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5seconds katharsis

남일 회화展   2003_1001 ▶︎ 2003_1014

남일_festival_혼합재료_244×61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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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001_수요일_06:00pm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02_735_4805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주관으로서의 인간 존재와 객관으로서의 세계의 불가분한 관계, 그 지속성이다. 객관으로서의 세계, 그 현실세계의 모든 경험실재는 '삶'의 방식을 조건화한다. 즉, 나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심리적 조건에 제약되고 구속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존재 양식으로 인정하며, 그 전제하에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남한사회에서 2000년대를 30대의 남자로서.........산다.'는 비자의적 조건의 제약성과 구속성은 가끔 불안과 불만의 편두통을 일으킨다. 특히 '너무나 민주적인 정보화'에 의해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넘어 시대의 요구로까지 읽혀지는 세련된 부르주아적 삶의 이미지들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남일_festival_혼합재료_244×610cm_2003_부분

'삶은 축제이다' ● 만약 우주계획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구가 폭발하지 않은 이상, 그 시대의 제약성과 구속성이 강화되어 삶의 자의적 선택의 자유의 몫이 더욱 감소하더라도 사람들은 살 것이다. 이 살고자하는 본능, 생의 의지는 시대와 역사의 패러다임을 초월하는 본질의 무게를 지닌다. 이는 모든 욕구 욕망의 원천으로써, 시대가 요구하는 현실적 삶의 방식들의 모순 속에서도 결코 망각하거나 부정하지 못 할 존재론적 지반이며, 주관과 객관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중력이다. ● 서로 몸을 부대끼고 끊임없이 꿈틀대며-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현재진행형의 우리 삶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런 익명적인 대중의 삶의 일상성은 다양하고 즉흥적이며 일시적인,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제의적 성격까지 있는 '축제'이다. 내가 참가하고픈 '페스티발'이다. ● 살아라. 잊혀진 삶의 본능을 기억해내서 살아내라. 영원히 행복하리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영원히 불행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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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1,000시간의 노동' ● 이번 전시의 부제인 '5 seconds katharsis'는 전시 관람자에게서 얻어낼 나의 '전략'이다. 우선 관람자(어느 정도 성의를 갖고 바라보려는 소수의 타자)의 모든 사유의 감각을 중지시킨 채 표피적이고 쾌락적이며 탐미적인 감성에 다다른다면 관객 또한 이번 'Festival'에 동참하여 흥겨우리라 믿는다. ● 또한 현대, 이미지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질 좋은 복제품과 진품과 다름없는 모조품들을 생산함으로써 유일 작품의 시대와 차별된다. 그러므로 더욱 지적 환경적으로 차별화된 개별상황으로써의 진품의 역설적 필요성을 느끼며, 1,000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투입된 작업을 '전술'로써 실험한다. 아날로그의 극대화? ●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육체의 이미지-이 살덩이들은 시대의 요구체계에 대하여 주관의 자아가 반응하여 적응한 수동적 욕구기관이며 변이의 가능성을 우선하는 이미지이다-를 평면으로 시각화하여 전시 벽면을 가득 채움으로써 현재로서의 시간, 현실로서의 공간과 단절된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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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_festival_혼합재료_244×610cm_2003

'인생은 짧고 예술은 더 짧다.' ● 우리는 대중매체의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의 세례 속에서, cf나 drama 등의 매력적인 일상의 담론을 주의 깊게 지각하며 외재적 삶과 화해하는 방식을 익혀나간다. 또한 도시의 감성논리에 익숙해짐으로써 미적 감성과 정서를 오히려 무감각하게 단련시킨다. -이것이 미술이라는 시각적 예술이 '언어'라는 해체요소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부각시킨 큰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 만약 작품이 작가의 자의식과 사회의식의 결정체라면 그 속엔 현대의 문화적 아포리즘이 이미 형성되었을 것이며, 나 또한 이에 대하여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못 할 것이다. 나에게 예술이라는 행위와 정신은 결코 삶의 범위를 초월하지 못 하며, 작품이라는 결과물 또한 사회적 소통과 자의적 만족감, 그리고 양심 정도의 담보물이라는 것이 2003년 9월까지의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 남일

Vol.20030930b | 남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