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아트다

박상희 회화展   2004_0128 ▶ 2004_0208

박상희_모범음식점_씨트지에 아크릴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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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128_수요일_05:00pm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학고재 건물 3, 4층) Tel. 02_760_4722

간판은 아트다. 매일 매일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자연스런 하나의 그림이다. 간판 속에 달려 있는 보이지 않는 아우성들이 때로는 짜증날 때도 있지만 뒤죽박죽 섞여 순서 없는 조각 그림처럼 이것은 도시 공간을 새로 짜 맞춘 하나의 그림이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갖고 싶고, 먹고 싶고, 팔고 싶은 욕망들이 담겨져 있다. 가장 순박한 상인의 꿈에서부터 번듯한 재벌 회사의 영자(英字) 로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과 목소리만큼 수 없이 많은 옷들을 입고 있다.

박상희_에반겔리온_씨트지에 아크릴_160×128cm_2003

한국적 소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광고에 쓰여진 소박하지만 치열한 삶을 보여주는 광고 문구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국집 전단지에 나오는 화려한 요리 제목과 음식들, 음식점 전단지, 도시에 흘러 넘치는 형형 색색의 간판들... 세련되게 만들어질 새도 없이 있는 힘껏 목청 높여 외쳐서 주의를 끌고 싶은 열망들을 총천연색 간판에 쏟아 넣고 있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풍경을 차지하고 있어 그것이 아름다운지 흉한지조차 판단할 수 없어진 동네의 간판과 건물의 외관들은 솔직히 미적인 흡인력은 없지만 옛날 모네가 앞마당의 숲과 꽃들을 그렸듯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화폭에 담으려 했다.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 공기처럼 느끼지 못하는 삶의 호흡을 간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박상희_Buy the way_씨트지에 아크릴_128×160cm_2003
박상희_풍경_씨트지에 아크릴_91×116cm_2003 박상희_모텔-풍경_씨트지에 아크릴_91×116cm_2003
박상희_풍경_씨트지에 아크릴_91×116cm_2003

간판은 현재 한국 사회의 진솔하지만 흉물스러운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우리네 현실이며 가만히 보면 오래되고 낡은 간판에 소복이 내려앉은 추억들이 덤으로 얹혀 있다. 어릴 적, 동네 입구 먹음직스런 식빵 그림과 함께 쓰여진 '독일 제과' 간판에는 지금 그 어떤 유명한 제과점에서 느낄 수 없는 따스한 추억이 서려 있다. 이렇게 간판은 한편으로는 촌스럽게 욕망을 드러내는 흉물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웃의 삶과 한국이라는 독특한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정표와도 같은 것이다.

박상희_중국집, 원보_씨트지에 아크릴_128×160cm_2003
박상희_독일제과_씨트지에 아크릴_160×128cm_2003

작업 방법은 주로 플라스틱 씨트지를 칼로 오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가볍고도 대중적인 이미지를 플라스틱이라는 대량 생산적인 매체 속성을 통해 살려보려고 했다. 또, 한지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한국적 문양이나 도안 등을 한지 위에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테이프를 붙여 이미지를 오린 후, 오려낸 공간을 메우고 종이를 떼내는 일종의 공판화 형식을 취했다. 작업 과정이 다소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지만, 꼼꼼하게 손으로 수작업(手作業)하는 묘미를 느낄 수 있어 뿌듯하다. 마지막으로 점차 사진이나 비디오로 대체되는 전시 공간에 평면 회화의 새로운 시도로 내 작업이 빛을 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 박상희

Vol.20040129a | 박상희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