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오옥경 회화展   2004_0505 ▶ 2004_0511

오옥경_바다-여행가다_혼합재료_40×70cm_2004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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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05_수요일_05:00pm

공화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02_735_9938

오옥경의 바다 : 존재의 지평으로부터 현재성의 시공간으로 나아가다 ●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 인간을 존재케 하는 근원으로서 자연은 아주 오래 전부터 예술의 가장 큰 표현대상이자 그 목적이었다.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도록 정해진 운명의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자연에 대한 친밀감이 본능적으로 담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 친밀감은 어떤 이에게는 하늘을, 어떤 이에게는 바다를 그리고 또 많은 다른 이들에게는 별, 바람 등의 일정한 지향점으로 드러나곤 한다. 대개 그러한 지향점으로서의 자연은 그것을 향했던 인간 존재의 내면을 감지케하는 지평과도 같은 면모를 보이곤 한다. 작가 오옥경은 바다를 그린다. 이전에도 그렸고 지금도 그린다. 그린다는 행위에 있어서도, 작가의 축적된 경험세계에 있어서도 언제나 작가의 화면에는 바다가 가장 먼저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향적 상황이라는 맥락에서 작가의 바다 그림은 확실히 바다에 대한 감정이입이라는 심리적 상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비추고 그 궤도를 추적하는 절대적 단서가 된다. 무엇을 그리려고 노력하거나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크게 염려함 없이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선택되어진 바다는 작가 자신의 존재를 담을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도 친근한 자연 대상이었으리라. 더욱이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살았던 작가의 경험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으로 하여금 바다라는 지평을 가장 편안하고도 의미있는 실체로 이끌게 했을 것이다. 작가의 심연에서부터 길어 올려진 바다의 색채와 향기, 그리고 촉감은 때때로 삶의 장면들과 중첩되어 세계-내-존재로서의 자신을 자리매김시키는 시공간으로 확장된다. 대부분 사실적 느낌의 푸른 바다 풍경을 보여주었던 작가의 바다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커튼 너머를 무한히 동경하는 자신의 내면이, 휴식의 이미지로서의 푹신한 소파가, 또 다른 시공을 향해 드리워진 계단 등이 윤곽을 드러낸다. 이미 누군가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이러저러한 문명의 상징들로 드러난 바다는 그간에 작가의 체험 세계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로서 바다 위에 침잠하듯 부유하듯 표현된 것이다. 그 가운데 기억하고 싶은 사실도 망각이란 실체 앞에 무기력해지는가 하면, 애써 지우려하는 경험과 기억은 그저 희미해지거나 잠시 가리워질 뿐, 그것이 다녀갔던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는 실재성으로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게 바다는 삶의 여러 양상과 내면을 투영하는 의미망인 것이다.

오옥경_바다-여행가다_혼합재료_40×70cm_2004
오옥경_바다-여행가다_혼합재료_40×70cm_2004

의미망으로서의 바다를 줄곧 그려왔던 작가에게 최근의 작업은 표현 형식과 내용 면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로 간주된다. 작가는 의미망으로서의 바다를 바라보고 음미했던 단계에서 한층 더 나아가 그려왔던 바다가 아니라 실체로서의 바다를 완성하고자 한다. 바다는 더 이상 그려진 것이 아니며, 그 안에 삶의 체험의 파편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작가는 그저 바다와의 만남의 순간을 생생하게 다시 실현하고 싶어한다. 얼마전 우연하게 만났던 그 장소의 바다, 즉 시간과 공간의 섬세한 느낌까지도 고스란히 실체화하려고 한다. 의미의 단서로서 기억을 재생시키는 바다 그림이 아니라, 그때 거기서 보았던 그 바다와 맞딱드리고자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때의 바다를 구현하는 작업으로 이행하면서 바다 그 실체와의 만남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은 시간과 공간의 체험상으로 완성되어 간다. 바다의 실체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면서, 그때의 기억과 느낌을 부활시켜줄 그 장소의 모래를 이용하여 촘촘히 색을 입히듯 바다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전의 작가의 바다 그림들에 드리워졌던 화면의 차이는 그것을 경험하고 구체화하는 동안의 시간과 내면의 상태에 의해서였다. 이제 그 시간과 공간에 존재했던 구체적 물질로서, 또 증거로서 모래를 매개로 한 화면은 작가의 바다와의 맞딱드림이라는 현재성에 어느 정도 다가간 듯 하다. 그러나 현재성에 몰입하는 그 순간을 제외하곤 언제나 현재는 과거로 밀려나는 시간의 법칙을 역행할 순 없다. 단지 거기에 존재했던 무수한 모래알들이 화면 위에 질서를 만듦으로서 현재의 시간성을 상기시킬 뿐이다. 작가는 눈부시게 고왔던 그 작은 둥근 알갱이들이 연갈색조의 농담의 변화를 이루며 지지대 위를 가득 채우고 그 위에 거셌던 파도의 흔적인 흰 거품만이 일렁이는 듯한 모래 바다 풍경을 제시한다. 연갈색조의 모래밭 위의 흰 파도로 구체화된 바다 풍경은 거리를 두고 보면 흡사 아주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누렇게 빛이 바랜 한지 위의 해변의 풍경과도 같은 인상을 받는다. 아마도 작가의 익숙한 회화적 채색 방식이 모래 바다 풍경에서 정갈하고 함축적인 느낌으로 표출된 듯 싶다.

오옥경_바다-시작하다_혼합재료_15×75cm_2003
오옥경_바다-잠들다_혼합재료_20×72cm_2004

이렇게 완성된 모래 바다는 이전의 푸른빛을 주조로 했던 작업으로부터 모래라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매재를 통해 존재의 지평으로부터 현재성이라는 시간성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변화된 심리와 형상의 산물이다. 현재성은 몰입하는 순간일 뿐이라지만 과거와 미래도 현재의 연장선상에 자리하는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현재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하는 순간 그 목표점은 이미 상실되는 시공의 원리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 때, 그 곳에 대한 재현에의 욕망을 모래 바다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 박남희

Vol.20040503b | 오옥경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