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내 조각展   2003_1210 ▶︎ 2003_1216

김시내_녹아드는 휴식_스테인리스, 알루미늄_230×90×100cm_2003

초대일시_2003_1210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철선에 머금어진 유연한 유기성 ● 김시내가 이번 전시를 위해 선택한 재료는 바로 철선이다. 특히 그는 알루미늄 철선이나 스테인레스 철선의 즉물성과 물질성에 일차적으로 주목하면서도, 본질적으로 그것의 유연한 특성에 집중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러한 유연함은 철선의 휘어지기 쉬운 재료적 효과를 활용하면서, 그것에 유기적인 형태를 머금게 함으로써 잔잔한 서정성을 전달해 주고 있다. 따라서 김시내는 재료의 실재성보다 그 이면에 내재된 관념을 암시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관념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이유는 형상들이 직접적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은근하고 은은한 원형의 형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철선, 철망, 알루미늄 판 등은 오히려 둔탁하지 않기 때문에 차갑고 냉정한 질감과 근접하기 힘든 느낌을 전달해주기 쉽지만, 김시내의 작업에서는 예민한 보드라움으로 그것이 역전된다. 그의 작업의 예민함은 부드러움 때문에 침몰되고, 부드러움은 예민함 때문에 강화되는 듯한 묘한 반전의 쾌감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다.

김시내_쉼Ⅰ_볼트, 알루미늄_90×400cm_2003_부분
김시내_쉼Ⅰ_볼트, 알루미늄_90×400cm_2003

김시내의 작업은 전체적으로 꽃, 잎사귀 등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유기적 속성을 읽어내게 한다. 그것들은 물질 속에 내재된 생명의 작은 소리를 듣게 한다. 전시장 한 벽면에 보이는 알루미늄 판 위에 부착된 구겨지고 휘갈겨진 알루미늄 철선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그것을 꽃의 유기적 대상으로써 보이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관람자가 그 일련의 작품 앞에 직면했을 때, 알루미늄 판이 갖는 강한 즉물성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이미지가 표피에 투영된다는 점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것의 독특한 표면은 관람자의 거리와 보는 각도에 따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로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형된다는 점이다. 그 판들은 단순히 관람자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한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한 듯하다. 진짜 살아있는 관람자의 이미지를 포용하면서, 그 꽃은 혼합의 진화를 거쳐 만개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꽃의 이미지는 영구불변의 고정된 실재가 아니가 관람자에게 열려진, 그리고 그들에 의해 변모할 수 있는 유연한 실재이다. ● 이러한 물질의 즉물성에 호소하면서도, 유연한 유기성을 머금은 작품들은 철망의 구멍에 나사못을 삽입시킨 작품에서도 보인다. 이 작품은 마치 철망에 수를 놓은 듯이 섬세한 수공예 적인 과정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하나하나 나사못을 심어 만들어낸 형상 또한 전체적으로 꽃의 유기적 원형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알루미늄 판은 그 표면의 질감에 모든 것을 미끄러지게 하고 집중하게 하는 방식으로 즉물성이 드러났다면, 이 판은 미세한 망점을 지니고 있고 그 내부로 시선을 관통하게 한다. 거기에는 공기가 머금어진 듯한 숨을 쉬는 공간이 존재하고, 즉각적인 눈의 반응보다는 차분하게 생명의 소리들 듣게 하는 여유를 선사한다. 김시내는 손끝의 예민한 감각에 날을 세워 인내로 공을 드려 수를 놓듯이 나사를 심고, 그 위에 서정을 더해 놓고 있다.

김시내_쉼Ⅱ_스테인리스, 알루미늄_60×420×3cm_2003
김시내_쉼Ⅱ_스테인리스, 알루미늄_60×420×3cm_2003_부분

꽃의 유기적 속성 이외에도 이번 전시회에서는 식물의 잎사귀를 연상시키는 듯한 작업들도 등장한다. 여러 섬세한 선의 이음과 교차로 인해 잎의 형태로 보이는 벽면에 부착된 작품과, 여러 장의 단순한 잎사귀들이 마치 휘날린 듯이 바닥에 설치된 작품이 그것이다. 특히 바닥에 설치된 작품의 형상에는 어딘가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그것은 부드러운 바람으로 그 형상에 유연함을 소리 없이 더해주고 있다. 이 작품의 선적인 특성은 아른거리는 그림자와 혼합되어 시적인 서정성으로 인해 철선이 갖는 냉랭한 느낌을 완화시키고 교란시키고 있다. 이 유연한 유기성은 작가의 둔탁하지 않는 동시에 차갑지 않는 섬세한 손끝에서부터, 그리고 내면에서부터 유유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 김지영

Vol.20031210b | 김시내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