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_牧丹

홍인숙 회화展   2003_1223 ▶︎ 2004_0222 / 일,공휴일 휴관

홍인숙_큰누나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150×120cm_2003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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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223_화요일_05:00pm

협찬_www.neoart.com

관람시간 / 12:30pm~08:00pm / 일,공휴일 휴관

아름다운 가게 홍 서울 마포구 창전동 5-129번지 1층 Tel. 02_336_4236

1. 현실과 화폭의 변이, 그리고 회화의 매력 ● 화가의 화폭이 커다란 의무감을 불러일으키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깃발처럼 펄럭이던 화폭은 첨병의 손에 쥐어진 시대정신의 표상이었다. 내용과 형식에서 거대한 담론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당시의 화폭들은 화가 또는 관람객의 삶마저도 바꾸려는 듯 무척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이는 남한의 1980년대 회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들떠있던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그 넓이를 넓혀가던 당시의 회화는 거친 판화가 되어 골목에 붙여지거나 건물을 뒤덮는 걸개그림이 되어 현장의 함성과 함께 하였다.

홍인숙_큰누나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150×120cm_2003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화폭은 화려한 매체들의 등장으로 약간은 초라해졌다. 거리에는 조잡한 등사기나 고생스런 판화로 제작된 유인물들 대신에 올컬러 옵셋으로 그럴듯하게 인쇄된 전단들이 뿌려졌으며, 걸개그림보다 더 밝고 커다란 총천연색 도심 전광판이 빌딩 옥상에 놓여졌던 까닭이다. 이러한 사정은 시각예술분야로만 국한하여도 마찬가지였다. 각종 시각기제의 발전은 디자인의 성장을 재촉했으며, 영상문화의 다양한 실험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시각영상시대로 성큼 다가서려고 했던 당시의 분위기는 무성격의 중성공간인 화이트 큐브마저도 바꾸어 놓았다. 젊은 화가들은 밋밋한 화폭에 지겨움을 느끼고 행위, 설치, 사진, 영상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미술전시공간에는 네모난 화폭보다는 좀더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매체들로 제작된 작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홍인숙_귀가도1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가변크기_2003
홍인숙_귀가도2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가변크기_2003

잠시 주머니 속에서 호출기가 울리더니 금새 핸드폰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회화는 더 이상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곳곳에서 대형국제미술행사가 열리더니,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사이버 세상을 꿈꾸는 이들마저 생겨났다. 결국 아주 짧은 기간에 영상매체를 동반한 미디어 아트는 미술계의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시기의 가장 파급력 있는 정보매체는 인터넷이 되었으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예술은 영화가 되었다. 이제 화가의 화폭은 미술관에서보다는 박물관에서 더 각광받는 장르처럼 느껴진다.

홍인숙_귀가도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2003

그러나 아무리 현실의 움직임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화는 아직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남한의 회화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시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이는 타 장르에 대한 열등감이나 터무니없는 바램이 아니다. 세상이 변한 만큼 회화 또한 변해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현재 남한의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는 회화들은 과거 1980년대 또는 1990년대의 것과 사뭇 다르다. 이는 영상 또는 미디어 아트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보다 더 심한 자극을 현실 생활의 시각기제들로부터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들 속에서 과거 보편적인 사고를 나누었던 화폭은 더 이상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다만 많은 화가들이 아직 붓을 꺾지 않는 이유는 적어도 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발언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회화인 까닭이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삶과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으로서 회화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인숙_귀가도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60×150cm_2003
홍인숙_귀가도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60×150cm_2003

2. 애매한 경계를 딛는 홍인숙 회화의 매력 ● 1973년에 태어난 홍인숙의 화폭을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남한 회화의 변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서양화인지 동양화인지 판화인지 일러스트인지 그래픽디자인인지 따질 필요가 없는 중층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어찌보면 약간 수고롭지만 비교적 간단한 종이판화의 형식을 빌어와 무겁지 않은 이미지들을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내는 묘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홍인숙의 화폭은 고정된 원근법에 의한 빡빡한 일루전 공간으로 구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드로잉처럼 담백하기 그지없는 선묘들의 물컹한 관계들로 짜여져 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홍인숙의 회화를 동양화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내용과 색채에서도 나타나는데 지극히 일상적인 인물의 표정을 백묘법으로 담박하게 드러내면서 전통문양에서 옮겨왔음직한 색깔로 꽃무늬들을 찍어 넣기 때문이다.

홍인숙_엄마의 귀가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45×100cm_2003
홍인숙_엄마의 귀가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35×95cm_2003

또 다른 홍인숙 회화의 맛은 종이판화에서 나온다. 종이판화도 판화인 까닭에 복제가 가능하다. 그리고 직접 붓질을 하는 것과는 다른 공예적 또는 기계적 느낌을 전달해 준다. 그래서 홍인숙의 회화에서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만큼은 아니어도 익명성에 기반한 복제의 형식을 감지할 수 있다. 아마도 2000년대 들어 남한에서 두각을 보인 회화의 한 형식이 몰개성적 붓터치와 기계적 면 분할에 의한 2D 그래픽과 유사한 형상회화일 것이다. 물론 이런 류의 회화들은 그 테두리뿐만 아니라 색상에서도 인쇄물 또는 모니터를 닮았다. 이를 남한의 팝아트로 규정하려는 이들도 있는데 팝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세월이 빨리 흘러버렸다. 오히려 이런 류의 회화들은 남한의 지역적 특수성에 기반한 영상매체시대의 형상회화로 분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 같다. 어찌되었건 종이판화라는 기법상의 이유로 홍인숙의 회화는 대량복제시대의 이미지와 유사한 맥락으로 읽혀질 수 있는 코드와 전통 공예적 성향의 코드로 읽혀질 수 있는 매력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홍인숙_희희등/홍단등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가변크기_2003

마지막으로 홍인숙 회화에서 두드러지게 읽혀지는 것은 문자와 기호이다. 어찌보면 투박한 민화의 형식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세련된 일러스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문자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그 따스함과 유머러스함에 빠지게 된다. 서툰 글씨체도 그렇지만 의미 또한 마치 암호처럼 여러 방법으로 읽혀질 수 있어서 보는 사람 임의로 오독하거나 독해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기호로 작용하는 소품들은 요란한 것들이 아니라 이미 남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진 것들로서 만약에 그 기호로서의 소품들이 없다면 오히려 허전해 보일 것이다. 사실 이 기호로서의 소품들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문자보다도 더 빠르게 읽혀지는 힘을 지니고 있다.

홍인숙_해피메리 크리스마스_종이에 혼합재료/기법_가변크기_2003

대략 살펴본 바와 같이 홍인숙의 회화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약간만 더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지금처럼 광범위한 포진이 불가능할 것 같은 애매한 경계를 딛고 있다. 이는 물론 개별 창작자로서 홍인숙 개인의 역량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1980년대 이후 남한 회화의 변이가 가져온 여러 정황들을 돌이켜보건대 내용과 형식에서 결코 개인적이지만은 않은 사뭇 다른 회화의 지평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최금수

Vol.20031223b | 홍인숙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