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t Voyage-Karma

김인경 조각展   2004_0519 ▶ 2004_0602

김인경_Silent Voyage-Karma_혼합재료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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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27_목요일_05:00pm_무등 갤러리

2004_0519 ▶ 2004_0525 / 모란갤러리 2004_0527 ▶ 2004_0602 / 무등갤러리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무등갤러리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1-25번지(예술의 거리) Tel. 062_236_2520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 작품을 어디에 보관하느냐는 질문에 김인경 선생은 "버려요."라고 짧게 대답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조형물들은 일상적이고 낯익은 사물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일체의 장식성이나 실용성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방을 모티프로 삼은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작품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내는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작품은 마음의 도구가 아니라 마음의 일시적 거처"라는 어느 비평가의 말을 빌자면, 그 형상들은 마음이 벗어낸 허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어떤 공간 속에 놓여져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공간을 품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임시로 꾸려진 존재의 거처라는 의미에서 가방은 가방(假房)이기도 하다. 그 공간은 우연과 임의성에 의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정한 질서와 인과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각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매듭과 고리들이 대칭과 반복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은 그 질서의 반영이다.

김인경_Silent Voyage-Karma_혼합재료_2004

이러한 균제미나 절제된 표현방식은 일찍이 그의 미학적 특징으로 인식되어 왔고, 이번 전시에서도 그런 면모는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재료의 변화와 관계가 깊은 듯하다. 초기작들이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을 주된 재료로 삼아 그 속에 생명체의 다양한 형상들을 박아넣는 방식을 보여 주었다면, 거기에 차츰 따뜻하면서도 둔중한 질감의 목재가 결합하고, 나중에는 날렵하고 정교한 스틱 형태가 등장하게 된다. 그 이후의 작업이 천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재료가 점차 무게를 줄여가는 쪽으로 옮겨오고, 형태나 윤곽이 고착된 형태에서 벗어나 유동적인 방향으로 변화해 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수용과 해방의 이미지를 동시에 낳는다.

김인경_Silent Voyage-Karma_혼합재료_2004
김인경_Silent Voyage-Karma_혼합재료_2004

서로 다른 평면이 박음질되어 생겨난 이 침묵의 공간은 몇 가지 주제로 변주되고 있다. 수많은 살이 중심축을 향해 모여드는 원형은 윤회의 둥근 수레바퀴를 연상시키고, 군용담요와 사각의 틀 속에 일렬로 배열된 매듭과 막대기들은 제도 속의 군상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가 하면 흰 천에 감싸인 배 모양의 기둥들은 타다 남은 시체를 흰 천으로 묶어 갠지즈강에 띄워 보내는 광경을 되살리게 만든다. 또는 누에가 네 번의 잠을 자고 우화(羽化)하고 난 거대한 고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바퀴, 관(棺), 상자, 배, 자루, 고치 등은 가방의 등가적 상상물로서, 존재를 이동시키거나 변용시키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존재들은 오늘도 부단히,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김인경_Silent Voyage-Karma_혼합재료_2004
김인경_Silent Voyage-Karma_혼합재료_2004

그 '품'을 만들기 위해 천을 잇대어 한 땀 한 땀 박아나가는 작업은 마치 티벳 승려들이 모래만다라를 그리는 과정과도 같다. 승려들은 색으로 물들인 모래를 가지고 오체투지로 만다라를 그려나가지만,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다시 빗자루로 쓸어 담아 강이나 바다에 흩뿌린다. 아름다운 예술적 형상은 다시 몇 줌의 모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만다라의 놀랄 만한 정교함은 그 장엄한 사라짐의 순간을 위해 마련된 과정일 따름이다. 그 색(色)과 공(空)이 빚어낸 덧없는 아름다움은 이번 전시의 부제인 카르마(Karma, 業)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김인경_Silent Voyage-Karma_스케치_2004

그래서인지 김인경의 작품은 논리적인 동시에 종교적이며, 현대적인 동시에 원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것은 아마도 포스트모던한 사유와 선적(禪的)인 사유를 결합시켜내려는 정신의 발현일 것이며, 장인(匠人)으로서의 엄격함과 예술가로서의 파격을 함께 밀고 나가려는 노력의 소산일 것이다. 그의 과묵함 속에서 나는 그런 균형감각과 회통(回通)의 기미를 읽어내곤 한다. 과거와 미래로 열려져 있는, 아무 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침묵을 향한 여정에서 그는 이렇게 잠시 몸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나희덕

Vol.20040523c | 김인경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