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_깨어지다

'젊은작가발굴 2004' I부 권기범 회화展   2004_0602 ▶ 2004_0615 / 일,공휴일 휴관

권기범_Glass Flower 04-2_한지에 혼합재료_130×7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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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602_수요일_05: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마음에 비친 꽃의 형상 ● 권기범의 작업 주제는 꽃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꽃은 어떤 특정한 꽃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가시달린 정열의 장미꽃이나 한겨울 차가운 눈송이 헤집고 피어나는 매화, 혹은 한 여름 뜨거운 햇살 받으며 수면에 고운 자태 비추는 수련(睡蓮)이 아니라, 우리가 '꽃'이라는 개념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총체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써 작가의 사유와 관객의 감상 사이를 매개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 꽃이란 단지 그의 마음속 형상이나 사유를 관객에게 전하는 단서일 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했던 혹은 마주하고 있는 어떤 '그' 꽃하고는 거리가 있다. ● 그의 꽃은 우리가 마주 대하는 모든 생물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그 화사한 용모를 드러내는 것들의 대명사이다. 모든 가치들의 '이름' 이며 '의미' 이다. '꽃 같은 얼굴', '꽃다운 나이', '꽃처럼 화사한 자태', 권기범의 작업에서 꽃이 연상시키는 것은 이처럼 유미주의(唯美主義)적인 이미지들이며, 아름다움에 관한 가치이다. 권기범의 작업은 이러한 꽃의 이미지들을 면과 선이라는 조형적 원리로 환원하여 그 내재적 규칙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이다. 결국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꽃이라는 형식적 이미지들에 의해 구현되는 조형적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권기범 회화의 기본요소는 자연적인 꽃의 형상성에 따른 면과 선, 색의 분할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지니고 있는 심상(心象)이 꽃이라는 매개체의 동감(動感)이나 기세(氣勢), 혹은 면과 선을 통하여 표현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권기범_Glass Flower 04-8_한지에 혼합재료_50×50cm_2004
권기범_Glass Flower 04-13/04-14_한지에 혼합재료_각 130×70cm_2004
권기범_Glass Flower 04-1_한지에 혼합재료_35×250cm_2004
권기범_Glass Flower 04-4_한지에 혼합재료_35×130cm_2004

권기범의 조형적 관심은 자연 속에 살아 있는 어느 특정 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그의 작업의 영감은 고궁의 돌담길에 채워진 꽃 문양에서 비롯된다. 경복궁 자경전 서쪽담, 꽃이 핀 늙은 매화가지가 달에 걸려 있고 새가 달을 맞이하는 모습이 직선과 곡선 그리고 점선과 면으로, 또 여러 색조의 조화를 통해 표현된 문양에서 권기범은 의식화된 '자연'을 보고, 그 안에서 심미적 희열을 맛본다. 이때 꽃담의 이미지는 권기범의 의식에 의해 다시 한번 더 해석됨으로써 '자연'의 수많은 가치 중에서 오직 유미적 관점만으로 걸러진 이미지이다. 예를 들면, 한 여름 한적한 연못 위의 수련은 자연의 법칙 안에서 가치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다. 물위로 고개 내민 꽃봉오리 밑에는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휩쓸고 지나온 물이 있고, 물아래는 얼마나 오래 퇴적되었을지 모르는 더러운 진흙이 있다. 한낮의 뙤약볕을 견디며 서있는 수련은 또 생존경쟁을 위해 투쟁한다. 이처럼 수련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모습 가운데 권기범은 다른 가치들을 거세시키고, 오직 하나 조형적 아름다움에 그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 그만의 조형적 가치를 창조한다.

권기범_Glass Flower 04-10_한지에 혼합재료_50×50cm_2004

그의 작업은 자연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그의 유미적 관점에 따라 인문적 심미의식에 의해 해석된 자연과 그 이성적 이해(문양화)에 기초함으로써 현대예술이 추구하는 예술자체 내의 의미론적 규칙성에 의한 놀이 형식을 지닌다. 권기범의 유미주의 적인 태도로 인해 그 놀이는 결국 선과 면이라는 회화의 가장 원초적인 요소에 의한 화면의 조형성으로 귀결된 다. ● 이 놀이의 법칙은 자연적인 복합형상에서 군살을 빼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그 형상의 본질적 모습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충분의 형상만을 남기고 군더더기를 걸러낸다. 이때 필요충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작가의 마음 속에 그려진 이상적 형상이다. 그러므로 권기범의 그림은 간결하다. 본질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은 화려함에서 간결함으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나아간다.

권기범_Glass Flower 04-9_한지에 혼합재료_50×50cm_2004

권기범의 용어는 그만의 가치를 지닌 신조어들이다. 그가 사용하는 묵(墨)/면(面)과 필 (筆)/선(線)의 개념들은 전통적 의미와는 다른 서구근대의 '이성(理性)'이라는 관점이 삼투 된 '현대적' 개념이다. 그에게서 묵면 또는 색면은 조형적 의미의 공간이며, 필선 또한 조형 적 공간을 구성하는 이차원적 선으로 이해된다. ● 그러므로 그의 작업이 비록 전통적 방법론의 일종인 흡수성이 강한 화선지를 이용하여 적묵법(積墨法), 배채법(背彩法) 등 먹의 다양한 기법들을 운용하고, 불규칙적인 먹의 분포를 이용하여 우연적 효과를 노린 지두화(指頭畵)를 선보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현대미술(comtemporary art)'의 테두리 안에 있다. 권기범의 작업은 이처럼 전통적 형식에 근대적 내용을 채운다. 권기범의 작품 안에서 전통과 현대는 형식과 내용으로 서로 충돌하고 교섭하면서 융화해 간다. ● 이러한 점에서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표현 사이에서 새로운 방법적 모색을 시도하는 권기범의 조형적 제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김백균

Vol.20040529c | 권기범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