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적 기념비

엄기홍 개인展   2004_0218 ▶ 2004_0224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초대일시_2004_0218_수요일_05:00pm

종로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44번지 Tel. 02_737_0326

인식론적 기념비_monumentality of epistemology ● 명제나 작품해석의 주요 틀은 미셀 푸코에서 빌었다. 운반이 쉽고, 디지털적 요소, 복제와 복수성, 그들이 꾸미는 장소성이나 인스탈레이션 효과 와 같은 비예술적 요소들이 연출하는 효과가 기본 방법론이다. 그러나 너무 비회화적이고 텍스트적, 매체 중심적이어서 존재론적으로 가벼워 보이고 물리적으로도 가벼워서 「인식론적 기념비」라는 다소 장중한 이름을 붙였다. 인식론적 기념비는 예술적 진정성(authenticity)과 연출효과 즉 일종의 사기성, 비가시성과 가시성, 원본성과 복제, 문화와 예술, 전통과 현대사이의 경계허물기의 기념비이다.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비판적 의의를 지닌다고 자평한다. ● 하나는 현실정치적 미술이나 스펙타클과 포르노그래피 효과를 앞세우는 착종된 형식주의 미술에 대한 비판이다. 모두 예술과 삶을 오히려 피폐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후기적 사유의 동일자 비판을 단지 타자의 승리로 이해하는 또 하나의 이분법일 뿐이고 거기에는 진정한 '타자들'이 공존할 여지가 없다. ● 다른 하나는 낭만주의적 예술관에 대한 비판이다. 오늘날의 미술행위는 낭만주의적 원본성originality즉 동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권력으로서 예술을 비판하여야 한다. 오히려 그 폐해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미술행위는 미술의 역사를 단선화 하려는 미술-권력과 제도들에 대하여 미시적 힘으로 이를 와해시키려는 전략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회, 지식, 교육, 역사, 권력, 물질, 성 등과 중층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신체환경과 인식환경 속에서 개개인의 존재는 동일자와 그 동일자의 현재적 효과인 현전성이나 원본성만을 예찬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들은 정치적이다.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따라서 작품의 존재론적 기본문맥은 '디지털존재론'에서 니그로폰테가 예시하듯 벌거벗은 아바타 인형에 옷입히기 놀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인형소비자는 생산자가 제시한 여러 옷들 가운데 스스로 선택한 계열(운동, 무용, 로맨틱....)의 옷의 겹치기(layer)를 통하여 결국 남의 인형과 다른 인형을 만들면서 그의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듯이 엄기홍 작품은 그 복제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겹치기로부터 작품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 겹치기 효과 외에도 작품내적으로 세 개 정도의 변명이 가능하다. 세 개 모두 문자에 구멍을 내면서 수반되는 퇴행효과들이다. 먼저 '죽음vanitas'과 '주검vanity'차이다. 작품이란 말속에는 그것이 하나의 완결된 작품 즉 초월적인 '죽음'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은 그것이 단지 '주검'이었음을 일깨운다. 그래서 부끄럽다. 주검은 죽음의 사물화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릴링은 그 주검에 다시 삶의 호흡을 불어넣는 일종의 우발성에 근거한 주술이며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기꺼이 타자를 허용하는 고통스런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의미의 지움 즉 퇴행(regression)의 몸짓이다. 글자로부터 막 흩어지기 시작한 구멍들이 나비처럼 음모처럼 살랑거린다. 에로틱하다. 구멍들 속에서 주검들이 부활한다. 이번은 촉각적 효과 때문에 구멍을 뚫는다.! 시각대상인 문장을 드릴링으로 지우면 먼저 문장이 사라지고 이어 문자마저 아물거려 결국 촉각대상으로 돌아온다. 시각대상은 몸에서 '떨어짐'으로서 '인식'된다면 촉각대상은 몸에 '다가옴'으로서 '느껴'진다. 그래서 느낌의 세계는 앎의 세계보다 거짓이 없고 포근하다. 앎이 공간적 명료성을 표상한다면 느낌은 시간적 친숙감에 의지하는 만큼 '몸'적이다. 시각에서 과학이 나오지만 느낌에선 시가 나온다. 그것은 분명 퇴행이다. 인식보다 느낌의 세계가 더 어리기/여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변명이다. 글씨의 짝은 종이다. 그래서 내 작품을 다들 종이작업으로 착각한다. 본 것(to see)과 보여진 것(to be seen)의 불일치. 근대의 이상이 일치였다면 탈 모던은 불일치를 꿈꾼다. 상상의 열림이며 그건 퇴행효과다.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엄기홍_인식론적 기념비_2004

마지막으로 예술에 대한 정의와 작품의 관계이다. ● 나는 예술의 진수를 '멋'으로 보는 우리의 전통을 따른다. 멋의 세계란 존재론적으로는 탈존이지만 기하학공간(geometrology)을 위상공간(topology)으로 돌려놓는 작업이다. 멋은 사물비틀기의 효과다. 한국미술을 중국이나 일본미술과 갈라놓는 끼의 효과이다. 삶을 반영하는 미적효과다. 내 작품의 꿈이다. ■ 엄기홍

Vol.20040218b | 엄기홍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