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空+間)

서울시립미술관 기획展   2004_0706 ▶︎ 2004_0808 / 월요일 휴관

이순종_비무장지대_인조 머리카락과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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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김순희_박성원_서정국_신옥주_이순종_이영하_정승운_지니서

담당 큐레이터_이은주

관람시간 / 10:30am~09:00pm / 주말,공휴일_10:3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본관 1층 Tel. 02_2124_8800

Ⅰ. 실질적인 것이든 허구적인 것이든, 그동안 '공간'이란 것은 어떤 사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적인 요인으로, 흔히 어떤 물질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비물질적 세계를 일컬어왔다. ● 15C 이후 미술에 원근법이 도입되면서 공간이란 개념은 미술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회화나 조각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인해 공간에 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개념은 그것이 평면이든 입체든 작품을 위한 정확한 space를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서 사용된 것으로, 화가든 조각가든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과학적 지식까지 겸비한 천재적 예술가일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 공간이란 것이 작품의 한 구성 요소로써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된 것은, 현대미술이 시작된 이후부터가 될 것이다. 특히, 미니멀이나 개념, 대지, 환경 등의 미술에서 '공간'이란 site specific 개념이 중요성을 띠게 되었고, 특정 장소를 나타내는 '여기', '저기', '거기' 등의 지시적 언어는 특정 장소에 대한 중요성과 더불어 그 장소만이 가지는 독창적인 예술을 요구하게 되었다. ● 이러한 장소성, 공간에 대한 문제는 70년대 이후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현대미술과 장소성의 문제, 미술의 범위, 상호 관계성 등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서 불러 일으켰다. 더불어 물, 불, 대기, space 등 비물질적 요소들이 작품 속에 개입, 작용하면서 미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어 왔다. 이제 이와 같은 비물질적 요소들은 수동적으로 작품을 좇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작품 안으로 파고 들어가 일루전에 영향을 미치고, 작품을 새롭게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신옥주_지혜의 문-손을 잡다_스테인리스 스틸_지름 900cm_2004_부분
정승운_무제_나무_434×1000cm_2004

Ⅱ. 이번 전시의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는 『공간(空+間)』은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작품을 완성해 가는, 물질과 비물질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나는 적극적인 개념들이다. Space만으로는 작품이 될 수 없고, 또한 만들어진 물질만으로는 불충분한, 즉 양자간에 물고 물리는 상호 보완작용을 통해 작품으로서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 공(空)은 그 자체로 성립하고 실재하는 실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뜻하며, 간(間)은 한 곳에서 다른 한 곳까지 떨어진 공간 혹은 어떤 것과 다른 것과의 벌어진 틈을 의미한다. ● 이 각각의 음절이 합쳐진 개념, 공간(空間, space)은 물체가 점유하지 않은 빈 곳 또는 그것을 추상화한 의미의 개념을 나타내며, 현대미술이 등장한 이래 작품을 완성하는 하나의 중요 요소로 그 의미를 더한다. ● 특히, 2차원적 회화에서 평면적 성격을 띠었던 드로잉의 요소들이 점차 3차원의 설치물로 공간을 점유하면서 공간을 포함한 비물질적 요인들이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작품 자체로서보다는 그 주변적인 요인들에 의해 미술로 완성되는 이른바, 설치작품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 드로잉의 기본 요소인 선들이 3차원의 공간 속에서 그려지며 사물을 형성해 가는 이 작품들은, 기존 평면에서의 drawing을 장(場, field)에서의 drawing으로 끌어냄으로써, 선들이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그 주변의 비물질적 요인들의 상호 소통관계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개념을 제시한다. ● 여기에서의 공간은 물질과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소통함으로써 작품으로 완성되어가는 비물질적 필수 요소이다. 이번 전시는 3차원의 공간 안에서 공간과의 소통을 필요로 하는 작품과 그 작품을 이루고 있는 비물질적 요소에 중점을 둔다.

이영하_아담의 정원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4
서정국_생명의 줄기_스테인리스 스틸_149×125×120cm_2000

Ⅲ. 김순희의 작업은 기본 단위의 반복 재생산을 통해 안과 밖의 소통이 단절된 사물들을 소재로 소통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다. 벽돌로 쌓은 벽면이나 돌무덤의 피라미드, 우주 등을 기본 도형의 형태로 환원하여 마치 아메바가 자신의 몸을 분리하듯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해 낸다. 얼기설기 얽혀진 철사 그물망 벽돌로 '보이지 않는 벽면'을 구축하여 외부의 공기를 흡입하고, 내적 에너지로 축적하여 그 에너지를 다시 밖으로 내뿜으면서 양측 공간의 소통을 시도한다. 각 그물망 벽돌 속의 공간들은 서로 맞닿아 있지만 소통할 수 없는 닫혀진 공간을 열려진 공간으로 재구성하며, 차단된 물리적 벽면에 안과 밖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에게 있어 물질과 물질 사이의 공간이란 안과 밖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과 일루전적 역할 등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중적 공간이다. ● 블로잉(blowing) 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각각의 유리 라인들을 모아 커다란 조형적 설치물로 완성하는 박성원의 유리작업은 투명성과 아름답고 신비로움, 유리만이 가지는 환상적 색채 등을 담아내어 전시공간을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공간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유리가 가지는 물질적 특성을 조형으로 끌어내 공간설치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면서도 유리라는 재료가 지닌 감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생명체의 본원적 움직임을 나타내는 꿈틀거리는 유리의 형상은 살아 숨쉬는 에너지와 환희에 찬 색채를 머금고 있다. 이 유리 라인들이 결집된 공간 안에서 각각의 생명체들은 서로 유연하게 반응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원초적 생명력은 3차원의 공간에서 그 의미와 열정을 증폭시키고 있다. 꿈틀거리며 생장해 가는 유리 라인들은 생명력을 부여받은 식물체와 같이 공간 속을 회유하고 공간을 점유하며, 욕망을 지닌 환희에 찬 공간으로 바꿔버린다. ● 대나무나 갈대 등 식물의 줄기를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철로 제작하여 새로운 공간설치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서정국은 화선지 위에 붓으로 그은 선들을 3차원이라는 공간으로 끌어낸 새로운 드로잉을 보여준다. 희고 고요한 벽면을 배경으로 죽죽 뻗은 대나무들은 마치 흰 종이 위에 먹으로 그려진 이미지들을 연상시킨다. 종이 위에 그어댄 먹의 이미지가 흰 여백 안에서 작용하는 평면에서의 드로잉을 3차원의 공간에서 공간과 사물의 소통구조로 이끌어내고 있다. ●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철과 같은 재료들은 화선지 위에 먹으로 그은 정적 이미지보다 더 냉담하고 죽은 듯 감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서정국의 꿈틀거리는 생명의 줄기들은 재료의 죽은 감정을 따뜻하게 살려내고 있으며, 무(無)의 공간 안에서 때로는 죽죽 뻗어나가고, 때로는 부드럽게 작용하며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디마디 대나무의 생장하는 줄기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갈대들은 이 3차원의 공간 안에서 자생성을 가지는 자연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 신옥주는 철판이라는 견고하고 차가운 재료들에 물리적 힘을 가함으로써 철이 가지는 이면의 부드러운 성질을 살려내고 있다. ● 철을 구부리거나 용접해 만드는 「지혜의 문」은 감정이 죽어버린 철판에 선을 그어 잘라내고 열을 가하여 잡아늘이면서 부드러운 긴장감과 자연의 생명력을 지닌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게 한다. 확장되어가며 공간 전체를 점유해 가는 그의 작품에 있어 중요한 것은 안과 밖의 소통을 통해 획득되는 생명력과 그 생명체가 점차 생장해 가면서 점유해 가는 열린 공간으로의 지향이다. ● 그에게 공간이란 것은 자연의 생명이 자라나기 위한 영역과 같은 것으로, 자연의 유기체들이 품고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간이다. 생명력이 없어 보이는 철판들은 작가의 손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되고, 하나하나의 생명들은 제한된 틀을 빠져나와 새로운 공간과 소통한다. 또한, 생명이 빠져나간 빈 공간은 새롭게 자연의 생명을 잉태하면서 자연과 소통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새 기능을 부여받는다. ● 이순종이 3차원의 공간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드로잉은 인조 머리카락 등의 재료를 이용해 사물의 모습을 형상화하거나 혹은 명쾌한 개념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2차원의 공간을 빠져나와 흰 공간 안에서 그려지고 있는 작품 「비무장지대」는 깨끗한 화선지 위에 먹으로 드로잉된 흑백의 이미지를 그대로 3차원의 공간에 담아내고 있다. 인조 머리카락으로 그려낸 사각기둥, 산, 할머니의 방 등의 이미지는 머리카락이라는 섬세한 재료가 만들어내는 선적 구성과 여성적 이미지들이 잘 결합되어 있다. 할머니라는 세대가 늘 가슴 속에 지녀온 여성의 정체성을 머리카락이라는 긴장된 선으로 보여주지만, 할머니란 존재는 작가에게 유일한 비무장지대가 된다. 이 할머니의 방안에서 작가는 제한된 공간 안에 흔적을 남기는 방법에서 벗어나 경계 없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유롭게 그어지는 선들로 이미지를 남겼다 이내 지워버린다. 그럼으로써, 선과 선이 만들어내는 사물의 이미지는 그 사이의 여백까지 사물을 형성하는 실(實)의 공간으로 전환되지만, 사물이 사라짐과 동시에 이내 허(虛)의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 철판과 철사 등으로 만든 군집 인물상을 통해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과 작품과의 상호 소통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영하의 「Adam's Garden」은 인간(자아)과 인간(타자)간의, 인간의 내적 감수성과 외적 환경들 간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외적인 모든 형태들이 생략된 사람의 형상 속에는 많은 축약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군집된 인간상들은 바로 현실의 우리 모습이며, 철사라는 라인만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자신의 내면까지 드러내고 서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의 소통을 시도하며, 자신과 타자, 그리고 놓여진 작품과 관람객간의 소통을 한꺼번에 담아내고 있다. 작품 사이로 뚫려진 공간은 놓여진 인물들 간의, 또는 놓여진 인물들과 그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관람객들 사이의 소통을 시도하는 열려진 공간이다. ● 조각된 글자와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간결하고 직설적인 개념을 전달하고 있는 정승운의 공간설치 작업은 이미지를 통해 개념을 이끌어내는 여타 작품들과는 반대적 접근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벽과 벽을 연결하는 정승운의 벽면에 쓰여 있는 글자들은 아주 명료한 '집', '숲'이란 단어들이다. 글자 형태 같기도 하고 기호적 이미지와도 같은 이 글자들은 반복적 형태를 만들면서 벽면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 평면화된 입체 조형물을 통해 보여지는 글자 이미지들은 자연스럽게 사물의 심플한 이미지를 그려내며 벽을 정신적(사유적) 측면과의 상호소통의 장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각 단어 사이에 뚫려있는 허(虛)의 공간들은 만들어진 글자들을 통한 이미지 생산의 장으로 형성되고, 그 허(虛 )와 실(實) 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벽면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를 통한 사유의 공간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 종이 위에 그려진 얇은 층들을 오려내어 공간에 설치함으로써 각각의 면이 가지는 구조적 이미지들과 함께 겹겹이 쌓인 층위의 합이 보여주는 또 다른 이미지는 그간 지니서의 주된 작업들이었다. ●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구성과 물리적 성격에 가장 적합한 구조물을 만들고, 각 벽면에는 그와 유기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드로잉을 마치 벽화처럼 얹어 놓았다. 벽면에 그려진 선들은 부드럽게 선과 선 사이를 넘나들며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공간에 설치된 종이 작업은 각각의 종이에 그려진 건축적 요소들이 그 너머에 보이는 또 다른 종이와 겹쳐지면서 만들어내는, 교집합같이 형성되는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공간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 생명체와도 같은 모양의 벽면 드로잉과 건축적 요소를 담고 있는 종이드로잉 작품은 서로 이원화되어 있으면서도 색채를 통한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심리적 공간을 형성한다.

박성원_·_성형유리_150×60×60cm_2004
김순희_벽_철망_423×927×11cm / 소통_철망_320×320×320cm×2_2004
지니서_BLUE CROSSING_벽화와 혼합재료_각 203×130, 430×165, 430×212cm_2004

Ⅳ. 이 여덟 명의 참여 작가는 기존의 공간이 보여온 단순한 비물질로서의 공간개념과는 다른 해석을 이끌어내고 있다. 2차원이나 3차원의 작품에서 보여졌던 단순한 기능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공간 속에 이미지를 만들고 내면과 혹은 타자와의 소통을 시도함으로써 작품을 통해 공간을 해석하는, 물질을 통한 비물질의 재해석된 공간이다. ● 작가들은 각자의 공간 속에서 자신의 도구와 방법을 가지고 공간을 해석하며, 그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낸다. 개념을 통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시간(삶)의 깊이 속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공간을 보여주거나, 또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혹은 타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거나, 사물의 근원적인 힘과의 소통을 시도하기도 한다. ● 또는, 낯선 재료를 통해 평면 속의 이미지들을 평면 밖으로 끌어내 생명력이 부여된 새로운 공간으로 재구성하기도 하고, 생명력이 결여된 차가운 성질의 재료들이 공간과의 소통을 통해 따뜻한 생명력의 장소로 그 기능을 발휘하게 하기도 한다. ● 이들의 작품들은 모두 비물질적 요인들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면서 그 깊이를 더해주는 작품들로, 물질 사이로 보이는 허(虛)적 공간은 물질과의 상호 소통을 통한 심리적 공간을 형성하며 점차 실(實)적 공간으로 채워진다. ● 이번 전시는 공간(空+間)이 오랫동안 우리의 인식 속에 잔재해 온 단순한 공간적 의미가 아닌, 작품을 이루는 선과 선 사이의 여백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다중적 공간이라는 점과 현대미술의 구성에 있어 공간(空+間)이 담아내고 있는 작품의 중요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 이은주

Vol.20040711c | 공간(空+間)展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