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허구

예술의전당 기획 제3회 해외청년작가展   2004_0701 ▶︎ 2004_0711

이정아_situation_디지털 프린트_80×60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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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630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희수_박향숙_이정아_장정연_주리아_최희선_허미회_황은옥

관람시간_11:00am~08:00pm / 매표마감 07:30pm 관람요금_일반 2,000원 / 중고생 이하 1,000원 / 10인 이상 단체 50% 할인

전시설명 전시기간 중 매일_03:00pm_제4전시실

작가와의 대화 2004_0703_토요일_04:00pm_박향숙/이정아/허미회_제4전시실 2004_0707_수요일_04:00pm_주리아/최희선_제4전시실 2004_0710_토요일_04:00pm_장정연/황은옥_제4전시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4전시실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번지) Tel. 02_580_1523

『해외청년작가전』은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각국 현지의 문화와 접목된 한국미술의 새롭고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 젊은 작가들이 각국의 문화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여 표출하는 지를 통해 한국미술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올해로 3회를 맞는 이번 전시에는 프랑스, 스위스, 독일, 미국, 일본 등에서 활동하는 8명의 작가들이 초대된다. 참여작가는 최희선, 허미회, 황인옥(이상 프랑스), 장정연(스위스), 이정아(독일), 김희수, 주리아(이상 미국), 박향숙(일본)이다. ■ 예술의전당

허미회_또 다른 나의 상자_혼합매체_가변크기_2003
박향숙_친구Ⅱ_캔버스에 유채, 파스텔_53×65.1cm_2002

미술작품에서의 진실과 허구 ● "왜 미술작품을 보는가"라는 질문을 혹자로부터 받는다면 어떻게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우리는 평소 작품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작품을 사회 현상이나 관습에 연계시키기도 하고 다른 사물을 연상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러한 점에서 다음과 같은 답을 생각해본다.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을 통해 평소 우리가 가졌던 가치관을 확인하고 또 소홀히 했거나 간과했던 일상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여기에 정서 발달과 상상력을 고양하는 부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이에 대해 논쟁의 여지는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기술 목적상 다른 의견은 제외키로 한다.] 이러한 생각은 작품감상이 작품과 현실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본 글에서는 작품이 현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작품 이미지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일반에게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다고 보고 진실과 허구가 작품상에서 어떤 특성이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혀 작품 감상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장정연_희망의 아아치_캔버스에 유채_200×140cm_2004
주리아_헤드라이트에 붙잡힌 사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7.2×101.6 cm_2003

미술작품은 진실한 것인가 ● "미술작품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미술의 역사를 보면 이 말에 수긍할 수 있다. 작품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표현 형식에서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흐름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술 작품이 현실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화의 자율성을 주창한 모더니즘 미술, 특히 '텅빈 캔버스'를 내세우며 이견을 제시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를 배제한 작품도 바로 재현 미술에 대한 거부와 저항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술사적으로도 극히 짧은 기간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반례는 설득력이 약하다. 여전히 일반인들은 작품 감상의 취미를 재현 미술에서 찾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작가들도 현실에서의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작품에 끌어들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열과 성을 다한다. 따라서 재현 미술이 실제 사물이나 사회적 관습과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음이 인정된다. 이는 관람객이 그림을 볼 때 그림의 원재료인 실제 사물 혹은 그와 유사한 사물을 연상하거나 추측한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작품과 현실과의 관계를 놓고 부지불식간에 불거지는 것이 바로 이미지의 진실성[여기서의 진실성은 실재를 재현하는 관점에서의 진실성을 말하는 것으로 실재와 대립되는 진짜, 가짜 개념이 아니다.]에 대한 문제다. 혹자는 이에 대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해야 하는 대중매체와 달리, 미술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된 구조체이므로 현실세계와는 별개로 보아야 하며 감상자들 역시 이 점에 더 주목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품 자체가 표현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느낌을 전달하는데, 이때 작품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현실과 연계되어 그 진실성 여부에 관심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대상이 동일한 이미지라도 그것이 참이면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 ● 그렇다면 실상 작품 이미지에서 진실함을 느끼는 경우는 언제인가. 작품 감상 시에 어떤 것은 참이고 어떤 것은 거짓이라고 이미지 그 자체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감상자에게 그 판단이 돌아가는데, 이때 일반은 작품 이미지의 진실성 여부를 현실 대상과 작품 속 대상간의 닮음 관계에 역점을 두고 본다. 이는 닮음 관계가 진실성 여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의 사례를 통해 설득력을 갖는다. 어떤 사람의 초상화가 그 사람을 닮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그 초상화가 진실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이처럼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상이 없는 재현 미술을 보기도 한다. 신화ㆍ전설에서 나오는 신과 도깨비, 외뿔의 말 등을 대상으로 한 회화작품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그린 것도 미술작품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결국 재현이라는 것은 실존하는 대상이 없어도 재현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차원에서 재현은 닮음과는 상관없는 개념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재현이 실제대상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두 가지를 구분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대상이 있는 경우는 진실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허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추리해서 이를 구분 지울 수 있을까? ● 만약 우리가 그 이미지에 대한 경험이나 그것에 준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의 진실여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명백하게 입증할 만한 것, 즉 제목과 같이 지표 역할을 하는 것을 통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미적 경험상 일부에 해당되기 때문에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에도 제목과 같은 지표에 의존해야만 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미지는 그에 따른 텍스트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마크 로스킬, 데이비드 캐리어,『시각이미지의 참과 거짓』, 이계숙 역, 눈빛, 1996, pp. 184-186 참조.] 일례로 우리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철수'의 그림은 작가가 날씬하게 표현하든 뚱뚱하게 표현하든 그 제목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희선_사막 또는 설탕_설탕, 형광등, 합판, 설치, 사진_250×300×300cm_2003_부분
황은옥_# 1_비디오_00:01:10_2001

재현 대상에 대한 지향과 믿음 ● 따라서 진실과 허구를 제대로 구분하고 작품을 본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과 허구간의 구별이 작품감상에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음을 통해 이를 생각해 보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화 혹은 전설과 같은 허구의 경우는 모두 진실치 못한 것인데 왜 우리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비실재적인 허구의 대상들이 묘사된 그림을 왜 진지하게 보고 받아들일까? 이에 대해 미국의 철학자 단토(Arthur C. Danto)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도 그 대상에 대해 믿음을 갖고 지향하면 그것으로 그 대상의 존재가 성립될 수 있다"[단토는 재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재현의 내용을 뜻하는 '재현의 내적 의미(an internal sense of representation)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모방을 지시하는 것을 말하는 '재현의 외적 의미(an external sense of representation)'이다." 단토는 따르면, 전자는 '그림'의 개념으로 닮음의 관계가 성립되며 내용에 관한 인식이 요구되는 반면에 후자는 닮음과는 상관이 없는 어떤 것이 어떤 것이라도 재현할 수 있다. Arthur C. Danto,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A Philosophy of Art(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1), p. 17; 오종환, "재현과 허구의 관계에 대한 고찰: 회화적 재현을 중심으로", 미학 22, 1997, p. 130에서 재인용.]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그것이 진실이든 허구이든 그 재현 대상을 지향해서 그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그 대상의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토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허구적인 작품에서 어떤 이유로 정서적, 이성적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시각매체인 사진의 경우는 어떠한가. 회화가 실존하는 것이든 아니든 지간에 대상에, 믿음을 통한, 지향적인 관계를 갖는 반면, 사진은 실제의 대상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인과적 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경아의 어머니를 찍은 '어머니'란 제목의 사진이 있다면 사진에 있는 경아의 어머니는 반드시 존재하거나 존재했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사진을 가장 진실된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 경아의 어머니를 그린 '어머니'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면 경아의 어머니가 존재하든 하지 않든지 간에 전형적인 어머니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결국 사진은 현실을 그 근간으로 하므로 현실이 없으면 사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다. ● 그러나 사진은 현실을 근본으로 하지만 어떤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상 이미지가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대상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만을 기억하는 반면 사진은 사진작가가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한 개념과 해석에 따라, 사물을 작가 임의의 각도와 범위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진가는 사진의 진실성을 이용하여 실제 대상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연출을 하기도 하고 변형, 왜곡시켜 비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경우의 사진은 진실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 따라서 사진은 비록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가 임의의 의미와 해석이 담긴 '다시 만들어진 현실'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색이 주변에 어떤 색이 놓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듯 사진 역시 같은 대상이라도 어떤 작가가 어떤 문화와 가치관에 의거해서 찍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사진은 그림에서의 허구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상의 존재 유무를 떠나 그 대상을 지각하고 표상하는 차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미술작품에서 보여지는 그 시각 이미지에 대해 단토가 말한 재현 대상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통해 올바른 작품 감상이 가능해 진다.

김희수_작업실 전경_2004

상상과 허구 ● 우리는 작품 감상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수동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비사실적인 재현미술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상상은 규범적이고 직관적이어서 닮음 관계를 통해 발휘된다. 상상하기를 허용하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산이 있는 작품을 보면 산을 상상하지 바다를 상상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상은 앞서 언급된 믿음과 연계되어 확장된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을 상상할 때 그 대상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그 믿음에서 야기되는 추리로 최초 상상 이상의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서민석, "조각작품 감상에서의 본질적 요건들", 예술의전당 학예논문집, 예술의전당, 2003, pp, 147-149. 앞서 단토의 말을 빌어 그것이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그 대상에 대해 믿음을 가지면 그 대상이 성립될 수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어찌 보면 상상을 통해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그 작품을 해석해서 받아들인 감상자만의 '내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 작품을 보고 상상한다는 것은 일종의 또 다른 '허구화'인 것이다. 또한 허구는 '새로움(novelty)'을 창출한다. 이는 허구가 모순과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잘 짜여진 새로운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허구는 진실에서 오는 '생생함'과 상상에서 오는 '새로움'을 갖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허구는 예술창작과 감상에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이다. ●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미술작품에서의 진실과 허구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표리와도 같이 공존하면서 상보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성은 관객이 살아있는 현실의 가치와 철학이 숨쉬는 작품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허구성은 모순적이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현실에 동화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또한 작품에서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울 뿐만 아니라 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실제적으로 재현 대상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대상 지향을 통해 올바른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때 진실과 허구는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여 양자의 경계를 허무는, 또 다른 진실 혹은 허구의 새로움을 야기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글 서두에서 혹자가 우리에게 질문했던 "왜 미술작품을 보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떤가. ■ 서민석

참고문헌 ● 마크 로스킬, 데이비드 캐리어.『시각 이미지의 참과 거짓』. 이계숙 역. 눈빛, 1996. / 넬슨 굿맨. 『예술의 언어들』. 김혜숙ㆍ김혜련 역. 이화여대출판부, 2002. / R. Scruton, "Photography and Representation", Arguing about Art, eds. Alex Neil and Aaron Ridley. New York: McGraw-Hill, Inc, 1995. / Julian Hochberg, "The representation of things and people." in Art, Perception, and Reality. Baltimore and London: the Johns Hopkins Univ, 1972. / 오종환, "재현과 허구의 관계에 대한 고찰: 회화적 재현을 중심으로", 미학 22, 1997, / 서민석, "조각작품 감상에서의 본질적 요건들", 예술의전당 학예논문집, 예술의전당, 2003,

Vol.20040702a | 진실과 허구_제3회 해외청년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