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타입 인물상을 위한 변주곡

전신덕 조각展   2003_0917 ▶︎ 2003_1005 / 일,공휴일 휴관

전신덕_해바라기_철, 자석, 아크릴채색_200×200×0.9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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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917_수요일_05: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전신덕의 철조 레이저 커팅 작업 ● 전신덕의 이번 개인전은 송은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동안 작가가 제작해온 작품과 예술세계에 대한 문화단체의 관심과 격려의 뜻이 이번 전시회에 담겨있다. 문화재단에서는 전신덕에게 「미술상」도 함께 수여함으로서 차기 개인전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하니 작가로서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를 확보한 셈이 된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작가가 실행하는 최근의 작업 성향이 이전의 그것과 다른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을 떠나 근작들의 면면을 보면 작품의 재료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그 변화의 폭이 크게 감지된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추적해 보는 일은 이번 개인전을 전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유기적 존재인 작가에 있어 작품세계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 편차가 클수록 관객 대중의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전신덕은 1997년이래 세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는데 두 번째까지의 작업들에 나타나는 특성의 하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그 실존적 상황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철판구조물 위에 서있는 인물상은 납판으로 덮여있고 머리 또는 상반신이 제거된 형태로 제작되어 존재의 물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레바퀴 위에 서 있거나 도열된 군상으로 제시됨으로서 작가가 역사적 시공간에 대한 관심 혹은 집단과 개체 사이를 맴도는 자기상실의 상황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들로 해석되어 왔다. 필자가 갖고 있는 전신덕의 초기작업에 대한 기억은 로댕의 발자크상 작업에서 발견되는 재료의 물성에 점차 서술적 상징성이 가미된 그러한 세계였다.

전신덕_껍질_철, 자석, 아크릴채색_255×722×122cm_2003
전신덕_위대한 탄생_철, 자석, 아크릴채색_255×755×600cm_2003

2002년의 세 번째 개인전 이후에 작가는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주었다. 네 번째가 되는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업들을 개괄해 보면 12mm 두께의 철판을 레이저로 절단해 동어 반복적인 인물상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사각이나 원통의 철재 구조물 위에 배치시켜 놓은 것들이다. 600개가 넘는 철재 인물상들은 대부분 다양한 무늬로 채색되어 있고, 부착의 방법도 용접이 아닌 강력한 자석을 매개로 수직 혹은 수평의 방향을 그으며 세워져 있다. 때로는 인물상들을 바닥에 꽃 모양의 원형 또는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로 배열시키기도 한다. 주목할 부분의 하나는 작가는 모노타입의 인물상들이 찍혀 나온 철판의 원판을 대비시킴으로서 인물상의 실체와 허상 이미지의 이중적 구조를 연출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철제 바퀴의 궤적을 따라 그 힘에 의해 찍혀 나온 듯한 인물상을 연출해 내는 등 그 방식은 다양하다. ● 이러한 변화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작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무거운 것에서 벗어나 가볍고 깔끔한 것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모더니즘 이후의 시대를 사는 오늘의 예술가들이 지닌 심리적 단편을 솔직히 반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의 근대사는 지나치게 무거운 역사의 수레바퀴에 눌려 있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어둡고 회의적인 사고에 빠져 있다는 시각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미학과 예술의 전복자이자 20세기 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 받았던 마르셀 뒤샹이 고백처럼 '일보다 놀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네 심사라면 가벼움의 미학은 현대화단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요 담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보여주는 가벼움의 정체는 무엇이며 전환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전신덕_욕망의 기둥_철, 자석, 아크릴채색_570×570×244cm_2003

전신덕이 근작에서 취하는 작품형식의 근간은 전기했듯이 '동어 반복적으로 생산 배치된 인물상이 주는 모노타입의 세계이자 음각과 양각이 대조를 보이는 이중적 세계'라 볼 수 있다. 그것은 레이저 커팅에 의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손 작업이 절제된 메커니즘의 세계이며, 색채로 페인팅 되어 있으나 장식적 무늬로 그려진 가벼운 이미지의 세계이다. 또한 작가는 이렇듯 제작된 작은 인물상들을 자석에너지를 이용해 이리저리 설치함으로서 유희적 속성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획일적 속성과 이중적인 가치 그리고 장식적이고 유희적 세계를 통해 우리 시대에 대한 비평적 발언을 시도하고있는 것일까. 이러한 작업에서 과거의 작업에서 보여지던 대상의 무겁고 거친 물성과 실존적 인간존재에 대한 탐구의 어법들은 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대치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 그러나 작가의 작업을 한 꺼풀 더 벗기고 보면 조형어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업들이 이전의 작업과 연계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동과 시각 그리고 역사를 상징하는 대상으로서 수레바퀴는 이번 개인전에서도 지속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생산되고 장식적으로 채색되며 집단적으로 전시되는 동일 유형의 인간상들은 수레라는 도구와 연계됨으로서 사회와 역사성을 띠게 된다. 껍데기와 알맹이로 구성된 다양한 구조물을 걸머진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신덕의 작업에 나타나는 여전히 핵심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전의 작업과 근작 사이에 나타나는 기법과 조형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동일한 세계관 속에서 작업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신덕_요즈음 사람들_철, 자석, 아크릴채색_350×557×244cm_2003

결국 작가가 최근의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조형적 가벼움이란 보다 직접적으로 세계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소박한 의지에서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가벼움의 의미가 작품을 둘러싼 유모어나 풍자적 기운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면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과 기법상의 변화 상황에 직면하여 작가가 풀어야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상징적이며 철학적 사변의 영역을 최근 선보이는 기계적이고 표피적인 형상구조의 작업과 연계시켜 간극의 공허를 메우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조형예술 영역에서 자꾸만 소홀해져 가는 치열한 삶의 성찰과 장인적 손 작업의 가치를 자신의 작품 속에 다시 회복시키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김영호

Vol.20030918a | 전신덕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