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누기

곽남신 회화展   2004_0407 ▶︎ 2004_0420

곽남신_자화상(Self Portrait)_판넬에 스프레이, 파라핀, 밀납, 곤충_66×51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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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40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덫에 걸린 그림자 ● 곽남신이 그림자를 들고 나왔다. 이것으로 망각된 미술의 추억을 되돌려 놓으려는 모양이다. 실재 세계를 숭배하는 우리에게 그림자는 일견 허약한 이미지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자 그리기'가 회화의 시원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엔디미온 신화뿐 아니라, 현대인이 탐닉하고 있는 영상(映像)이라는 매체도 결국은 '그림자 이미지'의 조작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이미지 세계로 드나드는 출입구의 초입에 언제나 '그림자'가 위치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여기서 의식은 그림자를 통해 무의식으로 들어간다는 칼 융(C.C. Jung)의 주장을 수사적으로 더한다면, 우리는 '그림자가 곧 이미지'라는 곽남신의 주장에 바싹 귀 기울이게 된다.

곽남신_담배 피우기(Smoking)_종이에 스프레이, 구멍_56×88cm_2003
곽남신_무제(Untitled)_종이에 스프레이, 구멍_56×76cm_2003

그림자, 이미지의 자화상 ● 이번 전시에서 곽남신은 그림자가 이미지 세계의 주인공임을 확고히 드러낸다. 따라서 그는 초기의 그림자 연작에서 보여준 현학적 분위기를 과감히 버리고, 대신 일상 삶에서 포착된 그림자를 주저 없이 화면에 잡아넣었다. 물론 과거의 수묵화적인 명암대비도 동시에 폐기시켰고, 그림자의 환영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알루미늄 금속판을 지지대로 사용하면서, 광선의 원자적 속성을 닮은 스프레이 분무질로 붓질을 대신 시켰다. ● 곽남신은 평면성과 사실성의 절묘한 융합을 그림자의 조형적 매력이자, 바로 이미지로서 그림자의 힘이라고 파악한다. 그가 말하는 이미지의 속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내려면 그의 작품을 살펴봐야 하는데, 그는 자신의 번지는 듯한 외곽선에 대해 작업노트에서 "다소 불분명하게 처리된 외곽선을 통해 그림자는 형상을 떠나 비로소 이미지가 된다. 이미지는 명쾌하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언어로 읽힐 수 없다. 이미지는 그렇게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시각 이미지는 언어로 파악될 수 없는 곳에서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되며, 바로 이 점이 모더니즘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곽남신은 추상과 구상의 이중적 속성을 태곳적부터 내재하고 있는 그림자가 이미지 세계의 자율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매개로 파악하고 바로 이 점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이미지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가 오늘날 우리의 미술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사실도 알아 낼 수 있다. 그는 최근 미술이 언어세계에 굴복했다고 보고, 이를 이번 전시에서 다분히 냉소적으로 드러낸다. 전시장 전면에서 우리를 영접하는 「멀리누기」의 경우 남자 어린아이들의 오줌 멀리 싸기 경합을 권력 지향적인 세계의 시원으로 희화화시키며, 다른 한편 자본 지향적인 현장미술계에 대한 작가의 조소로 보인다. 그러나 과장되고 압축된 형상은 직접적인 사회적 비판으로 보여 지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미의 순례를 위해 전시장에 들어 온 관객을 향한 도발적 장난으로 읽혀도 무방하다. 이와 같은 의미생산은 작가의 사회적 비판의식 조차 '이미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하에서 조율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곽남신_농구(Basketball)_알루미늄타공망에 락커스프레이_90×122cm_2003
곽남신_유럽 여행(Europ Tour)_알루미늄타공망에 스프레이_90×134cm_2002

이미지와 구멍 ●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나는 화면에 등장한 구멍을 면밀히 봐주기를 권하고 싶다. 사실 이번 전시의 거의 모든 그림자가 구멍 낸 판재에 스프레이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에게서 구멍은 일차적으로 이미지 창조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한편 그가 사용한 다른 방식의 구멍들은 그가 이야기하는 이미지론을 이해하는데 보다 더 함축적이다. 그는 곳곳에서 현실세계의 지시 기호로서 구멍, 또는 점선을 사용한다. 즉, 실물과 그림자가 동시에 화면에 등장할 경우 실물을 점선으로 처리하는데, 이러한 역전은 -최소한 미술에서만큼은-이미지가 실재 세계보다 우위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곽남신은 앞서 말한 직접 타공한 구멍 외에 본격적으로 구멍이 나열된 알루미늄 타공망을 지지대로 사용해 작업한다. 그는 연속적인 구멍들이 그림자 이미지를 더 허상(虛像)으로 만드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를 즐겨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그려 넣은 가상의 그림자와 타공망을 투과해 그림자 배면에 형성된 진짜 그림자가 만들어낸 긴장감이 그려진 세계와 가시적 현실 세계와의 교류를 일으킨다. 이것은 이미지와 현실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대치로 볼 수도 있다. ● 이러한 실험은 그의 최근작에서 보다 활발하게 등장한다. 방향성을 갖고 당겨진 캔버스 화면 위에 같은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 같은 그림자 이미지를 집어넣어 실재와 허상의 불합리한 접합을 이뤄낸다. 나는 곽남신이 실체적 화면 위에 그림자 이미지를 가지고 벌이는 이 같은 실험을 앞으로 좀더 빨리 진행하되, 「멀리누기」같은 시도는 좀 천천히 진행하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전자에서 보여준 그의 시도가 정체되고 고갈되었다고 여겨지는 현대 회화에 신선한 활력을 주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그림의 힘은 화면이 잡아내는 수천의 응시에서 나온다고 믿는다면, 곽남신은 화면 자체를 낚아챈 우리의 응시를 한 방향으로 묶으려 하는 것이다. 이제 관객의 시선은 그가 기술이 아니라 힘으로 만들어낸 지시방향을 따르거나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며, 이것을 결정하려는 순간 자신이 이미지의 세계로 초대되어 들어감을 느낄 것이다.

곽남신_멀리 누기_판넬에 스프레이, 스테인리스 봉_260×140cm_2002

플라톤은 동굴 안으로 시각이 고정된 채 그림자만을 보아온 사람들은 태양 아래의 현실 세계를 보더라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브라운관과 영사기의 램프가 만들어낸 가공의 동영상 그림자에 열중하는 우리에게 곽남신의 일상적인 스틸 그림자는 여전히 낯설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평면과 입체, 추상과 구상, 재현과 비재현의 경계에 놓인 그의 그림자는 이미지의 태곳적 유희를 담아내면서 우리 스스로를 이미지 세계의 비판적 대면자로 재인식하도록 인도해내고 있는 것이다. ■ 양정무

Vol.20040407a | 곽남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