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눈, 치밀한 손, 영원한 생명

오월에 만나는 김종영의 가족그림展   2004_0430 ▶ 2004_0530 / 월요일 휴관

김종영_가족의 초상_종이에 먹과 수채_63×47cm_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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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430_금요일_05:00pm

특별공연 / 국민대학교 종합예술대학원 댄스시어터 무용공연_Spring, Steps 2004_0430_금요일_05:30pm / 2004_0530_일요일_02:00pm

김종영미술관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2004_0424_토요일~0530일요일_보물찾기! 미술관에서 찾은 영원한 가치 주제_김종영의 인생, 예술, 사랑을 통한 나의 가치관 찾기 / 키워드_영원한 가치는 있다 성격_지역 학교 연계프로그램 / 대상_청운중학교, 중앙중학교 학생 60여명

김종영미술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3-2번지 Tel. 02_3217_6484

어린이날을 계기로 해서 『오월에 만나는 김종영의 가족그림-온유한 눈, 치밀한 손, 영원한 생명』展을 마련하였습니다. 김종영 선생은 3000여 점의 소묘를 남겼는데 그 중 300점이 가족그림입니다. 그가 왜 그토록 많은 가족그림을 그렸나 하는 까닭은 따로 언급된 말씀이 없어서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림의 성격으로 보아서 초상으로서의 관심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조형탐구의 한 방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인체탐구의 방편으로 가족이 선택되었다고 생각된다하는 것입니다. 노모(老母)와 또 수많은 자화상을 비롯해서 부인과 자녀들 즉 늘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들이 모델이 된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연구 방식입니다. ● 반 고호가 가까운 이웃들을 그린 것이나 세잔이 집 근처의 자연을 그린 것이나 김종영 선생이 마루에 앉아서 건너편 북한산과 돈암동 판자촌을 그린 것이나 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무명정치수를 위한 모뉴망」에 출품한 변을 스스로 적어 놓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영국에 출품한 이 작품에 대하여 그 여인이 정치수인가 정치수를 생각하고 있는 여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여인의 나상(裸像)을 취재한 것은 표현을 위한 수단인 것뿐이다. 다행히 내 정신이 살아 있다면 정치수를 위해서 모조리 바치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서 시사하고 있는 예술가의 정신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자화상 등, 온 가족들을 300장이나 남겼다는 것은 범상히 넘길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계미술사를 다 훑어본다 해도 보기 어려운 일 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내 정신이 살아있다면 정치수를 위해서 모조리 바치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서 "다행히 내 정신이 살아있다면 가족들을 위해서 모조리 바치고 싶은 것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그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동질화되는 현상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김종영 선생의 가족그림들은 다른 소묘들과 모든 면에서 특별히 구별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형태연구의 한 방식으로 가족이 선택되었다는 데에 흥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형식으로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양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그의 조각 작품들처럼 훌륭한 조형미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묘사의 단계를 졸업하고 모든 가족그림들은 예술로서의 특출한 세계를 이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연필그림, 수채그림, 펜그림, 먹그림 등은 그것 자체로가 가족의 얼굴이면서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독립된 예술양식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데에 특별히 유의해야합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이 아닙니다. 조형훈련의 한 방식이며 그것이 예술로서의 확실한 장르를 실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댕이나 마티스를 굳이 연상하지 않더라도 김종영의 소묘를, 그 독자적인 예술양식을, 보기만 하면 그것으로써 우리는 족한 것입니다. 다양한 방식 유창한 기예(技藝), 이른바 골법용필(骨法用筆), 입신(入神)의 명기(名技)를 우리는 그저 관상자로서 보기만 하면 됩니다. 세기의 명장, 그의 정신을 그저 음미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오묘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 예술가의 가족그림을 보면서 그것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 최종태

김종영_어머니_종이에 펜과 수채_36×26cm_1967
김종영_어머니_종이에 콘테_20×15cm_1948년경

오월에 만나는 김종영의 가족그림-온유한 눈, 치밀한 손, 영원한 생명 ● 김종영미술관에서는 김종영의 남긴 드로잉들(3000여점)을 순차적으로 정리해 나가고자 그 첫 순서로 『오월에 만나는 김종영의 가족그림-온유한 눈, 치밀한 손, 영원한 생명』展을 선보인다. 김종영의 조각 작품 외에 수많은 드로잉과 원고들을 접하고 있으면, 그를 조각가라고만 이야기하기에 무언가 부족한 점을 느끼게 된다. 선생이 남긴 조각의 경우 다작(多作)이 아니라서 다소 게으른 작가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일단 아직 공개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드로잉과 작가의 예술 세계관을 적어 놓은 원고들을 보면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는데 몰두했음에 놀라게 된다. 예술가를 부지런히 수확의 열매를 맺는 농부에게 비유한 그의 글을 보더라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두고 성실한 작업태도를 중요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이나 그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선생을 회상하기를 별다른 취미생활도, 여가 생활도 즐기지 않았으며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하는 정신적 여유를 지녔다고 하였다. 동경 유학시절 동료이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시절 동료인 박갑성은 '김종영은 한 평생을 임산부처럼 몸을 조심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보금자리를 찾아 발길을 옮겨 다녔다.'고 말한다. (박갑성,「인간, 각백을 말함」,『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열화당, 1983, p.16) 김종영은 이러한 성품 덕분에 복잡한 시대 상황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초월할 수 있었고 집과 학교를 오가며 작품생활에만 몰두 할 수 있었다. 다음 작가의 글에서 할 일 없이 빈둥빈둥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가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엿볼 수 있다.

김종영_Drawing_종이에 펜과 수채_25×19cm_미상
김종영_Drawing_종이에 크레용_21×15cm_1958

'나는 일찍이 주로 인체에 한정되어 있는 조각의 모티프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가져왔다. 예술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 하였다.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 같은 문제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 동안 약 30년 간의 제작생활은 이러한 여러 가지 과제에 대한 탐구와 실험의 연속이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작품이나 위업을 모색할 겨를도 없었고, 거기에는 별로 흥미도 갖지 않았다.'(김종영, 「작품집 自序」,『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열화당, 1983, p.22)1980년 퇴임을 기념하여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당시 제작한 화집의 「작품집 자서(自序)」에 쓴 말머리이다. 인체에 국한된 구상적 모티브에 한계를 느꼈던 작가는 퇴임까지 30여 년의 제작생활을 추상 세계를 향한 투철한 제작 탐구 과정으로 삼았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작품이 완벽한 작품이 아니라 실험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작가 스스로에게 엄격함과 절제 및 금욕적인 작가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자신의 창작 활동을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로 향한 과정 및 실험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적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 즉 김종영의 추상 예술은 어떠한 세계를 표현한 것일까?

김종영_Drawing_종이에 크레용_21×15cm_1958
김종영_Drawing_종이에 크레용_21×15cm_1958

'자연은 넓고도 풍부하며 인간은 또한 복잡하다. 여기서 작품이 될 동기를 구하지 못한다면 누구나 자기의 역량과 노력을 반성하라! 평범한 현실에서 특수한 흥미를 발견하는 것-특수한 현실에서 보편적인 미를 창조하는 것-이것은 동시에 천재의 능력이며 예술가의 사명이다.'_김종영의 미발표 원고 ● '내 작품의 모티브는 주로 인물과 식물과 산이었다. 이들 자연현상에서 구조의 원리와 공간의 미를 경험하고, 조형의 기술적 방법을 탐구한 것이다.' (김종영, 「전통과 창작」,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열화당, 1983, p.57) 위에 두 글에서는 김종영의 추상 세계에 대한 작품의 동기와 지역적 특수성,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를 위해 관심을 지닌 대상은 주변의 자연, 인간, 식물과 산 등 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 가까운 대상의 탐구를 통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작가만의 보편적이면서 특수한 진리를 밝혀내는 것이 모름지기 예술가라고 말하고 있다. 조형의 방법을 탐구하여,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어떻게 그리느냐에 더욱 열중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는 김종영에게 그가 남긴 3000여 점의 드로잉은 조형의 기술적 방법을 탐구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드로잉들의 대상은 추상적 형태를 제외하고는 흔히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소재들에서 출발한 것으로 그의 자택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풍경들, 자연물, 식물이나 정물화 등이며, 인물 또한 주변의 가족과 자화상 이외에 특정한 다른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김종영_Drawing_종이에 먹과 수채_42×34cm_1955년경
김종영_헤아 16세 상(큰딸)_종이에 펜과 수채_54×37cm_1957
김종영_부인_종이에 연필_25×20cm_미상
김종영_Drawing_종이에 연필과 수채_35×25cm_1967
김종영_Drawing_종이에 먹_35×25cm_미상

김종영미술관이 이 전시 전에 열었던 『조각과 그 밑그림』展은 조각의 형태가 나오기까지의 형태적 탐구를 볼 수 있는 전시였다면, 『오월에 만나는 김종영의 가족그림』展은 김종영의 가족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담긴 드로잉과 인물에 대한 다양한 조형적 탐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 연도가 불확실한 드로잉들도 다수 있으나 주로 가족을 그린 드로잉들은 40년 후반에서 50년대 후반까지가 주를 이룬다. 40년 후반에서 50년대 초반의 그림들은 가족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구상적 소묘들이 많다. 작가의 개인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50년대 후반부터의 가족그림은 초상화나 인물화라고 보기 힘들며 그림을 그린 방식들 또한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짓기 어렵다. 때론 입체파의 피카소와 같은 형태로, 때론 헨리 무어를 연구한 것과 같이, 때론 김종영 특유의 붓 솜씨로 가족을 대상으로 연구한 모습이 보여 진다. 철저하게 인체 탐구를 하기 위한 습작과 같은 드로잉,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으로 미술 사조를 공부하듯이 형태 탐구에 몰두한 시선들을 보여준다. 김종영의 조각 세계를 추상조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지만, 그의 소묘들은 김종영만의 분위기는 있을 수 있으나 그 수와 다양함으로 보아 특정한 흐름 속에 넣기 어렵다. 추상 세계에 대한 탐구의 과정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영_Drawing_종이에 먹과 수채_22×30cm_1958
김종영_헤아 잠든 얼굴_종이에 연필_19×24cm_1949
김종영_Drawing_종이에 콘테_60×45cm_1949
김종영_Drawing_종이에 먹과 수채_42×35cm_1954

'현실에서 그 진수를 파악했을 때 거기서 아름다운 전체를 창조하라! 흥미가 개별적인 특수성에 그치고 만다면 이것은 예술가의 생활을 좁히는 결과가 되고 만다. 가령 나체를 제작하는데 인체미의 보편성을 몰각하고 특성에 흥미가 그치고 만다면 이 작품은 겨우 한 모델의 초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 사람의 나체에서 인체미의 진수를 파악하여. 그 흥미가 인간 전체에 뻗칠 때 한개 사람의 육체는 그 보편성이며 풍부한 변화며 영원한 생명에서 오는 힘의 작용은 바다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대 희랍인의 예지는 인류의 경이가 아닐 수 없다.'_김종영의 미발표 원고 전체적인 드로잉에서의 가족은 가족 이상의 대상으로 보편성, 세계 어느 곳에도 속하는 영원한 생명을 지닌 작품의 대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가족그림 보다 더 많은 수의 인체를 연구한 드로잉을 살펴보면 가족을 대상으로 그리다가 인체 형체 탐구로 발전해 나가는 연작들을 볼 때 모델을 따로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가족은 인체를 공부 할 수 있는 살아있는 형태 탐구 및 인체 조형의 연구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 정확한 연도와 자녀의 나이를 적음으로써 그 시기의 가족의 모습을 초상화에 가깝게 기록하고자 한 흔적도 보이지만, 다양한 재료 및 시도로 대상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인체 탐구 모델로서 가족들의 모습은 인생의 모든 가치의 바탕은 사랑이며, 사랑을 가공한 것이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김종영 선생의 예술세계가 개인적이고 솔직하게 드러난 자리가 되리라 생각된다. 작품을 선보이는 일에도, 사소한 말조차도 아꼈던 김종영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다가가고자 한다. ■ 권연진

Vol.20040503c | 오월에 만나는 김종영의 가족그림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