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삶 이야기

박장근 조각展   2004_0707 ▶︎ 2004_0713

박장근_겨울나기_합성수지_가변크기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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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707_수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신이 죽어버린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을 떠나 신대륙을 향해 다시 돛을 올렸지만 높은 파도의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이내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바다 표면에 좌표를 입력하고, 해류의 흐름을 읽어 내더니, 똑 같이 H2O로 구성된 물을 대서양, 태평양 등의 이름을 내걸고 경계선을 그어 버렸다.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가고자 쌓아 올린 정보는 이제 거대한 그물 망이 되어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도 자로 잰 듯한 선 긋기와 구획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정신과 몸을 구분하고, 계층과 규범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욱 높고 짙은 경계와 벽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제어하게 된 셈이다. 하나의 경계를 허물면 또 다른 경계가 생겨나게 하는 이들 경계와 벽은 그 안에 내재한 태생적 배타성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육중한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어쩌면 끊임없는 경계 넘기와 벽 허물기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박장근_겨울나기_합성수지_300×230×130cm_2004_부분

박장근의 조각은 이처럼 현대 사회 곳곳에 걸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과 경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몸은 그들 앞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경계와 벽을 가시화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경계 앞에서 자유롭고, 물질 영역을 초월하는 신의 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의 권능을 극복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인간의 신체는 초월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고, 20세기 들어 프로이드는 그것을 억압과 거부의 존재로, 메를르 퐁트는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신체와 정신, 신체와 자아 등 몸과 여타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고, 여기 박장근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내면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조형언어로 인간의 몸을 다룬다. 그래서 작가에게 있어 몸은 초월의 대상도 억압의 대상도 아닌 인간의 정신을 보여주는 창이며, 외부세계의 현상을 피부 깊숙이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즉 그에게 있어 몸은 단순한 오브제의 개념이 아니다. 메를르 퐁트의 그것처럼 박장근이 다루고 있는 인간의 신체는 한 시대를 지독하게 경험하고 얻어진 수많은 정보와 감정들이 한데 모인 의미의 덩어리이다. 삶과 죽음의 틀에 갇힌 유한한 존재이기에 인간이 보여주는 치열함과 꿈틀거림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며, 한 시대를 관통하며 의미의 생산자로서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박장근의 조각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그렇기에 더욱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오늘을 사는 인간들의 모습과 그 삶을 결정 지우는 사회적 경계가 보인다.

박장근_만파식적_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철_196×200×140cm_2004_부분
박장근_만파식적_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철_196×200×140cm_2004_부분

박장근의 조각은 표현적인 동시에 절제가 보이고, 함축적인 가운데 명확한 주제의식을 담아 낸다. 이는 그가 인간의 몸을 조각함에 있어 스케치적 회화성을 과감하게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숨어 있는 뼈대를 항상 염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팔, 다리, 머리, 몸통.어디 하나를 떼어 내어 본다 하더라도 각각의 신체 부분들은 똑 같은 느낌과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비록 뼈대를 감싸고 있는 근육조직과 피부조직은 하나하나 다르다 할 지라도 그 안에서 지탱하고 있는 뼈대의 견고함이 있기에 그 생명력이 결코 한시적인 것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치열한 삶의 현장에 내동댕이쳐진다 할지라도 그의 조각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당당함과 견고함은 그의 고집스런 행보와도 연결되어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 놓는다. ● 높이 3m에 이르는 설치작품 「겨울나기」는 실제 지난 겨울 치열하고 힘겨웠던 작가의 삶과 냉혹할 만큼 차가웠던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외다리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서 있는 모습은 뒤꿈치를 올리고 서 있는 자세로 인해 더욱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4개의 서로 다른 길 위에 서있는 3명의 인물들은 서로 마주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군집을 이루고 있으나 함께 하지 못하는 군상들의 모습이 현대인의 삶을 닮아 있다.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길은 혜성의 꼬리처럼 산개하여 역사 속으로 그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리고 그 위에 서있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 체 깊은 동면 상태에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의 겨울나기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다만 이 보이지 않는 경계가 주는 위압감이 인물들의 크기가 과장된 초인의 몸짓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박장근_Limit_2004_부분
박장근_Limit_2004

「Limit」는 경계가 만들어 낸 한계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출근 혹은 퇴근 시간으로 여겨지는 도로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만을 위해 습관적으로 걷고 뛰고 혹은 멍청히 서서 빈 하늘을 바라 볼 뿐이다. 재미있게도 엄마 등위에 업힌 아이와 그 엄마의 치마 끝을 잡고 있는 소년만이 관객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다. 입술 왼쪽을 살짝 올리며 비웃었을 관객이라면 이 꼬마녀석의 손가락질에 곧 입술을 다물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할 것이다. 그리곤 역시 자기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보이지 않던 경계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일정한 높이, 즉 성인이란 사회적 정의에 도달한 인물들의 머리부분을 절단해 버린 위트에 있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반복적인 행동패턴을 보이고 있는 현대인들이여! 더 늦기 전에 그 꼬마녀석의 호기심 찬 손가락질이 향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길 권한다.

박장근_주어진 공간 속에서의 자유_합성수지, 철_40×120×120cm_2004_부분
박장근_주어진 공간 속에서의 자유_합성수지, 철, 메뉴큐어_40×120×120cm_2004

박장근의 위트는 「주어진 공간 속에서의 자유」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넓은 원형 철판 위 한쪽에 다시 작은 원형을 이루며 흥청망청 춤을 추고 있는 이들은 분명 이 시대의 자유정신 청년들이다. 화려한 의상 자유로운 몸짓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자유란 울타리를 자랑스럽게 탐닉하지만 정작 자유라는 단어가 만들어 놓은 달콤한 덫에 갇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메뉴큐어를 이용해 화려하게 채색된 인물들의 춤이 결코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메뉴큐어의 얇은 천박함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용기를 갖지 못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더욱 안타까운 오늘날 청년들의 실상이다.

박장근_해바라기_합성수지, 철_205×84×40cm_2004_부분

처음 흙을 만지고 형상을 빚었을 때부터 줄곧 이어져온 사실적인 인물표현에 대한 고민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상과 현실, 자아와 타인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는 사회상을 반영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을 해학과 위트로 재 가공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보이지 않던 괴리와 경계의 근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근원이 바로 작품 속 꼬마녀석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의 다음 행보가 어떤 냉소를 던질지 기대된다. ■ 이대형

Vol.20040710a | 박장근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