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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02_2020_2055
인간은 물질적인, 또는 이념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전쟁이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적 본능의 분출이라 한다면, 신화는 폭력적 본성을 미적으로 상징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문화를 비롯해 문명이 싹트기 시작할 때부터 신화는 그 문명의 바탕을 채우는 믿음으로 자리해 왔다. 신화는 고유한 문화를 향유하는 공동체적인 유대감을 이루고,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각문화는 그 문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일정한 문양이나 색감을 보며 그것이 속해있는 문화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그 결과이다.
멀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가 그러하고, 가까이는 중국이나 인도의 신화가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경우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문화적 콤플렉스의 시작점이 바로 신화의 부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의 신화는 지워지고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고작 알고 있는 것은 단군이 곰의 아들이라거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탄생했다는 정도일 뿐이다. 신화의 부재는 고대문화가 현대문화와 단절되었음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역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고유의 신화가 복구된다면 우리 문화가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최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고구려 벽화에 대한 연구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신화의 많은 부분은 전쟁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쟁이라는 욕망의 근원지는 인간이 속한 집단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집단의 지배자이기도 하다. 지배자의 욕망에 희생되는 수많은 병사들과 그들을 둘러싼 가족은 대의명분에서 밀려난, 잊혀진 존재다.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전쟁이 현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전쟁은 잊혀진다. 그리고 후대의 지배자에 의해 전쟁의 가치가 미화되기도 하고 폄하되기도 한다. 여전히 군중은 잊혀진 존재다. 미화된 전쟁은 신화가 되며, 신화는 곧 역사가 된다. ● 우리가 알고 있는 500년 전, 1000년 전의 역사를 인식하는 길은 단지 누군가의 명을 받은 이의 기록을 통해서 접할 뿐이다. 이 기록이 진실이길 바라는 것은 무모할 수밖에 없다. 500년은 고사하고, 단 100년, 아니 50년 전의 역사도 때론 미화된 신화로 둔갑하곤 한다.
서용선은 우리 역사의 다양한 사건이나 현장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사회에 걸쳐 벌어졌던 여러 싸움이나 전쟁들을 아우르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 테마라는 점에서 낯설기조차 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작가가 일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행하는 미술이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미술이 전쟁을 포함해 역사를 시각화하는 역할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그림이 미화된 승리자를 위한 신화가 아닌, 잊혀진 자를 위한 새로운 신화이고자 한다. ● 일민미술관이 서용선의 『미래의 기억』전을 마련하며, 이 전시가 '이야기를 그린다'는 작가 의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기억을 미래화 시키고 우리의 풍성한 시각문화사를 이루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 김희령
Vol.20040626b | 서용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