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소리를 바라보다

심준섭 영상설치展   2004_0423 ▶ 2004_0508

심준섭_순환 2004_스피커와 물, 모니터 등_비디오 영상설치_2004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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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리는 이미지 ● 물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다. 그래서 관념적으로, 이를테면 샘물이니 빗물이니 하는 것에 기대어 연상한다. 또 물은 청각 이미지와도 쉽게 합성한다. 이렇게 물질명사로서의 '물'은 그 전형의 형태가 없어 두 개 이상의 감각들이 합성하는 공감각의 감성적인 것으로 그 형태를 경험하게 된다. 빗물은 비 소리를, 바닷물은 파도소리를 쉽게 동반해 온다. 반대로 어떤 물소리의 정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각 이미지에 의해 결정된다. ● 물과 물소리 따위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관심 밖의 것이 될 때가 많다. 정말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다. 그런데 물과 그 소리라는 시청각의 체험을 아주 특수한 통로로 제시하는 장치가 있다고 하자. 아마도 그렇게나 일상적이고 관심 밖의 것, 정말 특별할 것도 없었던 체험들이 어느 순간 낯선 이미지와 자극적인 소음으로 다가온다면.......

심준섭_순환 2004_스피커와 물, 모니터 등_비디오 영상설치_2004
심준섭_순환 2004_스피커와 물, 모니터 등_비디오 영상설치_2004_부분

전시장 안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소음처럼 들리고 물은 TV모니터 안에서 한줄기로 흐른다. 몇 개의 시험관속의 물은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듯 하다가 꺼지기를 반복한다. 또 어떤 것은 스피커 위에 고인 물이 소리의 진동에 따라 불규칙하게 튀어 오르며 반응한다. 프로젝터에 투사된 물은 열에 의해 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의도된 기계장치에 의해서 나타난다. 이 밀폐된 특수한 공간에서의 물과 그 소리는 무엇인가? 또 이 장치들은? ● 우리는 어딘가의 감추어진 작동 스위치를 찾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장치들은 사람들을 감지하고 우리의 눈이 그것에 닿는 순간부터 스스로 작동한다. 그 장치들과 우리를 주선해주는 매개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게 된다. 이것이 미술적 장치라는 점에서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자동으로 나를 감지하고 움직이고 소리내는 기계장치는 나를 감시하고 반응토록 하는 지극히 수동적인 관찰자로 놓이게 한다.

심준섭_반응Ⅱ_스피커, 감지센서 등 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3
심준섭_반응Ⅰ_물, 모터, 감지센서 등 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3

작가는 기계장치 스스로 작동되도록 인스톨해 놓았을 뿐 작품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기계적 메커니즘을 이용한 실험이며 여기에서의 시각화는 우연적인 효과에 기대고 있으며 어떠한 회화적, 유기적 표현성은 나타나지 않은 채 냉정하고 차가운 기계 반응뿐이다. 전시장 안에서의 이 모든 설정이 미술 작품의 일반적인 문법에 다가서지 않음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심준섭이 보여주는 가능성은 아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들에 대한 경험들을 새로운 감성으로 재 자각하도록 일깨워 주는데 있을 것이다. 그는 물과 그 소리의 지극히 개인적이며 내면적인 경험들을 기계적 장치와 매체들을 개입시킴으로써 자신의 외부로 추출해내는 일련의 실험과정을 보여준다.

심준섭_quelle_바닥에 영상 프로젝션_2003
심준섭_quelle_바닥에 영상 프로젝션-변화하는 물_2003

심준섭은 독일 유학 기간 중 '이명증'이라는 신경증을 얻었다. '이명증'은 일종의 환청을 경험하는 증상이다. 그에게는 물소리와 바람소리의 환청이 나타났고 그 증상으로부터 이러한 작업으로 유도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으로서의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병적 증상의 지극히 거슬리는 소음으로 의식 될 수밖에 없었음을 호소했다. 환청으로서의 물 흐르는 소리는 물 흐르는 모양을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로 연상케 했고 비로소 그 형태를 찾아 나섰다. 모니터 안에서 물줄기의 "순환" 이 소리와 결합하게 된다거나 스피커로 분리된 물소리가 물 자체를 움직여 보이게 하는 새로운 형태들을 찾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작업의 프로세스는 어쩌면 우리가 물과 그 소리가 어떻게 매개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두 개의 감각이 결합하는 공감각은 시어(詩語)를 만든다. 그의 기계장치에는 문학적인 감성으로 안내하는 아이러니마저도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이 보여주는 한계는 분명하다. 자칫 기계적 장치의 저항적이고 강렬함이 메시지를 감출 수 있다. 그의 작업 속에서 감성적인 은유나 시청각적 구조는 너무나 분명하다 못해 단순하다. 그 단조로움은 감성의 여운을 쉽사리 자각상태로 돌려놓음으로써 형식과 내용사이에 어디에도 편입하여 몰두할 수 없는 상태의 것으로 방치해 둔다. 심준섭의 작업이 시도하고 있는 다각의 선택들이 확고한 구조적 메시지를 찾아 나서는 데에 길을 잃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 김영준

Vol.20040506c | 심준섭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