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

지은이_이부록

지은이_이부록 || 디자인_안지미 || 발행일_2004_0427 || 판형_19×13cm 쪽수_256쪽 || 가격_12,000원 || ISBN 89_7232_607_0 || 명상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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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출간과 함께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시전시戰時展示-Warvata / 이부록 개인展 2004_0428 ▶ 2004_0516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60_4725

명상출판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5층 Tel. 02_733_4279

'Warvata(워바타)'는 'War(전쟁)'와 'Avata(가상 사회에서 자신의 분신을 의미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합성어다. 전쟁을 표상으로 하는 가상의 아바타를 뜻한다. ● 이 책 『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는 'Warvata 워바타'를 의미하는 다양한 'Pictograph(픽토그래프 : 대상을 나타내는 도형, 또는 몇 개의 결합에 의해 하나의 관념을 가리키는 것)'를 변형하여 보여준다. ● 아바타는 인간이 아닌 상징적인 대체물로서 가상의 신체인 셈이다. 아바타가 생성되는 사이버 공간은 현실과 완전히 별개의 초월적 세계가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는 현실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있다. 사이버 공간은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까지 모든 면에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부록의 'Warvata 워바타'는 현실과의 상호 관련성에서 비롯하여 전쟁에 주목하게 됬으며, 또한 'Warvata 워바타'가 탄생한 배경이 된다. ● 현대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표준화된 기호(기존의 Pictograph)는 마치 진리처럼 모든 시대,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War Pictograph(전쟁 그림문자)'는 기존의 기호들을 변형하는 놀이를 통해 유일한 진리보다는 다양한 '오류'의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 기존의 도상으로부터 가지치기된 상상력을 통해 보다 변형된 것을 지향하게 되는 'War Pictograph'는 일상의 진실에 '전쟁'의 상처와 흔적을 함축, 내포해 보여주게 된다. 그것은 정보전달이라는 단순한 소통이나 역할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고, 작품을 진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개입함으로서 진리보다는 반성 쪽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 명상출판사

이부록_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_2004
이부록_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_2004

새로운 전형으로서의 책 만들기 가능성 ● '언어 이전'의 문자로 '언어 이후'의 문자에 달하려는 노력은 현대 철학의 가장 첨예한 동시에 가장 위력적인,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핵심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인의 '회화=언어'적 상상력과 마르크스 이후 좌파의 '현대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 이 노력은 한국에서 특히 유행을 타고 있는 바, '언어 이후'의 문자 노력을 오히려 언어의 노력으로 (전락은 아니더라도) 저하시키는 면이 없지 않았다. 썰의 극복이 아니라 썰의 썰로 반복 재생산되거나, 예술적 창조의 분야에서도 글과 그림이 느슨하게, 혹은 서로를 갉아먹는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키치와 '언어 이후' 언어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적절하고 요상한 놈이 나타났다. 이 책은 그림 혹은 도형이 '문자 이후', 그리고 '언어 이후'를 지향한다. 동시에, 놀랍게도, 좌파적이다. 좌파적이면서 현대적인 경지 자체가 우리네 '민족주의적' 환경에서 어려운 일이었거니와, 그의 글=도형, 혹은 와바타(전쟁과 아바타의 합성어)는 현대적이라 좌파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한껏 열어제치고 있다. ■ 김정환

이부록_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_2004
이부록_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_2004
이부록_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_2004

이 책에 대한 또 다른 시선 1 ● 사이버 공간은 일상의 또 다른 변용이다. 사이버 공간적 존재인 아바타의 현실과의 상호 관련성이 이부록으로 하여금 전쟁에 주목하게 했으며 또한 워바타가 탄생한 배경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유목민인 아바타의 숙명은 현실을 비켜갈 수가 없다. 작가는 전쟁에 주목한다. 워바타의 세계에서는 전쟁이라는 인류사의 피비린내 나는 현실이 새로운 아바타적 실체로 생성된다. 이부록이 만들어낸 아바타, 워바타는 한국에서는 신종인 아바타다. 워바타는 분명 아바타 세계의 신선한 확장이다. ● 워바타가 드러나는 양상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 신체적 아바타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경우, 이때 아바타는 단지 인간을 대표하는 수준이다. 전쟁의 결과를 아바타의 신체에 반영시켜 드러내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번째는 신체적 아바타와 아바타의 환경인 전쟁 상황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아바타는 주로 피해자로 등장하지만 가끔 가해자로도 나타난다. 전쟁은 적군이 있어야 하니까. ● 이부록의 워바타가 보여주는 시각적 표현의 전체적 흐름은 매우 상식적이다. 전쟁과 인간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그가 제시하는 워바타의 상들은 어쩌면 새로울 게 없는 평범한 것들이다. 워바타가 전쟁을 묘사하는 경우의 이미지들은 수도 없이 보아왔던 그런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그의 워바타들은 표면적 평범성을 넘어선다. 이미지들의 평범성이 만들어내는 워바타적 단순성의 의미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 이부록의 신체적 아바타는 인간을 표현하는 픽토그램을 응용한 캐릭터다. 모든 전쟁 상황 역시 단순화되고 있다. 이러한 워바타의 단순성은 자칫 아바타적 공간의 새로운 자유스러움으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워바타의 단순성은 작가의 전쟁에 대한 발언이 보편적임을 말해준다. 이 단순성은 그의 워바타의 이미지들이 픽토그램적 형상화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워바타의 픽토그램적 단순성은 워바타가 개인적, 주관적 표상이 아니라 인류적임을 말하는 방법이다. 그는 그가 (간접) 체험한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경험한 전쟁들, 그런 개인적인 전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보편화시키고 싶어한다. 워바타의 단순한 캐릭터와 이것의 반복을 통해서 말이다. 동그라미 속에 하나의 점만 찍혀 있어도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바로 연상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러한 워바타의 픽토그램적 단순성은 전략적이다. 우리로 하여금 전쟁이라는 상황을 개인이 아닌 인류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사유하게 하려는 데 있다. ● 아바타는 사이버 공간에 활동하는 대리 자아다. 우리에게는 아바타를 만들면서 현존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작동한다. 아바타적 새로운 정체성에의 욕망…. 우리의 아바타가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이름을 부여받는 과정을 거친다. 꼭 기명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익명적 변용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부록의 워바타는 이름이 없는 형상이다. 그의 워바타는 현실 세계의 이름, 성별, 나이, 외모, 신분 등등이 자연스럽게 지워진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이부록의 워바타는 이 소거의 방법을 통해서 인류적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워바타의 세계는 아바타적 정체성, 개인적 욕망을 넘어서는 차원으로 열린다. 물론 전쟁도 인류적 차원으로 변용된다. 이름조차 붙일 필요가 없는 수준에서 이부록의 워바타는 인간과 전쟁에 대해, 전쟁의 비극성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개별적 누구누구의 경우가 아닌 인간, 인류의 차원에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 이 책은 글과 그림인 워바타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글은 매우 심각하지만 모두가 신선하지만은 않다. 내용면에서. 그러나 그의 수사법은 매우 개성 있는 수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글과 그림의 심포니 수준에서 이 워바타의 작업을 논의해보는 것은 또 다른 시도일 것이다. ●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 거주하는 아바타와 그것들이 고정, 정착된 이미지로 책이라는 평면 공간 속에 존재할 때... 여기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 정병규

이부록_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_2004
이부록_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_2004

또 다른 시선 2 ● 이부록의 이번 작품으로 표현된 이미지 대부분은 적어도 종이에 옮겨놓고 볼 때는 '얇아' 보인다. 얇다는 것은 표면으로만 존재한다는 말이다. 얇은 것에서는 깊이도 표면에서만 드러날 뿐이다. 얇은 머리에 박힌 해골은 뚫려 있을 뿐이고, 허파와 내장 그리고 그것들을 파고든 무기들도 이미지를 이미지로 만들어주는 물적 기반인 종이의 표면과 동일한 깊이에서, 즉 표면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부록은 여기서 그의 '두꺼운 갑옷'을 말하지만 이 갑옷도 사실은 얇다. 그것은 상상, 상징의 조작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두께일 뿐이기 때문이다. ● 종이에 복사되어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얇다는 것은 깊이가 없다는 것, 질감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색채들의 음양 관계를 통해 질감을 나타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이미지들에서는 그런 질감을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읽혀지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종이가 얇아서 생기는 효과는 아닐 터이다. 종이도 물성을 가지고 있으며, 유화 전통이 보여주듯 그 위에 온갖 계곡과 폭풍과 영혼과 같은 이차원들을 구성할 수 있다. 이부록의 이번 작품이 얇아 보이는 것은 사용한 색깔이 한정되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흑백 사진은 두 가지의 색밖에 없지만 색깔의 농도 변화로 빛의 깊이와 영혼의 깊이까지 묘사할 수 있지 않은가. ● 내가 보는 이미지들이 얇아 보이는 것은 분명 그것들이 컴퓨터 화면 위에서처럼 지면 위에서도 표면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미지들은 지면의 얇음을 전제하는 듯, '紙面'과 '地面'의 차이를 감지한 듯, 하여 紙面에서는 뿌리를 박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종이 위에서 가볍게 논다. 많은 이미지가 단면斷面으로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게다. ● 표면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얇은 것은 무게가 없기 때문에 잘 미끄러지고, 움직인다. 혹시 이 미끄러짐을 눈사태와 관련 지어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미지들의 반복이 겹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미지들은 일정한 '적설량'을 만들 것만 같다. 흩날리는 이미지들이 쌓이고 쌓이면, 예컨대 축구장에 너부러진 사람 모습의 그림문자들이 쌓인다면 얇은 눈들이 겹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들 간의 끌기, 이어짐 현상은 설면체雪面體들의 겹침, 쌓임처럼 적설량으로, 반복과 지속의 패턴으로 이어진다. ● 아마 쌓인 이미지들은 서로 어긋날 수 있으리라, 어긋나야 하리라. 히말라야에, 알프스에 켜켜이 쌓인 눈이 어느 순간 서로 어긋나 눈사태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사물과 사물이 만나는 방식은 표면을 통해서다. 그런데 표면들의 만남은 무한히 지속될 수가 없다. 어느 한 순간, 깊이로만 파악되던 눈 한복판에 갑자기 그동안 겹쳐 있던 표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물들의 표면들이 나타나는 것은 만남 또는 헤어짐의 시간이다. 표면들은 서로 이끌리거나 헤어진다. 이것은 사물들도 서로 사랑하거나 싫증을 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무수한 표면들이 모여 쌓였다가 어느 순간 이들 표면들 간의 어느 지점에서 거대한 혐오증이 발생한 대표적인 경우가 눈사태일 것이다. 눈사태는 적체된 눈들의 어떤 층에서 일어나는 현상, 혐오 현상이다. 영하의 추위에서도 태양열을 받으면 눈들의 표면은 더욱 매끄러워진다. 그 위에 새로 눈이 쌓이고 또 쌓일 때, 그리고 쌓인 눈들 사이에 더 이상 서로 끌어안으려는 힘, 곧 사랑이 약해질 때, 매끄러운 표면과 부드러운 표면이 서로 싫증을 느낄 때, 두 표면 층은 각기 다른 속도의 운동을 하게 된다. 한쪽이 토라지는 순간 상층을 구성하는 눈들은 순식간에 계곡으로 추락한다. ●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역사, 기획의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지형, 설형雪形을 위한 기획. 최종적으로는 제외된 한 '작품'을 보면 난초(이미지)에서 미사일(이미지)이 날아간다. 그런데 과연 그것은 난초의 이미지고, 미사일의 이미지인 것일까? 어떤 이미지를 난초, 미사일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아니 내가, 우리가 보는 것들을 '이미지'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미사일은 난초에서 날아가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비행인 것일까? 이미지를 보고 미사일이 날아간다고 생각하려면 어떤 인식의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지가, 문화적 사물이 스마트하다는 것은 이런 작동을 일으킨다는 말인 것일까? '화가'로서 이부록은 말이 많다. 예컨대 인간 형상으로 그렸다가 지우개로 지워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는 이미지에는 "해변의 파도는 시종 모든 것을 쓸어 내려간다/모래와 거품과 절망의 시체들"과 같은 '설명'을 곁들인다. 폭탄-지구 위에 사람들이 선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에는 "인간, 그들 중 하나는 그들을 멸망케 할 배반의 도화선이니…"라는 말을 붙이고. 설명은 들뢰즈가 소크라테스적 움직임이라고 한 것에 속한다. 아마 들뢰즈 식이라면 화가(또는 필자)는 이미지와 문장을 병렬시켰다고 했을 것 같다. 이미지도, 문장도 사물들이다. 우리는 이 사물들 위로 뛰어다닌다. 날아가는 미사일, 지워진 인간, 폭탄-지구 위의 인간들은 그림 속에서 멈춰서 있고, 옆에 붙은 문장들 역시 백지 위에 정지해 있다. 문장들, 이미지들은 모두 문화적 사물들이다. 이들 사물들 사이로, 위로 뛰어다니는 동안 우리는 감응하는 기계들이다. 해석의 기계들. ● 이미지가 말을 한다. 영리한 문화적 사물들! 그것들은 어떤 '눈사태'를 만들어내려는 것일까? ■ 강내희

이부록_전시전시戰時展示-Warvata_가변크기 공간설치_2004_인사미술공간
이부록_전시전시戰時展示-Warvata_가변크기 공간설치_2004_인사미술공간

차례 ● 이부록의 워바타가 말하는 것..._정병규 / 전쟁 그림 문자 / 영리한 문화적 사물들_강내희 / Warvata 영역문_박범수 / 워바타 몰

지은이이부록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이메일, 카툰,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면서 사회에 예술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꾸준히 탐구하고, 작업을 통해 사회에 끊임없는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Vol.20040509c | Warvata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 / 지은이_이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