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e

임병국 회화展   2004_0526 ▶ 2004_0601

임병국_Face-red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62×130cm_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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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26_수요일_05: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타인(他人)의 풍경(風景) ● 임병국이 그리는 인물의 얼굴은 병적인 상황을 연상시키는 특징적인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무언가에 놀라고 겁먹은 표정, 오랫동안 외면당하여 주저와 망설임이 가득한 얼굴, 무표정하고 건조한 피부색, 의심과 회한이 쌓인 눈동자 등 정착하지 못한 생의 흔적들이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되어 있다. ● 화면에 보이는 인물들은 비록 입을 가지고 있지만 입 없는 것들이다. 사회적 의사소통에서 오래 소외된 채 자폐와 냉소, 불안, 무력함, 대화상실, 환각, 망상 등등 피폐하고 자아파괴적인 일상이 반복된 인물들이다. ● 화면은 화면 밖의 대상을 응시하지도 흡수하지도 않는다. 시선은 화면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튕겨나가 버린다. 화면의 긴장은 나의 시선이 다가와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깊은 침묵과 소리 없는 몸의 발설(發說)에 있다. 이 소리 없는 몸의 발설은 원망, 두려움, 놀람, 실망, 알 수 없음, 피곤함, 믿을 수 없음, 어이없음 등등 일상적 대화의 모든 것을 발설하지만 소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발산에 가깝다.

임병국_Two face-gr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27×181cm_2003
임병국_Three face-gray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62×130cm×2_2003
임병국_Face-red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40×130cm_2000

그러나 이 몸의 발설은 한편으로 거부하고 한편으로 인정받고 편입해 들어가고 싶은 몸의 욕망을 이중적으로 드러낸다. 순응하면서도 파괴적인 자아의 분열증은 신경증적 선병질과 자폐로 나타나는데 집중적인 얼굴 표정을 포착한 작업(Twenty Face)에서 잘 들어나고 있다. ● 반복적인 흥분상태를 유발하고 세계에 대한 불안과 심리적 공황을 보여주는 임병국의 작업은 그러나 아직까지는 과장과 생략, 왜곡 변형된 인체표상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익명으로 스쳐가던 몸의 존재들이 관심과 소통의 시선으로 전환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형태와 표정 색채표현에서 주는 무게가 심리적 부담을 지울 수 있지만 화면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자아 파괴적 자화상이 아닌 냉대와 공포가 일상화된 불안한 영혼들인 것이다. 이 불안한 영혼들은 세계로부터 흡수되지도 못하고 껴안을 수도 없는 타인의 풍경이다 ● 임병국이 보여주는 회화적 사고는 타인이 풍경으로 머물지 않으며 나에게 타인인 그들이 나에게 이미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데 있다.

임병국_Twenty Face_종이에 수채,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4×31cm×8_2004
임병국_Face-Ⅰ_종이에 수채,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4×31cm_2004
임병국_Face-Ⅱ_종이에 수채,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24cm_2004

그들은 나와 관계하며 존재하는가.... 침묵은 곧 히스테리와 불안 속에 휘말리며 나의 감성적 리듬을 자극시킨다. 나의 관심은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나 움직임으로써 고착된 이미지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흡수되고픈, 아니 흡수되어버린 그 속에서, 혹독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임병국) ● 메를로 뽕띠는 타인의 의미를 "유일한 전체는 타인과의 관계'라고 말하면서 내가 감각적인 기능을 갖는 한 타자들과 이미 의사소통을 하는 존재이고 "나의 세계는 그저 나만의 것이 아닌 지각되는 전체"인 것으로 말한바 있다. 그러므로 메를로 뽕띠의 생각을 빌리면 타인의 시선이 멈춰진 "나의 세계는 이미 다른 몸의 세계를 형성하는 단순한 편린이 아니라 어떤 노력의 거점이고 세계의 어떤 '시선'의 거점(지각의 현상학)"인 것이다. ● 타인의 풍경이 지각된 전체의 나로 확산되는 세계상을 임병국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류철하

Vol.20040526b | 임병국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