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기계 kill kill kill

수경 회화展   2004_0301 ▶ 2004_0331

수경_자학스티커_다른 방식의 자학으로 조합할 수 있는 자학스티커_15×1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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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 05:00pm~02:00am

복합문화놀이공간 몽환 2층 갤러리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52-30번지 Tel. 02_325_6218

한참 늘어지게 자야할 시간에 수경 작가의 전시 서문 부탁은 그 동안의 친분으로 인한 피치 못할 승낙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발생시켰다. 막상 무언가를 써내려 간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친분은 다른 쪽에서 쌓여 이쪽으로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킬킬킬 웃기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나도 한번 떠볼까 생각하니 Kill Kill Kill 마음이 찔린다. 그리고 말이다. 더 웃기고 죽이는 사실은 작가와의 친분으로 인해 작품들에 한꺼풀 콩깍지가 씌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아주 조심해서 읽어 줬으면 한다.

수경_자학기계5_천에 종이, 아크릴채색_45×45cm_2004
수경_홍조_천에 연필, 아크릴채색_25×19cm_2004

작품에 대한 구상은 보통 작가의 머리 안에서 몇 바퀴는 돌리고 돌려야 끙하고 해산되기 마련이다. 그것도 가끔은 난산이어서 별 해괴망측한 짓들을 많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수경 작가의 작품 구상은 골골한 한국미술시장의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성된 화실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안에서 작가는 머리를 삐그덕 굴리기보다는 "야~나 이번 전시 컨셉이 자학인데 생각나는 거 뭐 없어"하는 것처럼 화실생들을 압박하고 핍박하는 가운데 몇 작품을 건지기도 한다. 그래도 작품은 작가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위안 아닌 위안을 해본다. ● 이번 전시가 준비되는 화실(작업실)에 가끔 들르면 놀라는 것은 어제 없던 그림들이 구석구석에 걸려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보고 내심 수경 작가의 스피디한 가내 수공업 능력에 감탄한다. 그런데 그 감탄도 가끔은 "어~저 작품 누가 말했던 거잖아"라는 말에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그래도 말이다 이건 수습이 아니라 말이다. 수경 작가의 작품에서는 독특함이 있다. 독특함을 아주 잘 이해해야 한다. 전에 학교 후배가 수경 작가가 만든 홈피 스티커가 붙은 핸드폰을 보고 이거 엽기 싸이트 아니냐는 질문을 할 정도로 그 독특함의 깊이는 남다르다.

수경_자학기계6_천에 종이, 아크릴채색_45×45cm_2004
수경_자학기계2_천에 종이, 아크릴채색_45×45cm_2004_부분

일단 보이는 대로 보자. 사실 보이는 대로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들여 보려고 작품 앞으로 가서 째려봐도 그게 그거다. 볼장 다 봤다는 소리가 아니다. 보이는 데로 작품이 되고 감상된다는 말이다. 열나 쉬워서 짜증난다면 작품말고 작가나 째려보던가! ● 그런데 점입가경이라고 이번 전시는 독특하다 못해 자학이란다. 거기에다가 앞선 스피디한 가내 수공업을 뛰어 넘을 만한 기계를 덧붙여 자학기계란다. 그렇다면 작업의 속도와 양은 엄청나리라 예상되지만 공사 다 망한 작가다. 그래서인가 작가는 작품 안에서 스스로를 자학하는 것은 아닌 가도 생각된다. 작품이 안되니 작가를 집어넣는 것은 그야말로 역작(力作) 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고통 앞에서 나도 킬킬킬 거리는 것이 무언가 즐겁기는 즐거운 모양이다. 작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의 일부이기도 한 것인가? 사실 난 공사다망 하지는 않은데 말이다. 늘 작가와 같은 사람 때문에 잠이 부족할 뿐이다. 그래도 뜯기고, 찔리고, 물리는 엽기발랄한 자학 작품 앞에서 통쾌하게 Kill Kill Kill 거리면 무언가 끙하고 해산되는 느낌이 든다. 시원하다는 말이다. 뒷간에 다녀오기 전하고 다녀 온 후가 다르다는 말이 맡기는 한 것일까?

수경_자학기계7_천에 종이, 아크릴채색_90×90cm_2004_부분

괴롭(?)더라도 수경 작가의 작품을 다시 보기 위해 작업실에 가 볼 생각이다. 아마도 가는 길에 한 줄에 천 원 하는 김밥을 살지 천 원에 세 개를 주는 호떡을 살지, 떡볶이, 아이스크림 아니면 다른 것을 사가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무엇을 사 가느냐에 따라 친분이 두터워질지 엷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수경 작가의 작업실을 찾는 것이 내 성격이 좋아서라고 하면 그건 정말 Kill Kill Kill 할 일이지만 그곳이 킬킬킬 거릴 수 있는 장소라면 아마도 최상품의 찬사표 콩깍지가 될 것이다. 그건 말이다. 수경 작가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바이홍

Vol.20040229b | 수경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