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땅 프로젝트

백기영 개인展   2004_0713 ▶︎ 2004_0723

백기영_도상에서_도로를 달리는 영상과 대동여지도를 같이 배치한 DVD 영상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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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713_화요일_05:00pm

백기영 홈페이지 kiyoungpeik.co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

진흥아트홀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04-8번지 진흥빌딩 1층 Tel. 02_2230_5170

땅으로, 흙으로, 호흡으로, 생명으로... ● 백기영의 「생명의 땅」 프로젝트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새롭게 바라보는 작업이다. 대동여지도가 제시하는 한국 땅에 대한 지리적 기록을 내용적 계기로 삼아 작가 스스로 우리나라 전 국토를 여행하면서 기록과 채취물의 경험을 담아내는 일종의 '예술여행'프로젝트인 셈이다. 작가는 김정호가 가졌을 지리적 정보에 대한 열정과 땅에 대한 호기심을 오늘의 시점에서 추적해 간다. 혹은 김정호가 살다간 조선 후기 이후 우리 역사에 얽히고 설킨 정치적 사건과 근대화, 산업화, 그리고 세계화 과정 속에서 변형되어 가는 땅의 얼굴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작가는 대동여지도가 얼마나 아름답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지를 감탄한 바 있다고 토로한다. 오늘날의 행정지도와 도로표시지도에 비하면, 대동여지도는 60% 이상이 자연지명이어서 훨씬 자연에 가까운 지도라고 보는 관점에서 분명 대동여지도를 통해 땅을 회복하고, 생명의 원천을 기리려는 의지가 읽힌다는 것이다.

백기영_생명의 땅 프로젝트_식물작업 전국을 여행하면서 가져온 흙에 물만 주어 기른 화분_서로 다른 크기, 모두 17개_2004

작업은 1년 동안 하게 된 여행 중에 우연히, 혹은 계획을 가지고 실행된 '과정'의 결과로 드러났다. 여행하면서 작가가 흙을 떠 와 화분에 담고, 이에 물만 주어 겨울을 나게 하였다. 화분에서는 작은 잡초들이 별다른 보살핌도 주지 않았는데 이름 없이 저절로 피어올랐다. 작가는 이 흙과 풀이 서로를 살리는 과정을 시간을 두고 촬영하였다. 모두 17개의 사진으로 완성된 장면들은, 물만 준 흙에서 서서히 풀이 나고 자라는 과정의 몇몇을 모아낸 것이다. 또한 남도까지의 여행과정에서 땅에 가까운 낮은 높이로 찍은 사진과 대동여지도를 함께 배치하기도 한다. 또 몇몇 특정 사이트를 놓고 땅의 기운과 호흡, 맥박을 기록하듯 동영상으로 잡아낸 작품도 있다. 석굴암 가는 길에서도 역시 땅에 가까운 낮은 높이로 앵글을 대어 숲 길 위로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를 따라 촬영한 동영상 작업이나, 전망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하는 위치에서 촬영한 동영상,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촬영한 작업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3 채널 비디오로 설치되는 작업은 시간차와 공간차를 두고 바다와 풍경을 바라보게 하는 장치로 제시된다.

백기영_일몰경_대부도 들어가는 시화 방파제에서 제작한 3채널 DVD영상설치_00:01:00_2004

백기영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함께 배치한 것을 보면 재미있는 대비가 보인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거시적 시각이지만, 백기영의 시각은 미시적이다. 땅을 바라볼 때 시선의 높이와 거리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 앵글의 각도가 대동여지도의 눈이라면, 클로즈 업의 밀착 방식이 백기영의 눈이다. 또한 전체를 개념화한 것이 대동여지도의 언어이고, 부분을 구체화한 것이 백기영의 언어이다. 대동여지도는 전체를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아도 파악하게 만드는 개념적 지도인 반면, 백기영이 흙을 가까이 찍은 장면은 물질적 촉감을 체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땅이라는 것이 대동여지도의 공간이고, 흙이 백기영의 공간이다. 김정호가 땅을 직접 손으로 그려내어 인식론적 공간 개념을 지표화하였다면, 백기영은 흙의 촉감과 호흡을 기계적 재현력에 담아내어 공간을 현대화하였다. 그러나 거시적 시각이 미시적 시각과 충돌하지 않는 것이고, 전체와 부분이 서로를 죽이는 일이 아닌 것처럼, 이 두 사람의 대비되는 접근도 차라리 상생의 원리로, 변증법적 원리가 주는 합(合)의 힘으로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백기영_개_바다에 던져진 PT병을 물어오는 개를 보여주는 3채널 DVD영상_2004

이처럼 여행하며 흙을 모아 흙의 호흡과 생명의 원리를 드러내는 작업은, 백기영이 독일에서 작업한 『정원 & 이주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다. 광부로 독일로 건너와 30년간을 살면서 언젠가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마치 고향과도 같은 정서를 제공할 정원을 만들었던 이현규씨는 한국의 꽃과 풀을 심어 임시의 고향을 자신의 터전 한 켠에 품었다. 그 공간을 영상으로 담아내면서 백기영은 이현규씨의 정원을 매개로 문화적 정체성과 이산(Diaspora), 떠도는 삶과 정착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듯하다. 이현규씨에게 흙은 상실감을 상쇄시켜 줄 물질이면서 자신의 정체성 혹은 소속감을 연결하는 끈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이와 같은 흙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이번 작업에서는 여행이라는 움직임을 덧붙여 그 의미를 한편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백기영에게 흙은 자신의 공간에 대한 정체성, 혹은 변해버린 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게 되는 매개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백기영_전망대 전망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산아래 풍경을 감상하는 광경을 연출한 단채널 DVD영상_00:01:30_2004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창작이라는 것이 살아가는 일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작업이라는 것이 늘 주변에 있다는 사실, 작품이라는 것이 완성된 오브제를 감상하게 하는 결과물의 제작이 아니라, 과정을 따라오게 하면서 풍부한 질문을 던지는 일종의 '행위'(action)라는 백기영 스스로의 신념이 읽힌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고 우리가 그의 작업을 통해 던지게 되는 질문, 그래서 벌어지는 많은 생각을 늘 기록하고 담아내는 그런 모습으로 예술을 만들어간다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 박신의

Vol.20040712a | 백기영 개인展