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術의 發見

임재광 개인展   2004_0630 ▶︎ 2004_0706

임재광_장루이의 사진첩-母子사진_디지탈 프린트_2004

초대일시_2004_0630_수요일_06:00pm

갤러리 우림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27번지 2층 Tel. 02_733_3738

'창조'는 신의 영역이라서 인간의 일이 아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발견' 하여 '조작' 할 뿐이다. ● 아직은 쌀쌀하지만 봄기운이 완연한 이른 봄날 막내 꼬마와 함께 산에 올랐다. 산중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인간의 흔적이 적어지고 동물의 자취가 늘어난다. 숲 속 계곡언저리의 큰 바위에 않아 땀을 들이다가 토끼똥을 보았다. 넓적한 바위 위에는 낙엽이 수북하고 낙엽을 헤치면 지난해 떨어진 나무열매들이 가득 깔려있다. 그 열매들을 토끼가 먹고 흔적을 남긴 것이다. 나무열매를 줍다가 토끼똥도 주어 모았다. 동글동글하고 예쁜 똥들이었다. ● 북경을 여행하던 중에 주말 골동품시장에서 허름한 사진첩을 한 권 샀다. 자그마한 크기의 오래된 흑백사진들이 빼곡이 정리되어있다. 이름 모를 어느 평범한 중국인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간직하고픈 순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한 리얼 다큐멘터리이다. 미지의 세계에서 펼쳐졌을 한 인생의 파노라마를 상상하였다. ● 요즈음에 새로 나는 길은 산 등선을 싹둑 싹둑 자르며 산에서 산으로 등선을 타고 날아간다. 뉴욕에 있는 임충섭 선생은 "무자비한 직선행위"로 표현하며 고향 가는 길이 가슴 아팠다고 했다. 싹둑 자른 비탈면에 심어놓은 정체불명의 외국산 식물이 무성한 여름을 지나고 가을 내내 건조되어 겨울에는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늘어져있다. 그 풀들을 베어 대지의 뒷머리를 만들었다. ● 산책길에서 숲 속에 버려진 짐승의 머리뼈를 발견하였다. 돼지머리인지 개머리인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이 머리뼈는 내 작업실에서 무수히 많은 이미지를 생산해 내었다. 화선지로 형상을 떠내어 입체로 만들었고 탁본하듯 먹물로 찍어내었으며 연필로 문질러 프로타쥬도 하였다.

임재광_장루이의 사진첩-기념사진_디지탈 프린트_2004
임재광_장루이의 사진첩_실물_2004

화두(話頭)_ 나에게 미술은 인생의 화두(話頭)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의 끈을 놓지 않고 집요하게 답을 구하는 일이다. ● 화선지로 액자의 틀을 떠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다. 처음에는 탁본하는 방법을 배워 예산, 서산 인근지역에 산재되어있는 추사의 글씨를 떠냈다. 그러나 탁본한 글씨 자체를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글씨 자체를 보고 즐기기 위해 탁본 그대로 보관하겠지만 나는 자신의 행위를 덧붙이거나 흔적을 남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이는 미술가의 본능적 기질에 의한 행위라고 생각되며 이후 나의 작업 방향을 제시해 준 단초의 하나가 되었다. ● 탁본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질 무렵 화선지로 사물의 이미지와 형상을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화려한 문양의 액자는 좋은 대상이었다. 이 기법은 트롱프뢰유와 비슷한 눈속임의 일종이었다. 진짜 액자와 똑같이 채색을 하여 보는 사람이 가짜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였다. 관객이 속아넘어가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 미국 유학 동안에도 이러한 한지 캐스팅 작업은 계속되었다. 이 기간동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토론과 비평을 통해 논리와 형식을 다듬고 단련하였다. 물성과 이미지에 대한 개인적 취향을 확인하여 내면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뉴욕에서의 작업에서도 액자는 역시 중요한 모티브의 하나였으나 차츰 범위를 넓혀 다양한 사물들을 다루었다. 특히 나무토막을 떠내는 작업은 한동안 나를 매료시켰다. 나무의 결이 하얗게 살아 나오는 이 작업을 즐기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문하였다. ●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 것인가?" / "내가 하고있는 이 일을 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러다 결국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이어졌다. ● "미술이란 무엇인가?"_이 물음은 나에게 불가의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參究)하는 화두(話頭)와 같은 것이다. 나의 미술은 이렇게 묻고 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이건가 하면 아닌 것 같고, 저것인가 해서 보면 그 또한 아닌 것 같다.

임재광_발견-머리뼈_실물_2004

이미지_ 현대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다. 인공에 의한 시각적 이미지가 거의 없던 오랜 옛날이나 근대 이전에는 미술이 시각적 이미지의 유력한 생산 주체로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영상, 디지털, 그 외에도 엄청난 양의 시각 이미지들이 차고 넘치는 현대에 이르러 미술은 이미지의 생산자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상실한지 오래다. ● 발터 벤야민은 이미 1937년에 발간된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이미 예술작품의 전통적인 미덕인 오리지날리티가 약화될 것이며 아우라의 상실이 뒤따를 것이라 예언하였다. 미술작품의 절대적 아우라가 약화됨에 따라 미술가들도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해 왔다. ● 이미지란 본질적으로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이 실제 사물이거나 본질은 아니다. 이미지는 또한 미술가의 손을 거치면서 조작되며 새롭게 변형된다. 현대의 미술가들은 이미지의 조작자들이다. ● 내 작업에서 이미지는 가장 중요한 표현요소이며 개인적인 취향이 강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 눈길을 잡아끄는 독특한 시각이미지를 발견하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나는 이미지의 수집가이며 조작자이며 또한 사냥꾼이다. ● 미술의 전통적인 방법인 「그리고」 「만드는」 행위가 아닌, 「채취하고」 「가공하는」 일이 나의 미술적 방법론이 되었다. 화선지로 떠내는 이미지는 항상 사물의 바깥 쪽 표면뿐이기 때문에 항상 미진함을 느꼈다. 프로타쥬 기법으로 찍어내는 작품도 역시 표면의 이미지 채취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은 항상 속이 비어있다. 이와는 반대로 안쪽에 있는 무엇인가를 찍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레진(resin)을 이용해 땅속을 떠내는 것이다. 식물의 잔뿌리가 뒤엉켜있는 숲이나 들판에서 땅에 구멍을 파거나 작은 동물이 만들어 놓은 굴에 레진을 채워 넣고 응고된 형상을 캐내는 작업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응고된 흙덩어리는 땅 속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채집된 이미지인 것이다.

임재광_발견-아기천사_석고액자_2004
임재광_발견-토끼똥_실물_2004

메시지_ 내 작업에서의 메시지는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지가 우선이며 메시지는 그 안에 내재되어 베일에 싸여 있다. 극도로 발언을 억제한다.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보는 사람의 느낌을 존중한다. 그러고 보면 작업의 완성은 관자의 감상에까지 이르러야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내 작업의 주제는 사물과 나와의 개인적인 조우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의 단상이다. 거대한 담론이나 추상적인 주제가 아니다.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보다는 가볍고 재미있는 발상을 즐긴다. ● 자연_ 80년대 초반 이후 공주의 「야투」 그룹은 야외 자연현장에서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의 형태를 실험하고 있었다. 「자연미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새로운 미술을 시도하던 그 단체는 초기의 사계절 연구회를 거쳐 90년대에는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이라는 대규모 행사를 계속해서 개최하였다. 온 몸을 던져 새로운 실험에 투신하는 그들 회원들과는 달리 나는 항상 주변부에 머물면서 그들과 어울렸으며 그들이 추진하는 행사에 참여하였다. 나는 산골 마을 출신이기 때문에 오히려 도회적 삶과 문명을 동경하였고 자연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감정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적극적인 자연미술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자연은 항상 내 가까이 있었고 따라서 늘 미술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야외 자연 현장에서의 작업도 빼 놓을 수 없는 나의 미술 행위의 하나다. 이 때의 작업도 이미지를 전도하여 메시지가 발생하도록 하는 나의 개인적 방법론을 유지하였다.

임재광_대지의 머리_들풀_2004

발견_ 화선지로 사물의 표면을 떠내던 때부터 나는 찍어내기에 적합한 이미지를 찾아다녔다. 뉴욕시절에는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 차이나타운 거리나 주말의 벼룩시장 또는 하드웨어 스토어를 돌아다녔으나 최근에는 산과 들, 바다로 나가 자연 속에서 이미지를 찾아다닌다. 이 단계의 작업은 '발견"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발견하는 일은 일상에서 늘 이루어지는 일이다. ● 채취_ 다음에는 찾아낸 이미지를 '채취'하는 과정이다. 탁본이나 프로타주 그리고 한지 캐스팅, 사진 이미지를 전사하는 기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 채취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부분에서 처음으로 작가의 수공에 의한 개입이 이루어지며 제작 의도가 드러나게 된다. 작가는 손에 익은 익숙한 방법으로 대상으로부터 이미지를 채취한다. 그러나 채취하는 일련의 과정 안에서 변형과 왜곡이 이루어지고 가공된 창조적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 설치_ 세 번째는 '설치'의 과정이다. 전시장에 어떻게 설치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작가의 의도가 크게 부각된다. 같은 작품을 매달기도 하고 쌓아놓기도 하며 벽에 핀으로 고정하기도 한다. 이때의 행위는 공간에 대한 적용과 반응을 의미한다. 일품의 예술작품으로 고정되지 않고 유동성을 갖고 적응하는 것이 내 작품의 특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작품은 시간의 기록이고 공간에 대한 반응이다. ● 최근에는 '발견'이 내 작업의 핵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발견'이 곧 '작업'이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발견하면 채취와 설치는 아무래도 좋다. 그냥 옮겨 놓아도 좋고 전시에 적합하게 가공하여도 좋다. 미술가로서 나는 발견자이며 또한 이미지의 전달자이자 매개자에 만족한다. 모든 메시지는 이미지에서 나온다. 나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말할 수도 있고 내 말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할 수도 있다. ● 지금 나에게 미술은 발견이다. ■ 임재광

Vol.20040703b | 임재광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