구비문학선집』, 일조각, 1977, p132) ● 『바리공주/데기』전승은 물리적인 힘에 기댄 격렬한 전투 등 영웅담에 의례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으나 정신적 시련이나 여성노동에 부합하는 난제들로 대체되어 있어 본격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영웅서사문학의 윤곽 내에서 여성적 변이를 내용으로 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무속서사문학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생사의 신비와 죽음의 시련을 경험하고 또 극복한 이 영웅적인 바리공주는 죽어서도 저승에 못간 채 이승을 떠돌고 있는 불행한 망자들, 여태껏 의지했던 육신으로마저 돌아갈 수 없는 죽은 혼령들을 저승에 인도함으로서 구원을 줄 뿐 아니라 죽은 혼령들의 방황 때문에 재변을 당하고 있는 인간들에게도 구원을 주는 존재로서 신격화된 얘기가 바로 바리데기 무가서사다. 또한 죽음의 어둠 속에 몸을 던져 스스로 위기와 난관을 이겨냄으로서 자신의 삶의 위기의 극복과 타인들의 영적인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삶의 빛 속에 환생하게 되는 인물이 바리데기인 것이다.

이선원_바리공주-축원_수세미, 한지_지름 170cm_2003
이선원_바리공주-고풀이_수세미, 한지, 닥줄기_지름 170cm_2003

이제까지 줄곧 한국인의 삶에 친숙한 천연소재인 종이작업에 몰두해 온 이 선원의 최근작도 역시 종이다. 그러나 이전의 그의 관심이 한지의 소재인 닥나무나 풀과 같은 자연섬유가 종이로 환원되는 과정에 직접 개입, 다양한 표현기법을 가하거나 인용함으로서 종이이전의 질료가 배태하고 있는 특질들의 예술적 가능성을 진단해본 것이라면 최근의 작업은 그가 즐겨 쓰기 시작한 수세미라는 형태소와 그 형태소가 종이로 변화하며 몰입되는 여성의 노동과 흡사한 신체적인 노동과 인내, 각고를 극복한 후의 정신적인 해탈이 은유하고 있는 우리의 민간문화와의 유기적인 연관성, 그 유사 analogue 내지 원형 archetype 을 추적해보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성작가로서 그가 이전에 애용했던 닥나무 대신 여성의 노동과 직결되는 수세미를 질료로 삼고 있다는 점은 전승되어오는 민간설화 중에서도 여성이 신격화되고 있는 무속신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징표다. 근작의 중심은 상기한바와 같이 두 개의 커다란 원형과 반달모양의 부조작업이다. 2,30cm 정도 되는 수세미들을 하나씩 벗겨 필요에 따라 천연염료를 들이거나 한지로 싼다. 그런 다음 어떤 것은 일일이 줄기 올을 풀어 실선으로 쓰기도 하고 다른 것들은 묶어 원하는 단위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가끔 옹이 박힌 부분은 그대로 다른 요소들과 같이 꿰매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고 있는데 이 모든 요소들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결과된 프레임은 원형을 이루고 있고 간헐적으로 알록달록한 오색 종이들을 요소들 틈에 박아 넣어 마치 서낭당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축원') 그런가 하면 그 옆의 쌍을 이루는 작품은 그와는 대조를 이루듯 이전의 섬세함보다는 힘과 입체감이 두드러져 마치 걸려있는 벽면에서 튀어나올 듯한데 이 섹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망자의 고를 푸는 장 場이기도 하다. ('고/본풀이') 반달모양으로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또 다른 부조작품은 제목이 암시하는바와 같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생명수'로 바리공주가 부왕을 죽음으로부터 소생케 한 생명수이자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쪽빛색깔은 창공과 동시에 생명수를 암시하는 색깔임은 자명하다. 2층의 세 벽의 전 표면은 온통 수세미의 옹 혹은 줄기 선들이 박혀있는 정방형의 종이작업들로 메우고 있는 일종의 싸이트 스페시픽한 작업으로 이 표면위로 빔 프로젝터가 글자들을 빠르게 찍어내고 있다. 글자들은 무신들을 모시는 당집의 명칭으로 곧 무신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영상텍스트는 『바리공주』의 서사무가의 내용에 이르면 절정에 달한다.

이선원_기억속의 나무_닥펄프, 수세미외_80×63cm_2002
이선원_바리공주-생명수_수세미, 한지_200×100cm_2003

이렇듯 이 선원은 붓이나 유성물감대신 한지의 재료를 해체해 그 섬유소로 화면을 양식화하는 일종의 모더니즘형식주의방식을 버리고 이번 근작에서는 방향을 선회해 천연재료가 종이로 옮겨가는 과정을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신화를 내용을 바탕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개념주의/페미니즘적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일견 무가서사의 내용을 메타포의 은유가 아니라 너무 직설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 모든 것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무속신앙의 애니미즘(페티시즘 Fetish)의 기본사상을 유추해서 생각하면 그다지 무리는 아닐 게다. 한국무속신앙의 기저요소들은 근대 서양의 합리주의와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미신으로 치부, 극히 한정된 스케일과 범위로 위축되었으나 그 무속의 뿌리는 외래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도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기이한 양태로 결합되고 있음을 우리는 수시로 경험한다. 더욱이 무속의 주체인 초자연계, 초현실의 세계와 현실간의 영매의 의미와 모든 자연에 정령이 있다는 animism 적 사고는 21세기 디지털시대, 사이버공간을 접하고 있는 우리의 내세관과 현상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아직도 부지불식간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상과 현실, 실제와 초현실, 가지의 세계와 불가지의 세계가 혼재해 구분하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국가간의 경계가 점점 좁아지면서 초국가적 유목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현 지구촌의 추세는 영의 세계와 현실을 영매하며 정령주의, 신비주의를 골자로 하는 동아시아의 무속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선원의 근작은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혁명으로 점점 첨예화 되어가고 있는 문화정체성은 물론 여성성에 대한 대안의 제시면서 동시에 작가자신의 자화상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송미숙

Vol.20030915b | 이선원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