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Ancient City

김종욱 사진展   2003_1203 ▶︎ 2003_1209

김종욱_into the Ancient City_컬러인화_30×40"_2003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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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203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수잔 손탁 Susan Sontag은 "사진은 페인팅이나 드로잉만큼이나 세계에 대한 해석이다"(Susan Sontag, On Photography, Dell Publishing Co., Inc, 1973 p. 7.)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진을 세계에 대한 해석이라 보는 관점은 사진이 '무엇이 어떻다'는 식의 교시적(敎示的)인 경향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써 사진에 대한 해석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캔버스나 종이에 재현된 상징을 통해 화가들의 보는 방식이 있듯이, 사진가 역시 그가 선택한 주제 선택에 의해 사진가의 보는 방식이 드러나는 것이다'라는 존 버거 John Berger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사진 이미지란 사진가가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가, 즉 대상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기록이다. 왜냐하면 사진이란 항상 과거의 것으로 필름 위에 기록된 이미지인 동시에 현재로써 우리에게 보여지는 관련, 진실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기의 파인더가 캔버스의 역할로 대체되며, 필름 위에 기록/재현된 아주 자그마한 이미지는 사진가의 손에 의해 '재해석 reinterpretation'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기록된 재현된 대상은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 즉 응시자의 경험과 주관적 경향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눈을 통해서 그 이미지가 '확대' 그리고 '해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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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의 사진 작업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가 촬영한 경주의 이미지가 다른 어떤 사진가들의 작업과 다름을 발견 할 수 있다. 특별히, 경주를 바라보는 그의 사진술-테크닉이 매우 독특함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술의 가장 대표적인 성격으로 상징되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의 '결정적 순간 decisive moment', 즉 한번의 절대적인 셔터 챤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중 노출을 통해 또 다른 의미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재현 방식, 즉 다른 의미의 결정적 순간을 드러내는 것은 아마도 불자(佛子)인 김종욱 자신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불자(佛子)인 김종욱은 1980년대 초반부터 경주지역을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지역의 일상적인 삶 그리고 신라 천년의 화려한 문화유산에 관심을 기울이며 경주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into the Ancient City'라는 테마를 가지고 경주지역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그 이전에 김종욱이 추구했던 사진 이미지는 매우 기록적이며 매우 사실적인, 즉 문화유적을 보고하는 보고서적인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그러한 보고서적이고 기록적인 사진 작업에 만족치 못한 결과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 이유는 일체의 문화유적과 어우러진 대중들의 삶을 간과(看過)한 채 오로지 적당한 광선아래서 피사체의 입체감이나 혹은 알맞은 구도로 짜여진 대상들의 디테일에 주목했던 아주 협소한 시각적 재현이 빚어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진적 행위를 탈피하는 데에 결정적인 단서 혹은 하나의 사건은 김종욱이 사진에 동양적인 '영겁(永劫)'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유로부터 출발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김종욱이 선택한 것은 그가 이전에 찍었던 경주 이미지 작업, 즉 교과서적인 문법을 탈피하고 오늘의 살아있는 경주를 표현하고자, 유적만을 촬영하는 대신에 여가를 즐기는 대중의 '현재적 모습'이 문화유적보다 더 부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문법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into the Ancient City'라는 사진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into the Ancient City'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종욱의 사진작업은 단순히 경주의 외양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라 천년이 간직해온 찬란한 문화 유적의 숨결로 파고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윤회사상(輪廻思想) 같은 것이다. 그가 선택한 다중 노출의 의미는 사진 이미지 안에서 문화유적지 그리고 그것과 호흡을 함께 하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시각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다중노출에 의해 문화유적들은 고정된 채로 프레임 내에서 공간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움직임이 포착된 다양한 사람들의 '현재적 모습'이 포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때 움직임이 표현된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지천(地天)을 떠도는 인간 영혼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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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산재된 많은 문화유적, 석불, 불상, 왕릉, 절터 등등 그리고 그것들을 즐기려는 관광객, 불자(佛子)들을 볼 수 있는 김종욱의 사진은 단순히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사진의 특질을 넘어 현재의 여가문화, 다시 말해 일반 대중들의 삶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러한 여가문화, 즉 경주라는 지역에 한정된 공간 내에 갇혀 있는 대중, 그들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오늘의 경주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 문화유적들을 즐기는 사람들, 다양한 관광객, 소풍 온 어린 아이들,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연출한 김종욱의 사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분히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가들이 추구한 후기-결정적 순간 post-decisive moment의 사고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필립-로카 디코르시아 Philip-Lorca diCorcia의 거리 사진, 즉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듯, 미리 결정된 장소에서 조명을 설치하고 익명의 배우들이 사진 프레임 안에 절대적인 장소에 위치했을 때 필립은 셔터 찬스를 이용하여, 어떤 의식적인 지식 혹은 완벽한 현실의 재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와 같은 방식으로 김종욱의 사진 이미지를 '확대' 그리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그의 사진 작업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중 노출 기법을 구사하는 김종욱의 사진적 시각은 단 한번의 노출로 결정되는 사진술의 권위를 버리고 일정 장소에 트라이포드를 설치하고 그 위에 대형카메라를 올려놓은 후 첫 번째 노출 후 다음번의 이미지를 위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기다린다는 의미는 결국, 철저하게 시간을 통제하여 문화 유적과 어우러진 인간들의 삶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이 때 김종욱의 대형 카메라는 문화 유적 혹은 공간의 세밀한 디테일을 묘사하고 있으며, 다중 노출에 의해 사진 프레임 내에서 동일한 인물들이 반복해서 그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에 그 장소를 즐기는 대중들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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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사진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언급한 '충격 To Surprise'의 내용을 바탕으로 김종욱의 사진 이미지를 해석해보자. 바르트는 "촬영자의 본질적인 행위에 대해 어떤 사물 혹은 어떤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것이라 규정하고 이 동작은 피사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질 때 완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였다. 사진의 '충격'에 대한 그의 견해는 오늘날의 사진 이미지를 해석하기에 충분한 이론적 담론이 되고 있다. 계속해서 두 번째의 놀라움에 대해 바르트는, 즉 "보통사람의 눈으로 포착하여 재현 할 수 없는 동작의 순간을 재현시키는 것이다."(Roland Barthes, Camera Lucida, Hill and Wang Co., Inc, 1981 p. 32.)라고 말한다. 이런 이론적 근거를 배경으로 소풍사진을 본 다면, 우리는 결코 눈으로는 감지 할 수 없는 동작의 순간이 포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늬가 있는 각양각색의 돗자리에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경주 남산의 옥룡암자 절터에 앉아 점심을 먹는 무리들을 볼 수 있다. 이 무리들에서 어린 학생들이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보아 어떤 그룹이나 단체의 회원임을 쉽게 짐작함과 동시에, 그리고 다중 노출에 의해 점심을 즐기려는 바로 그 순간의 동작들, 왼쪽 편의 한 무리 가운데 나무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집으려는 순간, 그리고 가운데에 위치한 한 여학생이 김밥을 입에 넣으려는 동작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화면의 뒤쪽에 보이는, 즉 삼불상 앞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순간이 포착되었다. 게다가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르는 울타리가 절터에 앉아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 뒤쪽에 서 있는 한 남자를 서로 분리시키고 있다. 이 같은 시각적 화면의 분석은 바르트가 지적한, 사진을 정치적인 증거물 혹은 역사적인 증거물로 음미하는 바로 스투디움 studium에 해당하는 기호들이다. 그럼 푼트쿰 punctum, 즉 사진의 문화적인 코드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메시지로서 소풍 사진이 지닌 푼트쿰은 무엇인가? 이 사진은 곧바로 본인의 초등학교 시절을 환기시킨다. 소풍 전날의 들뜬 기분을 간직한 채 나는 서오능으로 소풍을 가곤 하였다. 바로 이 사진이 나를 그 기억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한다. 삼삼오오 무리들 그리고 그 무리들을 에워싼 다양한 색깔의 배낭들, 오른쪽 한 구석에 인솔자로 보이는 듯한 선생님 혹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나를 초등학교 시절로 인도한다. 게다가 이 소풍사진은 바로 오늘의 소풍이 주는 이미지가 과거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진은 나에게 결코 낭만적이며 그리고 유쾌한 사실만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특히 왼쪽의 한 여학생, 폭이 좁은 돗자리에 홀로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 학생은 왜 혼자 앉아 있을까, 친구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도시락을 준비 못한 것인가? 더욱이 다중 노출에 의해 다른 여학생들의 움직임이 묘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여학생만이 정지 된 채로 포착되었다. 마치 소풍이라는 행사에 적응치 못한 외톨이처럼. 이 소풍사진이 바로 오늘의 여가 문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물질문명사회에서 여가 문화를 도외시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여가 문화에 따르는 사회문제점 또한 적지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점점 더 증대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놀이에 대한 욕구에 부합하는 경제적인 부담감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 소풍 이미지는, 언뜻 보기에 자연과 잘 어우러진 평화스러운 소풍의 장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외톨이 소녀가 나를 찌르는 푼트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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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진, 한국전통체험사진은 현재 경주가 관광도시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라 볼 수 있다. 천마총 입구에서 부부로 추정되는 한 쌍의 나이 지긋한 사람(일본인)이 한국 고유의 전통 혼례 의복을 갖추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 주위를 관광객이 에워싸고 있다. 이 사진은 관광지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것은 공간과 그 공간에 예속된 사람들의 일회적인 여가, 즉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든지 여행을 하면 방문한 곳의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기념사진이 단순히 기념을 의미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집하고 획득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한 익명의 사진가가 전통 혼례 의복을 착용한 남녀를 촬영하고 있다. 김종욱은 다시 이 장면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는데, 김종욱의 시선은 단순히 기념비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경주를 주관적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보고 있다. 오늘의 경주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관광지로서 경주의 현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경주라는 지역에 예속된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과 개인적인 기쁨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김종욱의 사진 찍는 행위는 대중의 관광 그리고 대중의 소비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델이 된 남녀는 사진 값을 지불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델을 보면서 자신들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종욱의 사진은 기념비적인 상징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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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좌상, 상선암 대불, 사면석불 그리고 보리사 사진들에서 우리는 경주지역이 지닌 불교문화를 엿 볼 수 있다. 석불좌상 앞에 앉아있는 대머리의 한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오른편으로 절을 하는 한 남자, 하산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된 이미지. 상선암 대불 앞에서 절을 하는 남자. 사면석불 앞에서 절을 하는 여인 그리고 사면석불 주의를 맴돌며 절을 하는 여인의 중복된 이미지. 보리사 앞에서 절을 하는 여인 그리고 절을 마친 후 화면 밖으로 나가려는 여인, 즉 다시 속세의 길로 들어설 수 밖 에 없는 인간의 운명처럼. 이 사진들이 보여주는 주된 공통점은 경주 지역에 산재한 석불들 앞에서 나약한 인간들의 세속적인 삶을 구원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들이 드러난 이미지라는 점이다. 화면에 등장한 사람들이 모두 불자(佛子)로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종욱 자신이 불자(佛子)이기에 아마도 김종욱은 자신의 불심(佛心)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혹은 관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다중 노출로 인하여 절을 하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모습들이 곳곳에 포착되어 구원받고자 하는 속세의 인간들의 영혼이 시각적으로 묘사되었다. 이와는 상반되게, 즉 인간들의 구원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아주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는 석불들의 여유와 자비로운 자태가 매우 흥미롭다. 결국 이 사진 이미지들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인간들이 현실의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보다 더 나은 삶을 갈구하고 염원하는 인간들의 자화상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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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여지는 대상이 동시에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시각적으로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떤 대상이 시각적으로 재현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미지'라 부른다. 그 이미지는 죽음으로 대체되고, 죽음 그것은 허구이다. 해서, 우리는 허구를 인정하면서 진실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논한다. 그러므로 이미지는 허구이다. 김종욱의 사진 'into the Ancient City,' 그 이미지는 경주의 '현재적 모습'을 보여주는 허구이자 죽음의 이미지이다. 이 죽음의 이미지가 대중의 눈을 통해 살아있는 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김종욱이 보았던 경주의 이미지는 다름 아닌, 비록 화면 속에 끊임없이 보여지는 문화유적이 우리의 시선을 끌지만, 우리들 즉 대중들의 삶의 단편을 포착한 진실이다. 그 삶의 단편 속에 문화유적이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지, 그것이 프레임을 구성하는 전체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프레임 안을 맴도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경주의 이미지로서 그 'into the Ancient City'가 존재하는 것이다. 경주라는 지역에 갇힌, 특히 문화유적을 통한 사람들의 학습, 놀이, 그리고 여가문화가 김종욱이 보여주는 기호들이다. 그런 기호들이 죽고 있는 문화유적을 숨쉬게 한다. 이 땅을 지탱하고 문화유적들을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이 김종욱의 필름에 기록됨으로써 우리의 대중 관광과 대중의 소비문화가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이 'into the Ancient City'이다. ■ 정영혁

Vol.20031201b | 김종욱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