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FUNNY SELF-PORTRAIT

서은애 회화展   2003_1219 ▶︎ 2003_1231

서은애_칠면조 자화상_종이에 채색_150호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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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219_금요일_05:30pm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구 학고재 건물) Tel. 02_760_4721

Ⅰ.누구나 주인공을 꿈꾼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들의 선망어린 눈길의 대상이 되는 드라마틱하고도 자극적인, 화려한 삶을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굳이 전문적인 용어를 빌어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를 둘러싼 이 사회가 온갖 꿈틀거리는 "욕망"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품고 있는 "욕망"들이 모두 현실로 이루어질 수는 없기에 대신 우리는 위장된 이미지(image)들을 소비하는 것으로 부대끼는 속을 달래곤 한다. ● 이지적(理智的)으로 되는 것은 쉽지 않기에 대신 지적(知的)인 것처럼 위장하고, 착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기에 대신 착하고 순진하게 사는 것처럼 위장을 하며, 또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쉽지 않기에 대신 외양으로나마 한정 없이 자유로운 사람인 양 위장을 할 뿐만 아니라 쉽사리 부유해지기란 꽤나 어려우므로 마치 부유한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을 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우리가 기꺼이 덮어쓰는 이미지가 어디 이 뿐이랴. 저항적인 혹은 반항적인 이미지, 시니컬(cynical)한 이미지,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한 이미지, 성적(性的) 매력이 넘치는 이미지, 여성적인 이미지, 남성적인 이미지 또는 중성(中性)적인 이미지 등등. ● 우리 주변의 곳곳에서 너울대는 이 온갖 이미지들이 현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토양 위에서 형성되어진 것들임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어차피 인류의 역사(歷史)라는 것이 쓰여지기 시작한 이래로 단어의 본 의미 그대로의 "중립(中立)"이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적당하게 짜집기를 해서 사용하는 이 이미지라는 것들도 결국은 사회의 특정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만들어낸 일종의 일시적이면서도 또한 이기적인 유행 소비품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건실한 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나무는 약한 물길에도 쉽게 휩쓸려 내려가 버리는 법이듯이 자신을 지탱해줄 수 있는 구심점을 구축하지 못한 채 이런저런 이미지들로 덮어씌우는 데만 급급해 하고 있다면 이는 그 자신이 꽤나 유약한 인물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허나 재미있는 것은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허상에 지나지 않는 이 꾸며진 거짓 이미지들이 세상에는 꽤나 잘 먹혀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서은애_나는야 쓰리피 춘향-나는야 쌍피 몽룡_종이에 채색_30호×2_2003
서은애_화룡점정(畵龍點睛)_종이에 채색_100호_2001

Ⅱ.몽롱한 환상과 현실 사이 ● 이렇게 필요에 의해 여러 이미지들을 소비하다 보면 가끔씩 자신의 실상이 어떠한지 헷갈리기도 한다. 현실과 환상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고 가다가 나중에는 그 두 경계를 쉽사리 구분지울 수 없는 몽롱한 지경(地境)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나"인 듯 하고 저것도 "나"인 듯하니, 때론 스스로도 자신의 참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워지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경미한 「혼동상태」를 굳이 경직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 나이가 들수록 세상 앞에서 자꾸 위축되고 또 위축되어 가는 우리들이 스스로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록 일시적이나마 자신이 열망하는 이미지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 - 다시 말해 환상(幻想)과 현실(現實) 사이의 몽롱한 경계(境界) 즉 신나고 유쾌한 도원경(桃源境)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일진대 비록 이것이 위장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어찌 이 위태롭고도 조그마한 도피처에 감히 비난의 화살을 쏠 수 있겠는가.

서은애_유일무이 관음보살도(唯一無二 觀音菩薩圖)_종이에 채색_140호_2002
서은애_생활 십일면천수관음도(生活 十一面 千手觀音圖)_종이에 채색_150호_2003

Ⅲ.무소불위(無所不爲)의 초강력 파워 ● 일단 이 몽롱한 경계(境界)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이루지 못할 것도, 되지 못할 것도 없다. 현실 속에선 결코 되어보지 못할 멋진 주인공이 되어 무소불위의 막강 파워를 마구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달짝지근한 이 허상(虛像)의 바다에 흠뻑 빠져 한바탕 신나게 놀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팍팍한 이 실상(實像)의 세계에서 꿋꿋이 살아나갈 의욕의 끄트머리를 잡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서은애_나도 주인공처럼-터엉!_종이에 채색_120호_2003
서은애_누가 진짜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_종이에 채색_120호_2003

Ⅳ.유쾌한 도원경(桃源境) ● 내가 종이 위에 담아내는 세상은 바로 이 달콤한 허상(虛像)의 파라다이스이다.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신변잡기적이고 대중적인 매체와 형상들-만화책/화투패/유명고화(古畵)/불화(佛畵) 등을 의도적으로 차용해, 그 일부분에 직접적으로 "나"를 그려 넣거나 또는 자신을 상징하는 대체물을 삽입 또는 환치시킴으로써 다분히 직접적이고도 노골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을 "내"가 주인공이 되어 꾸며가는 이 역동적인 「낙원」의 세계 안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세계 속에서 "나"는 주변을 마음껏 때려부수는 승리자의 모양새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를 절로 이끌어 내는 절세미녀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또 자비(慈悲)와 인덕(仁德)의 결정체인 보살(菩薩)의 형상으로 현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나"의 모습은 남녀구분을 불문하고 동서와 고금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으로, 그 위장된 이미지의 가면들을 수시로 바꾸어가며 자유롭게 등장한다. ● 때론 "나"의 자리를 로봇머리와 인형의 몸통이 조합된 일종의 상징물이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 상징물의 외양 역시 현실 속의 지배적인 통념과 열망들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상상의 결정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기계적인 로봇의 머리통은 냉철하고도 분석적이면서 또 동시에 계산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속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대량으로 찍혀져 나온 획일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하겠다. ● "나"의 모습과 "로봇인형"의 모습은 각각의 작품 속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하지만 때론 하나의 화면 위에서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나"라는 주된 자아를 중심축으로 삼아 내 안에 공존하는 다면적인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서은애_福-12之神圖 ; 개같은 내 인생_종이에 채색_130호_2003
서은애_요정의 정원_입체모형에 채색_2003

Ⅴ.바램 혹은 의도 ● 이렇듯 다양한 캐릭터로 옷을 갈아입으며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화면 속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인 동시에 같은 아픔과 슬픔, 같은 기쁨과 행복으로 동시대를 살아나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나는 전시장 가득 채워질 이 유쾌하고 신나는 화면 속의 이야기들이 보는 이들에게 멈추지 않는 웃음을 제공해 가슴 가득 호호탕탕(浩浩蕩蕩)한 기운을 채워넣어 그들의 삶에 가벼운 위안이라도 되어주길 바란다. ■ 서은애

Vol.20031220b | 서은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