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반사된 '사라짐'의 메타포

이선영 설치展   2004_0529 ▶ 2004_0606

이선영_가족사진_실리콘_가변크기, 설치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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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반디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34-26번지 Tel. 051_756_3313

'사라짐'은 '생명을 다함'이며 소멸하는 것, 죽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에 대해 사라진다고 하지 않는다. 즉 '사라짐'은 '존재해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우습게도 '사라짐'은 '존재'에 의존해 있다. ● 인간이 죽어 없어지는 것은 실체의 소멸이며 생생한 그 아이덴티티가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그 존재는 과거형 술어의 상태로 재생산된다. 우리는 화석이나 탁본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과거의 원형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시간의 축적에 의해 원형의 이미지 그 이상의 것으로 드러난다.

이선영_가족사진_실리콘_가변크기, 설치_2004
이선영_가족사진_실리콘_가변크기, 설치_2004_부분
이선영_가족사진_실리콘_가변크기, 설치_2004_부분

이선영은 '옷'에 주목하고 있다. 옷은 그에게 말하기 장치의 모티브이기도 하지만 형식이자 내용이다. 옷은 입고 있는 사람에 의해 의미가 생긴다. 이선영의 「가족사진」에는 인물사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은 작품에는 가족사진과 같은 피사체의 배치만 있다. 그 피사체의 배치는, 인물들은 모두 소거해 버리고 남은 '옷'에 의해 결정된다. 옷은 사라진 가족들의 존재, 이를테면 정체성을 대신해 주고 있다. 일상의 가족사진을 보는 경험에서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누이와 형제들의 생생한 인상에서 실체의 '있었음'을 회상한다. 그러나 이선영의 가족사진에는 그런 것이 없다. 옷만이 그것을 대체하는데 그 옷들도 흔적으로서의 옷이다. 이를테면 옷의 질료나 고유색, 고유기능이 모두 탈거된 기억으로서의 옷만이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이선영_벽-시멘트에 실리콘_130×100cm_2004
이선영_loss of memory_가구에 실리콘과 모래_가변크기, 설치_2004

시멘트의 「벽」은 공간을 가르고 시간을 분절한다. 그 벽 속에 실리콘의 투명한 옷자락이, 아니 옷의 흔적과도 같은 인상이 그 벽의 표면 속에 반쯤 매몰되어 있다. 이 옷은 '소멸'이거나 오히려 그 소멸을 극복하고 있는 '드러남'이기도 하다. 반쯤의 매몰은 상대적으로 반쯤의 노출을 전재해 있고 '정체성' 지우기의 은유는 정체성의 '흔적'을 드러냄으로써 가능해진다. 또 이 백년쯤 묶은 옛 앤틱 옷장의 문이 젖혀진 채로 그 속의 옷은 투명 한 채로 시간 속에 매몰된다. 아니 드러난다. 이렇게 이중의 부조리 속에서 '사라짐'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선영_untitled_실리콘_가변크기, 설치_2004

이선영의 작품과 공간의 연출은 감상을 '우발적인 목격'의 위치로 옮겨 놓음으로써 사물의 실체적 위계와 인간의 정체성에의 근원적인 질문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성 또는 남성성 지우기를 통해 새로운 배치의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선영은 여기서 대상의 정체성을 지우고 즉자적이고 감성적인 물성과 그 흔적의 상만을 남김으로써 일상에서 얻어지는 관념의 위계나 배치를 극복하고자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 김영준

Vol.20040527c | 이선영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