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S on WATER

주상연 사진展   2004_0214 ▶︎ 2004_0327

주상연_물위를 걷다_흑백인화_50×50cm_2004

초대일시_2004_0221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_2004_0313_토요일_03:00pm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02_418_1315

주상연 사진은 정확하게 손에 잡혀지는 작품들이 아니고, 암시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물이나 심연의 세계, 하늘, 대기, 그리고 우주적 풍경에 관심을 가진다. 한동안 하늘과 물을 대조시키는 풍경 작품들을 시도한 것은 자연의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물의 상징적 대비를 추구한 것이었다. 구름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하늘과 고요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거센 물결을 예고하는 듯한 물을 결합해 주는 것은 빛이다. 빛은 모든 것은 묶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 주상연의 이러한 풍경에 대한 관심은 거의 종교적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그의 작품에서의 무한하고 충만한 하늘은 빛의 근원이기도 하며, 일종의 천국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이번 사진 전에서는 하늘과 물의 풍경은 계속되지만, 오히려 물을, 그것도 물 속의 인간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는 물 속을 걷거나 떠다니는 사람들, 샤워하는 어린이, 빙판에서 스케이트 지치는 소녀 등의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물위를 걷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주상연_물위를 걷다_흑백인화_50×50cm_2004

물은 사실 인간 생명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간의 신체의 70%가 물이라는 사실이외에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자궁 속에서 자라나고, 기독교의 경우 세례로 거듭난다. 그는 물은 모든 우주적 창조의 토대이면서 모든 씨앗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물이 죽은 자를 용해시켜 사물의 근원과 결합시키기 때문에, 우주적 순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회귀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 이번 작품을 위해 주상연은 5미터 높이의 대형 수족관을 빌려 두 명의 모델과 함께 작업했다. 그는 물 속에서 힘을 빼고 더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승, 하강하는 모델을 찍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랜 노출로 연속적인 움직임을 포착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산하고 연출하기보다는 우연한 효과, 또는 피사체가 움직이면서 남겨지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에너지나 氣 또는 비물질의 흔적을 찾아낸다.

주상연_물위를 걷다_흑백인화_50×50cm_2004

물이라는 주제는 미술가의 오랜 주제의 하나였다. 중세나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최후의 심판의 주제에서 영혼이 물에 떠 있는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19세기 낭만주의 작품에서 물은 난파선의 자연으로 거칠고 예측 불허한 재현으로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물을 가장 즐겨 그렸던 화가들은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이들은 항상 흔들리는 수면 위에 빛이 어떻게 반영하는가를 관심을 가지면서 수면의 위와 아래를 관찰하고 그렸다. 이들과는 다르지만 주상연 역시 수면을 대기와 물의 경계선으로 본다. 그는 수면을 두 가지 대조적인 물질들이 맞닥트리는 경계로, 언제든지 격렬한 드라마가 가능한 지점으로 보고 있다.

주상연_물위를 걷다_흑백인화_50×50cm_2004

물은 가볍고 편안해 보이지만 물 속에 있으면 물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은 물의 흐름을 따라가면 부드럽지만 힘을 주거나 물을 거스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다. 물 속에 있다는 것은 한편 다른 사람과의 통화가 어렵기 때문에 혼자라는 느낌을 가중시킨다. 주상연의 사진에서 물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고 행동의 의지가 박탈된 듯 중량감이 없이 부유하거나, 떠 있는 인간의 모습은 마치 물 속을 떠도는 영혼의 모습 같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포르말린에 담겨진 인간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것처럼 보인다.

주상연_물위를 걷다_흑백인화_50×50cm_2004

비슷한 느낌이 샤워를 하는 소녀의 벗은 뒷모습이나 얼굴 등에서도 나타난다. 근본적으로 주상연이 관심을 가진 것은 어떤 육체적인 아름다움이나 현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체의 정신을 드러내는 자세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 주상연의 사진작품 들은 이제 낭만적이고, 초현실적이었던, 따라서 자칫 감상주의에 빠질 염려가 있었던 초기 작품에서 탈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더 집중되어있고 깊이를 가진다. 이 사진작업을, 앞으로 더 탐구할 여지가 있는, 그러므로 좀더 지속되어야 할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싶다. ■ 김영나

Vol.20040208b | 주상연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