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ss

표영환 사진展   2004_0525 ▶ 2004_0608

표영환_stress_흑백인화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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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25_화요일_07:00pm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02_418_1315

"암 말기로 인해 오른손만이 거동이 가능한 상태에서 24시간 내내 집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 스트레스를 당신 주변에 있는 깨어진 화분, 피우고 남은 담배꽁초와 알약 캡슐 등을 렌즈에 담아 표현하였다. 화분 또한 당신이 넘어지며 깨뜨린 것이다. '주인의 몸이 불편하니 그들도 나를 따라가는구나!'하며 마치 자신의 몸을 담는 듯했다."_제자 박재혁

순간의 영원함 ● 사진작가 표영환의 작품세계는 존재감의 정착과 혼돈의 시적 표현에 사로잡혀 있다. 이 사진가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물체이거나 현상이거나, 그들의 뚜렷한 존재보다는 막연한 대상으로 표현되어진다. 작가는 그 물체나 존재가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존재감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미세한 것을 극대화하거나 뚜렷한 형태를 가진 존재를 막에 걸러진 채로, 관망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통하여 순간적인 것을 결론지어질 수 없는 영원한 것으로 고착시킴으로 작품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은 우주와 세계가 생기기 이전의 혼돈된 양상을 찾아내거나 또는 반대로 우주와 세계가 끝나서 그들 존재가 무로 돌아가려는 그러한 순간적인 표상이 가득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양극한을 넘나들며 때로는 기쁨에 차서 소리치는가 하면은 때로는 슬픔에 차서 울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감정의 양극한이 작가의 작품에서 동시에 표현되어지는 것은 이 작가의 정신적인 상태가 이러한 모순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존재감의 정착이나 혼돈의 시적 표현과도 통하는 논리이다. ● 보통 사진은 표현된 대상이 무엇인지를 보는 사람에게 가르쳐 줘야 한다. 그렇게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 줌으로써 사진이 조형예술로서의 의미를 다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가의 경우 존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조형화시키는 일보다 대상이 되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어느 막연한 분위기를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대상이 물체일 수도 있고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가의 의도는 그와 같은 상식적인 선으로 넘어서서 인간의 극한 상황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막연한 분위기를 영원화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순간이 영원화 되는 것이다.

표영환_stress_흑백인화_2004
표영환_stress_흑백인화_2004

지금 이 사진가는 인간의 가장 극한 상황, 말하자면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가 이제까지 자기 작품에서 바라다 본 존재와 혼돈을 청산하고 작가 스스로가 영원한 존재로 갈 준비를 하는 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전에 출품된 작품 일부가 그렇듯이 사물이나 인간의 존재가 한시적인 극한 상황을 표현하여 영혼과 대화하는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악화된 건강상태가 정신을 좀먹고 좀먹은 정신이 사물의 인식을 그와 같이 막연한 것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생애 극한적인 시점에 서서 본다면 이 사진가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오직 몽롱한 현실만이 남아있을 지 모른다. 이것을 사람들은 비극이라고 하고 또는 희극이라고 한다. 비극은 그의 작품에 있는 담배꽁초처럼 생명의 잔해가 되어서 어느 공간을 채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 희극은 그의 작품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몽롱한 존재의식 그것은 사진가 표영환의 작품 세계인데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공통되는 가장 진실된 모습인지도 모른다. 생애의 마지막 언덕에 서서 자기의 짧은 생애를 돌이켜 보고 있는 이 사진작가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거니와 슬픔도 준다. 결국 이 사진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느낌은 기쁜 것과 슬픈 것은 하나라는 점이다. ■ 이경성

표영환_흑백인화
표영환_흑백인화

한 사진가와의 만남 ● 감상적이기 쉬운 만남이었다. 그는 암과 맞서고 있는 초로의 신사였고, 나는 한 잡지의 젊은 기자였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사진가가 밉살스런 종양에 눌려 건장한 몸을 떠받쳐야할 다리 한쪽을 절고 있었다. 첫 술자리에서조차 그는 한 꾸러미의 사진을 내밀었고 "사진을 봤으면 평을 하라"며 새까만 후배의 소감을 구했다. ● 반년이나 지났을까, 병은 이제 그 몸의 절반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빛나는 옛 시절의 무용담은 없었다. 나는 방 한켠에 아무렇게나 놓인 미국기자협회 사진기자상(1992년 LA흑인폭동 취재)을 보고서야 그가 훌륭한 사진기자였음을 알아차렸고, 오래 전 추천을 받아 등단했던 문인이라는 사실 역시 지인에게서 귀동냥으로 얻어 들었다. ● 그는 늘 현재를 살았기에 병실 구석을 뒹굴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고, 만날 때마다 최근 촬영한 사진이라며 인화지를 내밀었다. 작품이 좋다는 말을 건내면 아직 사진 볼 줄 모른다며 면박 당했지만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며 그를 아끼는 후배들과 모처럼 기분 좋게 떠난 남도여행에서 오랫동안 손에 익은 롤라이플렉스의 셔터가 엉키자 굳이 차를 돌리게 했다. 노인네의 망발이라며 속으로 흉을 보았을망정, 아무도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사진은 그의 수행이자 선(禪)이었다. ● "사람이 아닌, 작품이 기억에 남아야 해. 내 말은 내 작품 뒤에 있어야 해." 삶을 죄어오는 죽음 앞에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다그쳐 마지막까지 셔터를 누른 사진들, 그가 '스트레스'라 이름붙였던 작품들 앞에서 나는 그 말이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한 장의 사진에서 작가의 말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들 모두가 감당하여야만 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한계상황을 담아내고 있었기에 죽음 앞에 선 한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든다"는 내 말에 그는 언제나처럼 퉁명스레 반응했지만 평소와 다른 흡족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왔다. 사진의 은입자들은 마치 말라붙어가는 그 피와 정력의 흔적들 같았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육체가 종양에 점령당하기 전, 자신의 남은 몸과 정신을 인화지 위로 모두 이주시키려는 듯 했다. 그것이 내가 그를 본 마지막이었다. 얼마 뒤, 그는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 국화꽃잎 곱게 흩뿌린 그의 관 위에서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의 손에 삽이 들렸고, 흙이 덧뿌려졌다. 무덤 위로 비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우산 밑으로 모여들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느릿느릿 산 아래로 향했다. 아름다운 장례였다. ■ 최재균

표영환_self portrait_흑백인화_2003

표영환(1953~2004) ● 1953_경남 마산 출생 / 1974_서라벌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 1977_잡지사 '여원' 사진부 기자 / 1980_도미 / 1985_한국일보 L.A 지사 사진부 기자 / 1985_표영환 개인전_Dancing Man Gallery_미국 / 1986_표영환 초대전_Santa of Art Center_미국 / 1988_중앙일보 미주 본사 LA 사진부 기자 / 1991_표영환.박일용 2인전_파인힐갤러리_서울 / 1996_표영환.박일용 2인전_삼성갤러리_서울 / 1999_표영환 개인전, 『Under the Sun』_사진마당_서울 / 2001_『가족』_서울시립미술관_서울 / 2001_표영환 개인전, 『침묵의 또다른 이름』_갤러리 룩스_서울 / 2004_5월 10일 52세로 사망 / 2004_표영환 유작사진전_한미사진미술관_서울

Vol.20040525c | 표영환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