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의 빈 곳_The Void of Representation

류용문_이광호_김형관 회화展   2003_1217 ▶︎ 2003_1225

류용문_캔버스-뒤_캔버스에 유채_185×185cm_2003

초대일시_2003_1217_수요일_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전력문화회관 1층 Tel. 02_2055_1192

그림-생각의 거울 ● 미셸 투르니에는 그의 짧지만 흥미로운 한 저서에서 거울처럼 서로 상대되는 개념 둘씩을 짝지어 논하였다. 그 책의 제목이 『생각의 거울』이다. 언제나 구체적인 사물로부터 출발하여 균형 잡힌 사유와 빼어난 통찰력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절묘하게 종합하는 투르니에의 글은 선과 빛, 공간, 긋기와 칠하기, 시각과 주체, 사물과 이미지 또는 기호, 대상과 표상 혹은 재현, 그리고 표상 혹은 재현으로 환원되지 않는 - 돌이킬 수 없는 - 신체적 무의식등 서로 얽히고 설킨 개념들의 관계망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나에게 의미 있는 모델이 되었다. ● 이번 전시의 중심적인 이미지는 세 개의 캔버스다. 이 세 개의 캔버스는 전시장 벽의 중앙에 연속적으로 배치된다. 가운데에는 천을 묶지 않은 캔버스 틀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있고, 그 왼쪽에는 캔버스 앞면의 표면 질감이 표현된 그림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캔버스의 뒷면이 그려진 그림이 바닥에 놓여 있다. 이 캔버스들은 그림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회화적 공간(pictorial space)이 탄생하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지점의 가시적 은유다. ● 이 지점을 중심으로 각각의 나머지 그림들이 좌우로 펼쳐진다. 비교적 구체적인 시각경험과 유사하게 묘사된 오른쪽의 그림들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깊이의 효과가 더해진다. 작업실 안의 좁은 범위의 풍경으로부터 조금은 깊은 바깥 풍경과 더 깊은 투시법적 풍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화면(picture plane) 안쪽으로 깊숙한 곳으로 이끈다. 이 그림들은 시지각이 다른 감각들과 결합하여 깊이의 환영을 창출하는 대상들이다. ● 왼쪽의 그림들은 흰색의 표면에 단색조의 선들로 사물의 대략적인 외곽 형태만을 선으로 그어 암시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그림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결국은 오른쪽 편 쪽 마지막의 투시법적 깊이가 있는 풍경의 한 지점과 만나게 된다. 또한 그 역으로도 가능하다. 이러한 시선의 신체적 움직임이라는 과정을 통해 화면 밖의 관객은 관찰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캔버스 표면(surface) 밖으로 형성되는 이 구체적인 물리적 공간은 눈과 망막의 작용만이 아닌, 다른 구체적인 감각들과 더불어 생각이 함께 작용하는 공감각적 대상이다. 그림이 전적으로 시각적이거나 망막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림은 감각과 정서의 대상임과 동시에 충분히 생각의 대상이며, 따라서 생각의 거울이다. ■ 류용문

류용문_춘산정_캔버스에 유채_185×185cm_2003
류용문_물-앞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3
류용문_여운-1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03
류용문_여운-2_캔버스에 유채_114×146cm_2003

나는 왜 이렇게 그리는가 ● 보는 과정에의 관심은 내가 어떤 대상을 볼 때, 그리고 그 대상을 재현해 내고자 할 때 개입하는 어떤 힘의 경로를 되짚어 보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 과정의 시작은 '나는 왜 이렇게 그리는가'라는 단순한 물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 이것은 내가 5년 전에 쓴 논문의 한 구절이다. 당시에 나는 나의 시각경험을 결정짓는 요소들, 즉 위에서 언급한 나에게 어떤 힘으로 작용하는 원근법, 사진, 신체의 움직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여러 경험들을 다시 내게 보여지는 대상으로 만들고자 했었다. 그런 태도는 아마 새로운 형태(와 개념)에 대한 강박관념-나의 그림에서의 선과 색의 성질, 빛의 해석, 붓의 운용, 은유와 암시의 방법, 상식과 이론의 균형, 나와 세상에 대한 해석 등으로부터 시작되는-을 내가 볼 수 있는 형태로 다시 만들어 보려는 의지의 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표현의 과정으로 나의 시선과 대상, 그리고 재현의 장으로서의 그림의 표면과의 관계를 서로 종합하기보다는 단편화시키고, 분절적으로 만들어 그것이 결국 서로의 거리를 떨어뜨려 각각의 것들을 점점 분명히 보게 되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아직 나는 나의 돌이킬 수 없는 경험으로 대상을 보고 여전히 나의 그림에서는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보여 진다. 하여 아직도 나의 질문은 유효한 듯 하다. ● '나는 내가 본 대상을 도대체 왜 이렇게 그리는가' ■ 김형관

김형관_MALE NUDE_종이에 수채_30×30cm_2003
김형관_1103-2-1_린넨에 유채_100×100cm_2003
김형관_1103-2-2_린넨에 유채_100×100cm_2003
김형관_1103-1-3_한지에 먹_140×160cm_2003
김형관_1103-3-1_한지에 먹_46×39cm×6_2003

주석달기 ● 나는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마치 고해성사 하듯이 화면에 담아내면서도 이것이 관객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수용되는가에 대한 질문과 탐색을 지속해왔다. 이런 과정 중에 회화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좀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로서 주석 달기라는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 이러한 시도는 이해 받으려는 욕구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림을 설명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창조적인 견해를 유도하고 수용하려는 나름의 장치이다. 주석으로 사용되는 자료들은 대상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글, 그림에 이용된 사진, 작업의 동기가 된 이전의 그림, 의뢰인의 감상문, 영화시나리오와 포스터, 모티브를 품고있는 공문서, 작업과정을 기록한 영상물 등으로 다채롭고 풍부하다. ● 이것은 대상의 선택과 해석의 과정, 회화적인 재현의 방식, 이미지와 현실과의 관련성과 같은 미술형식이 지니는 고전적이고 고유한 화두를 던져주면서 관객이 화가의 작업과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동시에 그림에서 다 말하지 못한(혹은 말하지 않는) 재현의 빈 곳을 채워줄 것이라 기대한다. ■ 이광호

이광호_윤서의 머리깍기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03
이광호_머리깍기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01
이광호_태몽_캔버스에 유채_162×230cm_2003
이광호_비디오 머리깍기_단채널 비디오 영상(제작_김기환)_00:10:00_2003
이광호_A Married Couple ; Chul-woong & Jung-sun_캔버스에 유채_60.5×50cm×2_2003

Vol.20031217c | 재현의 빈 곳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