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三人의兒孩

이상선 회화展   2004_0112 ▶ 2004_0201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광고이미지, 아크릴_30×20cm_2003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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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_윈도우 갤러리 서울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Tel. 02_734_6111

이상선의 작업은 시인 이상(李箱)의 텍스트에 기초하는 한편, 그 텍스트에 대한 나름의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시 타이틀에서부터 각각의 부제에 이르기까지의, 이상의 텍스트로부터 발췌한 각종 문구들에서 확인된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이미지는 이상의 텍스트를 도해(圖解)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상의 텍스트를 곧이곧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며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광고이미지, 아크릴_26×60cm_2003_부분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광고이미지, 아크릴_30×20cm_2003_부분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_30×20cm_2003_부분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광고이미지, 아크릴_60×22cm_2003_부분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광고이미지, 아크릴_60×22cm_2003_부분

대신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의 프리즘과 이상의 텍스트가 겹쳐지는, 이상의 텍스트와 작가의 텍스트가 만나서 또 다른 텍스트(이상과 작가에 속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를 낳는 그 자체 자족적인 텍스트의 존재(상호 텍스트성)를 실천/실현하려는 크로스오버(탈쟝르)의 동시대적 경향과 일치한다. 이상의 텍스트와 작가의 작업이 갖는 관련의 끈은 그 자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기보다는 자의적이고 임의적이며 개별적인 것이다. 작가는 이상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문구(상황)에 작업을 밀착시키는가 하면, 단지 이상의 텍스트전반에 대한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이미지에 머물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이건 작업의 이면에 이상의 텍스트에 대한 논리적이거나 개념적이기보다는 정서적인 이해를 공유한다. ■ 고충환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광고이미지, 아크릴_22×60cm_2003_부분
이상선_十三人의兒孩_천 위에 광고이미지, 아크릴_60×22cm_2003_부분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 (길은뚫린골목이라도適當하오.)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 「烏瞰圖 - 詩第一號」)

Vol.20040112a | 이상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