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명복을 빕니다.

조각가 구본주 타계!!!   영결식 / 2003_1001_수요일_09:00am

구본주_혁명은 단호한 것이다_철, 나무_60×35×45cm_1990

2003년 9월 29일 월요일 새벽 5시경   갑작스런 사고로 타계하였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故 구본주 선생 영결식은   (사)민족미술인협회장으로 거행됩니다.

영결식 일시_2003_1001_수요일_09:00am 영결식 장소_의정부 성모병원 장례식장 (Tel. 031_847_3957) 장지_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무봉리 선영

故구본주 선생 민족미술인협회 협회장 장례위원장_김인순_주재환 장례위원 박진화_안성금_최석태_정세학_박영균_성효숙_권성택_김영동 배인석_김기현_진창윤_박대석_김태완_강요배_곽영화_최종선

구본주 선생 영결식 추모사 영원한 청년작가 구본주 선생을 기리며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무봉리 (560-2번지) 작업실. 자르고, 두드리고, 구부리고, 붙이고, 갈고, 닦고, 깎아내며 예술혼을 불태우던 곳, 당신의 작업실입니다. 당신이 20-30대 꽃다운 청춘을 바쳐 땀흘리던 뜨거운 창작의 산실입니다. 작업실 입구에 무거운 쇠를 들어올릴 수 있는 7·8미터 짜리 크레인을 세워놓고는 세상을 다 얻은냥 기뻐하면서, 이젠 철공소 못지 않은 시설을 갖췄으니 떵떵거리며 작업할 수 있다며, 자랑을 늘어놓던 그 작업실입니다. ● 당신의 짧고 굵은 삶이 묻어있는 곳. 저 작업실을 먼발치에 두고 오늘 우리는 당신을 자연의 품으로 되돌리고자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곳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애통한 마음을 모아 불의의 사고로 먼저간 영원한 청년작가 구본주님의 넋을 기리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지금 당장이라도 잔주름진 눈가에 한가득 미소들 띤 채 씩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 구본주 선생. 스무살 파릇파릇한 학생시절부터 서른 중반의 늠름한 청년작가로서 당신이 우리에게 새겨둔 깊은 자리를 어찌하라고 이렇듯 갑자기 떠나십니까.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야속함을 두고, 당신은 훌쩍 먼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앞길이 창창한 아까운 사람, 구본주 선생이 떠난 자리가 두고 두고 가슴에 남을 것 같아 긴 한숨만 앞섭니다. ● 평온하게 영원한 잠자리에 들어있는 고인 앞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넋두리를 더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제 떠나는 당신을 배웅하러 여기 모인 사람들과 함께 구본주 선생이 못다 이루고 남겨둔 뜻을 새겨보려고 합니다.

1. 구본주 선생의 삶과 예술을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구선생이 남겨둔 것은 작품 뿐만이 아닙니다. 근 몇 년 동안 구선생은 리얼리즘 미술의 21세기적 변모를 꿈꾸면서 예술가로서의 깊은 고뇌를 안고 있었습니다. 30대 중반을 넘긴 청년작가로서 당대성을 구현하는 리얼리즘 미술에 대해 깊은 고뇌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 구선생. 뒤를 돌아보면 앞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구선생이 지금까지 걸어온 10여년의 창작은 우리 현대미술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학생시절 구선생은 억센팔뚝을 내두르는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로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10년전의 구선생은 금호미술관 천정에 빠뜻하게 닿을 정도의 높이로 죽창을 내지른 「갑오농민전쟁」을 남겼습니다. 지난해에는 철판을 두드려서 5미터짜리 구두를 만들고 겨대한 기둥을 새운 「아버지의 기둥」으로 예술의 전당 전시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10여년전 구선생은 수배를 피해 수원의 선배 작업실에 숨어 지내며 흙으로 빚은 작은 조각들을 만들었고, 오늘날의 구선생은 포천 작업실에서 거대한 규모의 작업을 위해 고된 땀방울을 쏟아왔습니다. 청년작가 구본주의 짧은 세월을 봐도 이렇게 역동과 굴곡이 확연합니다.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위해 우리는 구선생이 짧고 굵게 남기고 간 역사를 꼼꼼하게 되짚어 보겠습니다.

2. 다음은 당신이 이루려했던 진보적인 미술운동에 관한 말씀입니다. 구선생은 학생시절부터 평등과 평화 자주와 민주를 열망해왔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현실주의 미술을 일궈왔을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민족미술인협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선배 동료 후배들과 민족민중미술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해왔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보다 해야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아있는 당신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그 충격과 허망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만, 당신이 열망했던 진보미술의 꿈은 우리들 가슴 깊이 남아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구선생께 부탁말씀 한 마디 드리겠습니다. 이승에 남긴 일 염려하지 말고, 저승에서 편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아버님과 형님 누님들, 그리고 아내 전미영님,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두 자녀 세모와 내모. 남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살도록 힘과 지혜를 모를 것입니다. 구선생이 서른을 넘기면서 따뜻한 감성으로 만들어둔 가족 연작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따뜻함을 잃지 않도록 당신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 구본주 선생. 오늘 우리는 당신을 여기 묻고 갑니다만,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한 청년작가 구본주로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이승에서의 무거운 짐 다 벗어두고 영면의 그곳에서 부디 편히 쉬소서... ■ 2003년 10월 1일_ 구본주 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민족미술인협회 협회장 장례위원 일동

장례식장은 의정부 성모병원입니다.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65-1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Tel. 031_847_3957

Vol.20030929c | 삼가 명복을 빕니다._조각가 구본주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